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집사],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등 제작한 조은성 감독
‘옥천 길고양이와 동물권을 위한 강연’에 실제 구조된 고양이가 찾아와
동물보호조례, 정부 정책 TNR, 공공급식소 등 옥천에도 실현되어야

생명을 해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여전히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고양이는 길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약자다. 고양이 다큐를 제작해 온 조은성 감독은 “적극적으로 해치는 사람이 많으니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 고양이 학대는 동물보호법으로 금지되어 있음에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23일 저녁 5시, 사회적기업 고래실이 카페 둠벙에서 주관한 ‘옥천 길고양이 동물권, 생태를 생각하는 친구들’의 2회차 모임이 열렸다. 조은성 감독의 ‘고양이 집사’를 상연하고 감독과 대화하는 자리였다. 길에 사는 고양이와 그들과 공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고양이 집사’의 내용은 모임의 주제와 딱 맞았다. 이 날, 구조된 지 5일이 지난 아기 고양이가 찾아오기도 했다. 모임에 찾아온 구조자와 아기 고양이가 공론의 중요성을 증명해주는 것 같았다.

■ 공존하는 세상을 위해 영상을 찍다

다큐멘터리 영화 ‘고양이 집사’, ‘나는 고양이소로이다’를 제작한 조은성 감독은 실제 두 마리 고양이와 사는 집사다. 23일 상연한 ‘고양이 집사’는 고양이의 시선에서 그들과 공존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담았다. 97분이라는 시간이 잔잔하고도 빠르게 흘렀다. 뜻에 공감해 출연료도 마다했다는 배우 임수정의 나레이션은 고양이의 삶을 더욱 잘 전달했다. 작은 생명을 외면할 수 없어 제 시간을 기꺼이 할애하는 동네 집사들의 모습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겼다.
감독이 고양이 다큐를 시작한 것은 2013년, 아파트에서 탈출구를 비닐로 봉쇄해 고양이를 대거 살해하는 일을 접한 것이 계기다. 그는 “약자를 괴롭히고, 생명을 경시하면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실제로 같은 아파트에서 1년 후 모욕감을 이기지 못한 경비원이 분신자살하기도 했다”며 “사회 변화를 위해 나만의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은성 감독은 “한국에서 다큐를 찍는다는 것은 빚을 진다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돈이 되지 않기에 영화관 상영도 어렵다고. 그래도 이 일을 지속하는 이유는 고양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존재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촬영하면서 힘든 일도 많았다. 고양이의 죽음을 목격하고 주변의 싫은 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는 “사실 아무도 고양이를 괴롭히지 않아 이런 영화를 만들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면 좋겠다”며 “10%의 사명감이 90%의 힘든 마음을 이겨내게 한다. 다른 사람이 할 것이라는 생각에 미뤄둘 수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 생명에 대한 인식이 그 사회를 만든다

생명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변화를 가져온다. 조은성 감독은 전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촬영하며 일본 노숙인들을 만난 경험을 통해 이를 증명하고자 했다. 그는 “일본에서도 유명한 우범지대 거주자들이었다. 낮에는 밥을 구걸하고, 저녁에는 고양이 밥을 준다. 본인들도 힘든 상황이지만 길에 사는 고양이와 공존한다”며 “동물보호정책이 잘 되어있는 곳은 생명을 경시하지 않는다. 고양이 연속 살해범은 일본 메인 뉴스인 NHK에 속보로 보도된다. 그만큼 중요한 범죄라는 것을 인식하니 해치는 이가 사라진다”고 강조했다.

고양이의 문제는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다. 고양이가 존재하면 사람들은 쥐에 시달리지 않는다. 지난 강의에서 감하연작가는 “사람들이 고양이를 박해해 사라진 뉴욕에서는 갑작스레 변기를 비롯한 사방에서 쥐가 나타나 쥐와 사투를 벌여야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조은성 감독은 이에 더해 “고양이를 쉽게 해치는 동네에서는 사람도 쉽게 해친다. 나보다 약한 존재를 해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다. 생명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모임 중 갑작스레 구조된 고양이가 찾아와

“고양이 모임이 있다고 해 찾아왔다” 이 날 실제로 구조한 지 5일 된 고양이가 찾아오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감독과의 대화 중 갑작스레 수건에 아기 고양이를 안고 주민 A씨(옥천읍, 55)가 찾아온 것.

A씨는 읍내 큰 길 공사장을 지나다 수로에 빠져있는 아기 고양이를 구조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고양이는 수로에 오래 있었는지 이끼가 잔뜩 있는 대변을 배설했다. A씨의 집에는 이미 건강이 좋지 않은 고양이들이 있었다. 전부 기를 수는 없고, 건강을 찾은 아기고양이는 입양확률이 높으니 발품을 팔았다. A씨는 “하루만 놔둬도 죽을 것 같아 일단 데리고 갔는데 건강해졌다. 입양자를 찾으러 여기저기 안고 다니다가 고양이 모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찾아왔다”며 아기 고양이를 소중히 품에 안았다.

생전 처음 많은 사람을 본 아기고양이는 놀란 모습이었다. 조은성 감독은 본인의 손바닥보다 한참 작은 고양이를 조심스레 안았다.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는 작디작은 생명이 그 자리를 찾아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길에 사는 작은 생명체와의 공존을 고민하는 하나의 장이 펼쳐졌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 동물보호조례 제정, 중성화정책(TNR), 공공급식소 등 지자체의 움직임 필요해

포유류인 고양이는 동물보호법에 따라 보호의 대상이다. 91년도 첫 제정된 동물보호법이 무색하게 수사로 이어지지 못한 사례가 참 많았으나,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며 처벌도 강화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고양이를 살해한 30대 남성이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아 구속되기도 했다.

길고양이를 위한 대표적인 정책에는 TNR(중성화수술 정책), 공공급식소 설치가 있다. TNR은 현존하는 정책 중에서는 가장 인도적으로 길고양이와 인간의 공존을 도모한다고 불린다. 신고가 접수되면 포획(Trap), 중성화수술(Neuter), 제자리 방사(Return)의 과정을 거친다. TNR정책을 시행한 고양이는 야생성이 감소해 다툼이 줄어든다. 공공급식소를 통해 식량을 해결한 고양이는 쓰레기봉투를 뒤적이지 않는다.

서울시와 부산시에서는 조례를 제정해 재개발 사업 시 길고양이 안전 확보를 의무화했다. 서울시 관악구, 서울시 중랑구, 경기도, 대구시 등 전국 각 지자체는 물론 국회에도 길고양이 공공급식소가 마련되었다. 5년 전만 해도 동물복지과가 별도 존재하는 지역이 없었으나, 지난 해 전주시는 전국 최초로 동물복지과를 신설한다.

전주시는 동물복지과 신설을 바탕으로 △길고양이 표준매뉴얼 구축 △생태동물원 기준 마련 △반려견 놀이터 건립 △유기동물보호센터 설립 등 계획을 수립했다.

전주시 동물복지과 양영규 과장은 “아직 멀었지만 동물복지과가 생기고 동물에 대한 관심이 늘고있는 것은 사실이다. 인식개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변했다.

전주시는 TNR을 기본적으로 진행하고, 길고양이 공공급식소는 현재 5군데 운영 중이며 향후 확대예정이다. 양영규 과장은 “시에서는 급식소를 만들고 먹이를 지원한다. 겨울에는 추위를 이길 수 있게 지푸라기 등을 제공하기도 한다. 운영은 자원봉사자들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 고양이는 그저 ‘고양이’, 지역의 이야기로 이어지길

‘고양이 집사’의 엔드 크레딧에는 영화에 출연한 고양이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올라온다. ‘이름을 붙인다’라는 의미를 엔드 크레딧을 통해 다시 한 번 전달한 것. 행사를 진행한 고래실 월간옥이네 박누리 편집국장은 ‘호명한다는 것은 존재를 인정하는 행위’라며 그 의미를 되짚었다. 조은성 감독은 “도둑고양이라는 호칭이 길고양이로 변화하기까지 참 어려웠다. 언젠가 그냥 마을에 함께 사는 마을 고양이나 동네 고양이로 불리는 것을 꿈꾼다”고 말했다.

감독은 향후 3인의 감독이 세 마리의 고양이를 찍는 옴니버스 형식의 다큐멘터리를 구상한다. 이런 시도들이 바탕이 되어 각 지역의 이야기로 확장되길 희망했다. 그는 “지역에 사는 사람이 지역사정을 가장 잘 안다. 각 지역의 이야기가 담긴 시리즈가 확장되길 희망한다”며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함께 공존하는 세상이 되길,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카페 둠벙같은 커뮤니티가 각 지역에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길고양이 정책, 실제로 효과 있다”

TNR 실시한 고양이는 야생성 감소해 주민 갈등 줄어
13년 공공급식소 생긴 강동구, 더 이상 쓰레기봉투 뒤지지 않아

길고양이 관련 정책의 의미는 ‘고양이 개체 수 감소’에만 있지 않다. TNR(중성화수술정책)로 야생성이 감소한 길고양이들은 다투거나 울음소리를 내는 일이 줄어들고, 공공급식소로 먹이를 해결한 고양이는 더 이상 쓰레기봉투를 뒤적일 필요가 없다.

반려동물, 유실·유기동물 등의 명칭을 제외하고 ‘동물보호 조례’를 제정한 군 단위 지자체는 △강진군 △고흥군 △남해군 △담양군 △연천군 △완도군 △울산광역시 울주군 △음성군 △장흥군 △진안군 △함안군 △홍성군 등 총 12곳이다. 안타깝게도 아직 옥천군은 동물보호 조례도 없고, TNR(중성화수술)정책도 시행되지 않는다. 옥천군농업기술센터 담당자는 “옥천군에서는 TNR사업을 진행하지 않는다. 때문에 주민들이 문의해도 유기동물보호소에 안내하지 않고 ‘사업을 진행하지 않는다’고 답한다”고 말했다.

옥천군은 도시에 비해 수요가 적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입장이었다. 친환경농축산과 김유란 축산팀장은 “타시군 TNR 정책도 개체 수 감소에 큰 실효성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도시보다 수요가 적어 현재는 길고양이 관련 정책 수립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횡성군 축산지원과 신하준 주무관은 다르게 평가했다. 횡성군에서는 올해 국비 210만원과 도비 500만원으로 TNR 수요를 충족하지 못해 군비 5천만원을 추가했다. 그는 “9월16일에 2백두 TNR예산을 추가했는데 한 달 만에 모두 소진되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주민은 체계적 관리 체계가 마련되어 좋아하고, 고양이를 싫어하는 주민들도 울음소리 등이 줄어 좋아한다. 사업을 잘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2013년 전국 최초로 길고양이급식소사업을 시작한 서울시 강동구청 기획경제국 사회적경제과 반려동물팀 이은경주무관 역시 같은 평가를 했다. 그는 “TNR과 공공급식소 사업을 통한 주민인식개선, 마을갈등완화 효과는 확실하다. TNR을 실시한 고양이들은 굉장히 얌전해진다. 공공급식소를 이용하는 고양이들은 쓰레기봉투를 뒤적이지 않는다.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민원도 확실히 줄어드는 이유다.”고 말한다.

서울시 강동구는 △고양이 보살핌 공간(공공급식소 및 길고양이 어울 쉼터) △TNR(고양이 중성화 수술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공공급식소 60개소와 길고양이 어울 쉼터에 연간 사용되는 예산은 사료비 2천만원, 올해 진행된 250건의 TNR 예산은 1억(시비 20%, 구비 80%)이다. 공공급식소와 길고양이 어울 쉼터 설치 및 운영은 민간의 자발적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강동구청 홈페이지에는 길고양이 TNR 신고란이 공익신고, 공직비리신고 등 8개 신고분류란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올해 민원신고란에 접수된 TNR요청만 40건에 달한다. 반면, 길고양이와 관련한 갈등은 현저하게 줄었다. 고양이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다. 옥천군도 이제 고양이에 대한 정책에 다른 시각을 가질 때가 아닐까.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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