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에서 이승으로
저승에서 이승으로
  • 옥천닷컴
  • 승인 2020.10.06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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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용 (안남 화인산림욕장 대표)

1990년 12월 추운 겨울을 피해 아내와 함께 여름인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유학중인 딸아이에게 새로운 숙소도 마련해준 후 둘이서 한달간 뉴질랜드 곳곳을 배낭여행 하기로했다. 여행이 거의 끝나갈 때에 갑자기 오른쪽 다리가 마비가 오고 통증이 심해 보행이 힘들었다. 

귀국 후 한의원 등 여러 곳을 수소문하여 다녀 보았지만 더욱 악화되어 걷기가 어렵게 되었다.

통증치료로 유명하다는 역삼동 르네상스 호텔 건너에 있는 SS통증크리닉에 가서 K원장의 진료를 받았다.

요즘과 달리 그때만해도 척추로 인한 통증 치료는 아주 원시적이어서 허리에 벨트를 채우고 공기를 주입시켜 상하로 팽창시켜 허리의 부담을 덜어 주는 방법을 많이 썼다. 벨트착용 방법과 약으로도 별 효과가 없자 특수약으로 처방을 바꾸겠다고 했다.

약을 바꾸자 다리가 한결 좋아지고 보행도 어느정도 자유롭게 되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석식후 약을 복용하고 다음날 아침에 사우나에 갔더니 모두가 “정 사장 옻 올랐네”하고 놀려댔다.

옻탐을 않는 필자로서는 어이가 없어 거울을 보니 피부가 마치 가물치 같았다.

K원장에게 보이니 식중독 같다고 했다. 함께 식사한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데 제일 튼튼한 필자가 식중독 이라니 믿기지않아 약이 저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하자, 순간 K원장은 움칫하면서 그러면 당분간 끊어 달란다.

후쿠오카 지방 출장 겸 시고쿠(四國) 에히메(愛媛)현에 있는 야하다하마(八幡浜)에 가서 친구 1주기에 참석할 예정으로 출국했다. 떠나기 전에 K원장으로부터 10일분 약을 처방받아 후꾸오까 공항에서 점심후 복용하고 구루메(久留米)시에 있는 단골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저녁에 이노우에(井上) 사장 부부가 석식 초대를 위해 왔지만 몸이 이상하여 정중히 거절했다. 이노우에 사장은 탱크 같은 정사장도 아플때가 있을까하고 의아해 했다.

밤이 되자 심한 갈증과 함께 사지가 뒤틀려 설수도 걸을수도 없어 화장실도 못갈 지경이었다.

이노우에 사장에게 도움을 청할까 하고 수화기를 들었지만 그냥 떨어트려 집을 수가 없어 이침까지 갖은 고생을 하며 기다려야 했다.

다음날 아침 간밤에 너무나 변한 모습을 보고 이노우에가 기절할 정도로 놀라며 병원에 가자고 하였지만, 거절하고 약국에나 가보자니 약국은 10시가 되어야 문을 연다고 하여 병원에 실려 갔다. 히다(日田)시에 있는 原胃腸科病院의 하라(原)원장은 필자를 보자마자 “やくしんですね(약물중독 이군요)” 하면서 무슨 약을 먹었는지 보여달라고 했다.

약을 보더니 고유번호가 없어 모르겠으니 분석이 끝날때까지 기다리 달란다.

분석 후 “이 약은 근육이완제가 다량 함유되어 있고, 국제적으로 사용금지된 항생제이니 즉시 버리십시요. 모든 의약품에는 국제공용의 고유번호가 미세하게 적혀 있어 번호만 보면 어떤 약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상태가 극히 좋지 않으니 속히 입원수속 후 치료를 받아야 되겠습니다.” 

필자가 오후에 야하다하마에 간다니까 극구 말리면서 도중에 쓰러질지도 모르니 자기 명함에 소견서를 써줄테니 중간에 일이 생기면 의사에게 보이라고 했다.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신거래처에서 인사를 할려고 소파에서 일어서다 그냥 쓰러져 버렸다.

호텔에 가서 잠시 쉬면 진정될 지도 몰라 이노우에에게 일단 호텔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전화가 수차례 걸려와도 받을 힘이 없어 겨우 수화기를 들었더니 필자회사 여직원 이었다,

필자 목소리가 너무나 이상하여 이노우에 사장에게 연락하여 곧장 병원으로 데려 가도록 하여 이노우에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똑바로 설수가 없어 X-ray를 찍을 수 없게 되자 양쪽에서 두 간호사가 부축하여 겨우 촬영할 수 있었다. 수간호사도 5시 퇴근준비를 하다말고 하라 원장의 부탁으로 합류했다.

X=ray 판독후 하라 원장이 비장한 얼굴에 단호한 어조로  “당신은 앞으로 25분 지나면 죽게 됩니다. 심장 부분만 빼고 약물중독으로 전신이 새까맣게 변해 버렸습니다. 빨리 세척하지 않으면 당신은 죽습니다. 마취주사를 하고 마취가 들을 시간이면 죽게되니 마취않고 하겠으니 견디어 내겠습니까?  사타구니를 절개하여 가느다란 호수를 삽입하여 펌프로 심장을 세척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존 확률은 30%이므로 만일 잘못되어 깨어나지 못해도 제 책임은 없으니, 그래도 하시겠다면 서류에 서명하여 주십시요. 시간이 너무나 촉박합니다.”

어차피 죽을바에야 수술하기로 작심하고 내민 서류에 필자가 서명을 하자 일사불란하게 양다리와 양팔을 침대에 단단히 동여매고 입에다 마우스피스(mouthpiece=권투할 때 입에 물리는 것)를 물리고는 돼지를 잡듯이 수술에 들어 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렸는지 아주 작은 모기소리처럼 아련히 소리들이 들려 오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등치가 크므로 보통관으로는 안되니 주문해야 될것 같다는 둥... 신장, 가슴 폭을 재고 있는듯도 했다. 관은 3만엔부터 250만엔까지 있는데 얼마짜리가 좋을까. 시체를 인수해 갈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속히 연락 해야겠다는 말도 들려왔다. 이노우에 사장이 너무나 당황하여 안절부절하는 모습도 시시각각 떠올랐다.

무마취로 너무나 힘을 쓰고 긴장하여 가사상태(假死狀態)에 들어가 있었으므로 주위에서 하는 말이 멀리서 아주 작은 소리로 분명하고 똑똑하게 들려왔다.

이렇게는 객지에서 생을 마감할 수 없어 어떤 일이 있어도 죽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이를 악물고 버티고 버티었다.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말도 할 수 없고 몸이 전혀 움직여 주지 않아 눈물만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필자가 갑자기 눈을 뜨며 주위를 살피자 실루엣 처럼 보이던 주위가 제대로 보이면서 의사 3인과 간호사 5인이 둘러서서 만면에 웃음 지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벽의 시계는 새벽 3시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라 원장은 덥석 손을 잡으며 “무마취를 견딘 당신은 정말 대단하오. 당신은 내가 대한 환자 중 가장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신께서 좋은 일 하시라고 저승에서 이승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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