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이흥주

우리 집 앞 전주에는 일월만 되면 오래 전부터 까치의 보금자리신축공사가 벌어진다. 까지는 삼월 중에 산란을 하여 사월 상순쯤 부화를 한다는데 부지런한 까치는 어김없이 일월 중 한창 추울 때 부화를 한다는데 부지런한 까치는 어김없이 일월 중 한창 추울 때 건축의 기초공사를 시작한다. 내 집 바로 앞인지라 나는 항상 조마조마하고 불쌍한 눈으로 집짓는 까치를 바라본다. 아무리 열심히 자재를 물어다 얽어매어도 일주일, 열흘을 못가고 허물어진다. 집짓는 기술이 뒤떨어져서가 아니다. 한국전력 직원들이 열심히 짓는 까치집을 인정사정없이(?) 부수어버리기 때문이다. 무섭게 까치부부는 입에 자재를 물고 와서 또 공사를 시작한다. 이 세상에 아무리 끈기와 집착이 강한 사람도 까치 앞에선 얼굴도 못 내민다. 

한동안 저 까치가 작년의 그 녀석들인가 궁금했다. 그 까치이어야 항상 저 자리를 알고 집을 지을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한데 사람들 얘기가 까치를 잡아도 다음해엔 다른 녀석이 와서 집을 짓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저 자리가 천하명당임에는 틀림없을 거라고 쓴 웃음을 짓는다. 웃음 뒤에는 까치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있다. 왜 저 전봇대에 집착해 집을 지으며 때론 목숨까지 잃을까. 어디 나무에다 지으면 사람들이 쳐다보지도 않고 피해도 안 입을 텐데. 귀찮으면서 도 까치가 너무 불쌍하다.

금년에도 일월이 되자 어김없이 그 자리엔 까치부부가 건축을 시작했다. “어유! 또 시작이구나!” 매년 되풀이 되는 까치의 집짓기 공사를 보며 탄식의 목소리를 토해냈다. 어떤 운 나쁜 까치가 또 저 명당자리에 혼이 빠져 목숨을 잃겠구나 하는 생각에 괴로웠다. 까치도 불쌍하지만 나나 앞집사람은 아주 귀찮다. 까치가 집을 지으며 나뭇가지를 밑으로 많이 떨어트린다. 그래서 전주 밑은 아주 지저분하다.

까치부부의 생각은 단 하나다. 일 년 중 가장 추운 지금부터 부지런히 집을 지어야 이른 봄에 태어날 자식들을 새 보금자리에서 걱정 없이 키울 텐데 하는 그 마음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다 집을 짓는 게 절대 불가능한 일인데 그걸 어떻게 저 부부에게 알려주어야 하나, 일월만 되면 이 걱정거리가 반복되고 있다.   

까치의 건축공사가 조금 진척되자 어김없이 한전의 철거반원들이 들이닥쳐 깨끗이 부수어버리고 갔다. 그런다고 까치의 고집을 절대로 꺾을 순 없다. 까치부부의 목숨을 건 싸움이 시작되었다. 하여간 철거하는 사람들이 눈앞에서 사라지기 무섭게 까치는 금방 나타난다, 철거하는 분들에게 물어봤다. 저 까치와 언제까지 싸울 거냐고. 그랬더니 허가를 받아서 공기총을 사용할 거라고 한다. 나도 그렇게 하기를 바랐다. 까치를 불쌍하고 생각하면서도 귀찮게 한다는 이유로 잡아주기를 바라니 인간의 위선은 어쩔 수가 없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거기에다 무슨 방해물을 설치하면 전주에 뭘 부착해놓은 걸 보기도 한 것 같은데. 효과가 없는가.

며칠 후 까치가 안 보여서 앞집사람에게 물어보니 공기총을 쏘아 잡았단다. 불쌍한 까치 내년에도 다른 녀석이 또 올 건가. 내년에는 제발 집짓겠다는 까치가 오지 말았으면…… 근데 저곳이 얼마나 좋으면 해마다 저 자리인가. 말 못 하는 까치가 다른 전봇대 놔두고 저 전봇대만 고집하는 걸 보면 사람 눈에도 보이지 않고 이해 못 하는 명당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저 자리가 그 자리인가 보다.

정말 집터에 명당이 있긴 있는가. 남향으로 집을 지을 수 있고 지대가 너무 낮지 않으며, 주변에 공해를 배출하는 업소가 없으면 좋다. 역세권에 학군이 좋은 등등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조건이 맞으면 명당이 아닐까. 몇 년을 두고 까치들이 찾아드는 걸 보면 우리 집 앞에 있는 전봇대가 까치들에겐 천하명당인 모양이다. 보면 서울의 강남이상으로 좋은 곳인가 보다.

동네 한가운데를 지나는 전봇대만큼 까치집 자리로 좋은 곳도 없을 듯하다. 사람과 가까이 하려고 인가 속으로 파고드는 새인데 동네 한가운데니 얼마나 좋을까. 사람 속, 동네 속이라 다른 짐승의 피해도 받지 않을 테고 나무마냥 바람에 흔들리지도 않을 테니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어디 있겠는가. 근데 하필 왜 이 전봇대이가. 바로 옆에, 도 그 옆에도 전봇대가 얼마나 많은데. 우리 집 앞 전봇대만 고집하는 이유가 뭘까.

까치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길조 중의 길조로 인간과 너무나도 친숙한 새였다. 아침햇빛이 환하게 쏟아질 무렵 앞마당 감나무에 앉아 깍깍거리는 까치소리는 얼마나 정다운 소리였는가. 어느 동네를 가도 까치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은 없다. 땅에는 멍멍이, 공중에는 까치가 우리와 가장 친숙한 동물이지 않는가. 아침에 내 집에 날아와 까치가 울면 그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반가운 손님이 찾아들지는 않았다 해도 종일 길일이 되었다. 이런 까치가 유해조류로 바뀌어 버렸으니 까치에게도 인간에게도 다 같이 불행한 일이다.

내년에는 또 어떤 까치가 찾아와 비극을 자초할는지. 이제는 제발 오지 않기를 빈다. 내년에는 부디 오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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