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봉식 (옥천읍 양수로)

Ⅱ. 「鄕愁」에 대한 견해

정지용(鄭芝溶, 19021950)에게 1920년대는 시인으로서 자아를 모색하고 확립한 시기라 할 수 있다. 정지용은 향수를 통해 모더니즘(modernism) 또는 이미지즘(imagism, 寫象主義))의 수법으로 포근함과 아름다운 꿈이 서려 있는 고향의 모습과 가난하면서도 정감이 넘치는 삶의 모습이 담긴 고향을 시·공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고향에 대한 감각적 인식을 선명한 이미지의 구축과 간결하고 정확한 언어 구사를 통해 새롭게 질서화하고 있다. 그 시는 인간의 고향에 대한 근원적인 원초적 감성을 일차원적인 감각으로 풀어냄으로써 읽는 이의 정서의 진폭을 크게 울려 주고 있는 것이다.

향수의 특징을 살려 전체 연을 도표화 하면 다음과 같다.

鄕愁를 글자대로 풀어 보면 가을() 마음()’으로 향수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故鄕을 근심 어린 심정으로 그리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의 모든 연의 계절이 가을이며, 2, 4연이 겨울로 글자 (+)와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또한 해설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빈 밭에 밤바람 소리, 흐릿한 불빛등의 시어는 저녁 또는 밤의 풍경으로 하루와 4계절의 순환적 측면으로 볼 때 그 시간은 가을과 겨울에 대비된다.

한국 현대 시의 특성을 방법 면에서 시어의 영역 확대, 이미지, 은유, 상징 등으로 보고, 현대 시의 전통을 그 형태 면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볼 때, 정지용 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전통적인 요소가 바로 ‘2음보 대응 율격이다.

21연으로 한 시는 정지용 시에서 거의 한 정형을 이룬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이같은 ‘21연의 시는 정지용 시집에서는 총 87편 중 25편이고 백록담에서는 압도적인 숫자를 보인다고 기술하고 있다.

향수는 정형적 음수, 음보의 운율(韻律)의 성격을 지니며, 음성율과 음위율이 가미된 시로 소리 내어 음미하면 그 시에 흠뻑 취하게 되어 금세 각인되고 만다.

향수에서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후렴구는 5회에 걸쳐 되풀이되고 있다. 한때 이 후렴 형식은 우리 근대 문학의 형성에서 찬송가의 영향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좁은 범위로 제한시켜 본 결과이고 실은 우리 고전 문학의 전통 속에 후렴구 사용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왔으며 감군은’, ‘한림별곡’, ‘어부사시사등에서 그 예를 들기가 어렵지 않다.

향수는 운율에 따라 2글자 20, 3글자 40, 4글자 22, 5글자 13, 8글자 1개 등이다. 지즐대는 실개천(),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 함부로 쏜 화살(), 함추름 휘적시던(), 검은 귀밑머리(),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등의 자·모음을 연이어 나열하는 탁월한 시어 선택과 리듬감을 통해 정지용이 유소년 시절에 뛰놀며 경험한 고향의 모습을 그린 그 시를 읽으면 시구들은 저절로 노래가 되어 흥얼거리게 된다.

특히 빈 밭에 밤바람 소리두 어휘에는 무려 네 개의 음이 중첩되고, ‘, , 바람, 그리고 달리고에는 모두 여섯 개의 모음이 반복되어 있다. 그러므로 소리 내어 읽으면 깊은 겨울밤 바람 소리가 귓전으로 스친다. 자수율에 의존해 있는 한국시의 층위에서 보면 가히 반란에 가까운 운율의 혁명적인 것이다. ‘돌아앉아 도란도란음의 중첩은 두운頭韻의 효과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필자는 향수의 구절 중에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 ‘빈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하늘에는 성근 별 /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등 만이 시적 상상력(poetic imagination)에 의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얼룩백이 황소, 질화로,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늙으신 아버지, 짚베개, 함부로 쏜 화살,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 사철 발 벗은 아내, 성근 별, 서리 까마귀,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등 나머지 시어는 정지용의 옥천 고향을 그리며 떠올린 구체적 경험이고 사실적인 묘사로 파악하고 싶다.

정지용에 있어 고향은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이며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으로 가난한 삶의 이해와 진실이 실재하는 인간적인 공간이었다 할 수 있다. 한편, 「종달새」와 「향수」에 나타난 어머니 없이 자란 고향에 대한 그의 애절한 정서가 그 바탕에 깔려있다.

  「향수」에서의 실개천은 이 시를 이끌어가는 주요 소재이면서 시적 자아와 고향을 이어주는 끈끈한 매개로 기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실개천은 고향을 포근히 감싸 안는 모양으로 구현된다. 이런 포회(抱懷)는 물리적인 힘이면서 동시에 시인의 정서를 이 생활공간에 단단히 붙들어 매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제1연은 고향의 풍경을 원근법적으로 아름답게 제시된다. 실개천이 넓은 벌판을 끼고서 동쪽 끝으로 한가롭게 뻗어 휘돌아나가고 있는 풍광이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서강대 교수이며 신부(神父)인 다니엘 A 키스터의 정지용 시 영역본 시집 『Distant Valleys(먼 골짜기)』에 나오는 「향수(nostalgia)」의 첫째 연은 다음과 같다.

   The place where a rill, babbling old tales, / Meanders on eastward toward the end of a broad plain. / And a mottled bull ox lows / In dusk's plaintive tones / of golden indolence. / ─ Could it ever be forgotten, even in one's dreams? 

  위 영시의 밑줄 부분이 「향수」의 첫 구절이다. Meanders on eastward toward the end of a broad plain에서 on은 ‘(근접) ∼에 접(接, 이웃하거나 잇닿다)하여’의 의미를 지니며, toward는 ‘(운동의 방향) ∼을 향하여’라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정지용 고향 옥천의 어느 마을의 실개천(a rill)은 넓은 벌(a broad plain)의 동쪽(eastward) 끝으로(toward) 근접하여(on) 굽이쳐 휘돌아 흘러간다(meanders)고 이해할 수 있다. 즉, 그 ‘실개천이 계속 동쪽으로 진행해서 나아간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향수」의 실개천은 넓은 벌의 동쪽 끝으로 반원 형태로 회(回)돌아가는 부분만을 묘사하고, 그 이후 개천의 방향을 말하지 않은 것이다.   

  ‘많은 독자들과 일부 해설가는 「향수」의 실개천이 넓은 벌의 ‘동쪽 끝으로 휘돌아가는’ 것을 ‘동쪽으로 흘러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지형은 동고서저(東高西低)이므로, 옥천의 모든 개천은 금강과 만나 서해로 가기 때문에 동쪽으로 계속 흘러갈 수는 없다는 것은 자명(自明)한 일이다.

  일본 구주에서 아사히국민학교를 다녔고, 14세부터 옥천 구읍 죽향리에 사는 황희주 할아버지(85세)는 어릴 적 실개천의 흐름도를 정확히 기억했다. 구주에 살던 시절 마을의 실개천이 구루메시(久留米市)를 향해 북쪽 지쿠고강으로 휘돌아간다는 것과 어린 시절을 보낸 구주 마을의 약도를 종이에 그리며 자상하게 설명해주셨다. 그는 외갓집이 있던 옥천군 동이면 석탄리 안터(옛 支石里)의 갯가, 일명 계옥(溪玉)도랑가에 있던 고인돌과 선돌 등 그 마을에 대한 옛이야기를 상세히 풀어 놓았다. 그리고 옛 옥천군 군동면 수북리 화계(花溪) 마을, 일명 꽃계리(꾀꼬리)의 실개천이 동정리(東亭里, 現 옥천선사공원)를 감싸고 넓은 벌판의 동쪽 끝으로 휘돌아 석탄리 앞뜰 가운데로 흘러 오대리 금강과 이어지며 그 풍광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고 덧붙여 말했다.    정지용이 1915년(14세) 서울 송참사 집에서 한학을 배우기 전인 열세 살까지 기억하고 있는 ‘넓은 벌 동쪽 끝으로 휘돌아가는 실개천’을 포함한 고향에 대한 실제적 경험에 대한 기억을 망각하고, 천재 시인인 그가 9년여가 지난 스물두 살에 추상에 의한 상상의 개념으로 「향수」를 썼다고 보기는 어렵다. 

  필자는 이 시의 서두의 배경인 ‘넓은 벌과 실개천’은 그의 고향 옥천의 구체적이고 실제적 경험을 그대로 그렸다고 생각한다. 

  정지용이 휘문고등보통학교 졸업하던 해인 1923년 3월 「향수」를 창작할 무렵 아버지 정태국은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 1통 5호에서 양약방 겸 한약방을 운영하며 지냈고, 그의 자전적 소설 「三人」 등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어머니 정미하는 소박(疏薄)을 당해 친정에 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1913년(12세)에 정혼을 하고 1921년 5월 29일에 결혼한 그의 동갑내기 아내 송재숙, 아버지의 둘째 부인 문화 유씨(유정柳貞), 이복 동생 계용과 화용은 옥천면 하계리 1통 4호와 1통 5호에 나누어 살고 있었다. 그곳은 그 마을에서 서쪽으로 휘돌아 서화천(西花川)으로 흘러가는 거천(巨川)이라 불리던 개천가였다. 

  그는 서울에서 한문을 수학하던 시절(14세~16세)과 휘문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때(17세∼22세)에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등을 이용해 틈이 나면 가족이 살고 있는 옥천 구읍과 영일 정씨의 600여 년 세거지(世居地)인 수북리를 자주 찾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향수」의 ‘넓은 벌과 실개천’은 정지용의 유소년 시절과 더불어 20대 초까지 고향 옥천의 추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 시의 배경이 되었다고 단정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뛰놀던 넓은 국민학교 운동장을 어른이 되어 찾아가 보면 무척 좁아 보인다. 상당수의 문학평론가나 시인들은 정지용 생가 앞의 대략 5,000여 평 정도의 작은 벌판이 상상에 의해 넓은 공간으로 표현되고, 그 옆을 지나 남쪽으로 흐르다 서쪽 옥천읍 삼양 삼거리로 휘돌아가는 실개천이 「향수」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해석하기도한다. 그것은 정지용의 고향을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下桂里) 또는 옥천 구읍에 국한해서 그 시를 해석하는 데서 생긴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향교(鄕校)는 군(郡)에 있는 유일한 학교이며, 향(鄕)의 개념은 원래 주(州)보다 광의(廣義)의 넓은 지역으로 향리(鄕里)와는 다른 것이다. 그렇게 보면 정지용의 故鄕은 옥천군이며, 그의 鄕里는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이다. 

  결론적으로 「향수」의 ‘넓은 벌과 실개천’은 정지용 경험한 고향 옥천에 실존하는 배경지이다. 필자는 20대 청년 정지용이 서낭산골 어린 누이 산소가 아스라이 보이는 마을 앞 뫼 끝에 자주 올라 옛날을 상기하며 그곳을 바라본 추억과 유소년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의 시 「鄕愁」와 「故鄕」이 탄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긴다. 

 1) 정지용 「향수」의 넓은 벌과 실개천에 대한 고찰(2)
2) 김대행 공저, 「정지용 연구」(서울 세문사, 1988) p. 197
3) 이승원, 「정지용 시 연구」(현대문학연구 제31집, 서울대학교 현대문학연구회, 1988), 김대행 공저, 「정지용 연구」(서울 세문사, 1988)
4) 김대행 공저, 「정지용 연구」(서울 세문사, 1988) p. 201
5) 김성장, 「아무렇지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고래실, 2018. 5. 15) p. 26에 ‘뷔인 밭에 밤 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는 몹시 요란해서 빨리 달려야 하므로 말에 비유되었고 당연히 거기에 쓰인 모음들은 바람 소리를 닮은 모음 ‘ㅏ’와 바람 소리에 가까운 ‘ㅂ’이 많이 사용되었다’고 기술했다.
6) 이어령, 『다시 읽는 한국 시』
7) 송기한, 『정지용과 그의 세계』(박문사, 2014. 5. 7) P. 53과 96
8) 이석우, 『현대시의 아바지 정지용 평전』(푸른사상, 2006. 10. 20) p. 29
9) 『관성문화』 제 9호(1994. 12. 30, 옥천문화원) 지상소개 「정지용 시 영역판 발행」 p. 24∼29
10) 동아 프라임 英韓辭典(탁상판 제 3판, 동아출판사) p. 1590과 p. 2411
11) 첫째 연의 밑줄 친 부분 중 ‘babbling old tales’는 정지용 시인의 상상력(imagination)에 의한 시적 이미지(poetic imag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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