물의 안부_문정문학 5집 / 장은영

“엄마! 밥 탄내 나!” 압력솥에 밥을 할 때 밥을 태우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다. 하지만 가끔 구수한 누릉지가 생각나면 밥이 다 되었다고 아우성치는 압력솥 추 돌아가는 소리를 못 들은 척하며 밥을 태운다.

‘따 따 따 따~~’ 좁은 시골길을 뛰던 엄마는 이고 가던 보따리를 내팽개쳤다. 땅바닥에 납작 몸을 밀착시켰다. 굵은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총알에 여기저기 비명도 들렸다. 6.25전쟁이 시작되고 엄마의 가족들은 산속으로 몸을 숨겼다. 식량이 부족해 집 장독대 속에 넣어둔 누룽지를 가지러 왔다. 되돌아가는 길 하늘에서 쏟아지는 북한군 따발총 세례를 받으셨다. 총소리가 잠잠해지자 던져놓은 보따리를 다시 머리에 이고 뛰어갔다.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 사체를 보았고 그 기억들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고개를 흔드셨다.

어렸을 적에도 마당 장독대 맨 뒷줄 한가운데 보스처럼 떡하니 자리 잡았다. 아주 커다란 장독이 있었다. 그 안에는 긁어 모아둔 누룽지를 봤다. 마른오징어, 말린 대추, 들깨 등이 들어 있는 보물창고였다. 가끔 엄마는 장독대에서 누룽지를 꺼냈다. 적당히 달궈진 기름에 넣고 튀겼다. 딱딱한 누룽지는 기름 속에서 부풀어 올랐다. 뽀얗게 살이 부풀어지며 부드러워졌다. 꽃이 그려진 황금색 둥근 쟁반 위에 털어놓고 설탕을 살살 뿌렸다. 입안에 가득 고인 침을 꿀꺽 삼키는 순간이다. 바삭 씹혀 입안에 그 고소함과 달달함이 퍼졌다. 그 느낌은 마치 구름 침대위에 큰 대자로 누워있는 기분이랄까?
시커먼 가마솥에서 한 밥을 뒤적거려 밥그릇에 퍼 담는다. 눌어붙은 밥은 다시 뚜껑을 덮었다. 가마솥과 누룽지가 자연스럽게 나뉘도록 은근하게 불을 지핀다. 동그란 그릇 모양이 된 누룽지가 자연스럽게 나뉘도록 은근하게 불을 지핀다. 동그란 그릇 모양이 된 누룽지는 바삭거리며 담백했다. 한번 먹기 시작하면 바닥이 날 때까지 자동으로 손이 간다. 엄마가 바쁠 때면 밥알 형태가 가끔 달라붙었다. 달챙이 숟가락으로 박박 문질렀다. 솥과 촉촉한 누룽지를 분하고 반으로 접어 우리에게 건넸다. 밥을 속독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속독 후에는 어김없이 손바닥에 참 잘했어요. 거뭇거뭇 도장이 찍혀 있었다.

나는 가끔 찬밥이 남아 처치가 곤란했다. 프라이팬에 고르게 펴서 약한 가스 불에 한참을 놔둔다. 뒤집어 다시 나뒀다. 식구들 간식으로 내놓기도 하고 비닐봉지에 넣었다. 누룽지가 그리운 날엔 꺼내 끓여 먹기도 한다.

누룽지를 끓일 때면 그 구수한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 퍼졌다. 화초도 TV도 소파도 사람들도 모두 둥글둥글 넉넉해진다.

깜밥은 전라도 말로 누룽지다. 까맣게 타서 깜밥이라고 했나 보다. 가족들의 허기진 배를 채웠다. 어릴 적 추억에 미소 짓게 했다. 지금도 우리와 가까이하는 깜밥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마음과 입맛을 끌며 은근한 후각까지 유혹했다. 누룽지의 매력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깜밥이 되고 싶다. 모든 사람과 고루고루 어울리고 넉넉한 마음씨와 은근한 매력을 갖고 싶다. 누룽지 같은 구수한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 점심은 뜨끈한 누룽지를 끓여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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