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
한남대 교수
옥천군 거주

필자는 몇 주 전 옥천신문을 통해 옥천군의 발전을 위해서는 옥천군의 미래상, ‘비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비전을 정립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한 개인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다양한 구성원을 가진 집단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각기 다른 사회적 배경을 가진 구성원의 의견을 하나로 집약하는 일은 쉽지 않다. 

흔히 비전은 집단을 대표하는 몇몇 지도자들이 결정한다. 국가의 비전은 흔히 정치지도자들이 설정한다. 선거과정에서 여론으로 어느 정도 조정되긴 하지만 선거 캠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의 비전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다시 만들어지곤 한다. 그러다 보니 그 비전은 오직 그 측근 몇 사람에게만 공유되는 측면이 있다. 대다수 국민들에게 있어서 그 비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자체 단위에서도 ‘비전’을 만들어 내곤 한다. 그것은 흔히 ‘슬로건’ 정도로 대표되기도 한다. 우리 옥천군의 슬로건은 ‘더 좋은 옥천’이다. 슬로건이 비전이 되려면 슬로건의 내용이 좀 더 구체화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드물다. 세부내용이 없거나, 있더라도 잘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은 그러한 슬로건이 ‘장기발전계획’에서 구체화 되기도 한다. 

지방자치단체(지자체)장들이 처음에는 대부분 큰 포부를 가지고 임기를 시작한다. 그들의 포부는 슬로건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좀 더 의욕적인 지자체장들은 자신의 포부를 구체화하기 위해 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한다. 대부분은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용역회사에 맡겨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광역 지자체마다 설립되어 있는 지역발전연구원에 맡겨진다. 옥천의 경우 충북연구원이 그에 해당된다. 

용역회사, 혹은 지역발전연구원 중심으로 이루어진 지역의 장기발전계획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그러나 그를 수립하는 과정은 그 지역의 현황을 종합적으로 광범위하게 점검하는 기회가 된다. 대부분의 경우 지역의 현황이 깊이 있고 폭넓게 조사되고 분석된다. 지역의 문제점이 도출되는 한편, 의미 있는 해결방안도 도출된다. 지자체장의 포부가 그에 녹아들어 가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다. 

지자체가 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하는 데에는 수 억원의 예산과 여러 명의 전문가, 그리고 행정 실무가들이 투입된다. 그들은 보통 심혈을 기울여 작업을 한다. 그러나 많은 장기발전계획은 단순한 ‘계획’으로 끝난다.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몇몇 관심 있는 사람들의 서가에 잘 보관되기만 한다.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작성된 지자체의 장기발전계획이 왜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가? 가장 큰 이유는 그 계획의 내용들이 구성원들에게 공유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유는 커녕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려지지도 않는다. 사실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옥천에도 장기발전계획이 있다. 옥천은 2016년에 완성된 장기발전계획이 있다. 전임 군수시절에 작성되었다. 그 내용의 대부분은 전임 군수의 것이다. 그런데 2017년 그 군수의 임기가 만료되었고, 옥천은 그 후 새로운 군수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 계획은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었다. 많은 예산과 행정력, 인력이 투입하여 작성된 계획이 사장되고 있다. 
지역의 비전을 제대로 수립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또 어떻게 하면 그 비전을 구체화하고 현실에서 구현되게 할 수 있을까? 지역의 장기발전계획이 그 지역의 비전을 구체화하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을까? 그 계획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집단이든지 그의 비전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구성원간 ‘공유’되어야 한다. 그것이 공유되기 위해서는 그 내용이 구성원에게 잘 알려져야 한다. 비전의 내용이 잘 알려지게 하려면 비전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구성원들이 참여하게 해야 한다. 단순히 ‘동원’되어서는 안된다. 진정한 참여, 자발적 동기에 의한 참여가 필요하다.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그러한 참여를 위해서는 그것을 도출하는 과정을 잘 설계해야 한다. 비전은 그 내용도 중요하지만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진정한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과정을 유도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진정한 민주주의, 진정한 국민참여, 주민참여의 전통이 아직 정착되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그러한 전통이 정착된 서양에는 그 예가 드물지 않다. 필자는 오래 전, 대학원 학생시절에 캐나다 밴쿠버에서 그런 예를 보았다.
약 200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 밴쿠버는 북 아메리카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이름 나 있다. 캐나다는 미국과 달리 개인이 총기를 휴대할 수 없다. 그래서 그 도시는 안전하고 외지인들에게 우호적이다. 캐나다, 특히 밴쿠버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어학연수의 대상지로도 인기가 있는 곳이다. 

밴쿠버는 태평양 연안,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해안은 바로 산으로 이어져 수목이 울창하다. 산에는 나무가 많아서 예로부터 목재산업이 발달하였다. 그야말로 옥천처럼 산수, 즉 산과 물이 아름답고 풍부하다. 북 아메리카 최고봉을 자랑하는 록키산맥에서 발원하여 수 천백 Km를 흐르는 프래이져강이 도시를 관통하고 있다. 록키산맥에서 벌목된 목재는 이 강을 따라 해안까지 수운으로 이동된다. 도시 전체가 수심이 깊은 바다와 만을 끼고 있기도 하다. 
천혜의 조건을 가진 도시, 밴쿠버는 아름다운 자연적 조건을 잘 관리하고 있기로 유명하다. 도시계획이 잘 되어 있고, 도시관리도 잘되고 있다. 이 도시는 20년 정도에 한 번씩 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한다. 1996년의 경우 “Livable Regional Strategic Plan”, 즉 “살기 좋은 지역 전략계획”이란 장기 계획을 수립하였다. 

밴쿠버가 장기전략계획, 혹은 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은 주민들의 참여를 강조한다. 주민들이 함께 계획수립과정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그 방법은 주로 조사와 토론이다. 전문가들이 조사를 실시하고, 메스컴을 통해 그 결과를 발표한다. 신문과 방송이 많이 동원된다. 신문으로는 일간신문도 있지만 지역의 다양한 소식지를 통해서도 여러 가지 정보와 의견 등이 발표된다. 그리고 많은 주민들이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각종 도시문제에 대한 여론이 형성된다. 

그 과정이 매우 개방적이다. 주관하는 단체나 기관이 가능하면 많은 정보를 언론에 노출한다. 그리고 주민들이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도록 유도한다. 주민들은 실제로 자기 목소리를 다양하게 나타낸다. 주관기관은 그러한 목소리를 최대한 수렴하고 또 겸허히 수용한다. 그러한 바탕 위에 계획이 구상되고, 그 구상된 계획은 주민들에게 알려진다. 그 계획에 대해서 주민들이 의견을 개진하도록 유도한다. 

캐나다 밴쿠버시는 인구 약 90만을 가진 도시이다. 그러나 그 지역은 21개의 크고 작은 지자체로 구성되어 있다. 통상 이를 모두 포함하여 ‘밴쿠버’라고 하는데, 공식적으로는 ‘밴쿠버 광역도시권’이다. 이 도시권의 인구는 약 228만으로, 캐나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지역이다. 

앞에서 소개한 밴쿠버의 장기발전계획은 이 광역도시권의 계획이다. 그렇게 수립된 계획은 장기간 동안 주민들과 전문가, 행정 실무가들의 활동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주민들은 계획과정에서 노출된 각종 정보를 이해하고 있고, 지역의 문제점과 발전방향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비전도 공유하고 있다. 그 계획에 포함된 주택계획, 교통계획, 공원계획 등의 주요 내용이 주민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계획과정에서 논란이 되었던 이슈는 계획이 완성된 후에도 계속 논의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새로운 여론이 형성되고 대안이 도출되기도 한다. 이들은 또 차후 계획에 반영된다. 
캐나다 밴쿠버의 지역발전계획은 그 지역에 속한 21개 지자체의 도시계획 및 도시관리의 기준을 제공한다. 그래서 이 분야의 전문가, 그리고 각 지자체의 도시관리 담당자들이 두고 두고 실무적인 자료로 활용한다. 이 지역의 장기발전계획 수립과정은 진정한 참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 결과 밴쿠버 사람들은 밴쿠버를 오늘날과 같이 아름답고, 안전하며, 살기 좋은 도시로 가꾸어 갈 수 있게 된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우리 옥천에서는 그런 것이 불가능한지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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