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새벽마다 나와 신문 마지막 포장하시는 10명의 어르신
트롯 듣고 이야기 나누면서 3시간 동안 즐겁게 포장
코로나19로 시니어클럽 일자리도 중지돼 이런 일자리 반가워

옥천신문이 집집마다 배달되는 그 과정에는 숨어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 사람들 중에 신문 마지막 포장을 하는 어르신들과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시니어클럽에서 함께 시작하던 일자리는 코로나19로 중지되면서 당분간 옥천신문에서 자체 고용으로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을 소개합니다. 창간 31주년을 맞아 이분들의 노고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옥천시니어클럽 어르신들이 매주 금요일 새벽 4:30분에 나와 신문포장을 하고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일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요. 일주일에 한번씩 아침에 나오려면 준비를 하는데 그 시간이 기다려져요. 일도 재밌게 하는데 신문의 마지막 공정이 우리 손을 거쳐간다는 게 참 뿌듯하기도 하고 좋아요. 옥천 주민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있는지 몰라요.”(박신영, 72, 삼양리)

마치 준비한 멘트인 것 마냥 거침없이 말했다. 매주 옥천신문 포장은 멈출 수가 없는 일이기에 1천여개가 넘는 시니어 클럽 일자리가 다 멈췄어도 옥천신문 포장일자리는 계속됐다. 70~80대 노인들의 ‘꿀’같은 새벽 용돈벌이 일자리는 그래서 경쟁이 치열하다. 이미 합을 맞춘 사람들은 ‘고참’으로 벌써 3년이나 된 사람도 있다. 

새벽 4시30분에 출근하려면 적어도 3시30분 쯤 일어난다. 초저녁잠이 많아 새벽에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벌떡벌떡 일어나신다는 할머니들은 이른 새벽부터 옥천신문사에 모여든다. 자그마치 10명이다. 

사실, 이 사업은 안성 인쇄소에 외주를 주던 일이었다. 인쇄와 동시에 외주 인력들이 포장까지 해서 옥천으로 배달했었다. 그게 오히려 간편하고 비용도 절약되다보니 더 좋았을 수도 있다. 자본주의 경제 논리로는 그렇다. 

하지만, 늘 지역사회를 고민하고 비판하는 업인지라 신문의 포장업을외주로 주는게 바람직한가 고민 했었다. 외주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한 기사를 다룰 때마다 흠칫 찔린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과감히 결정한 것이다. 그렇게 어르신들 일자리 10개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늙어서 잠도 없는데 일찍 나와서 이런 거 하니까 재밌고 좋아요. 같이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듣고 좋은 일자리죠”(성기숙, 78, 문정리)

“신문을 직접 포장하다보니까 옥천신문을 관심있게 봐요. 옥천 소식을 다 끌어다 잘 알려주니까 그게 참 좋은 것 같아요”(조영란, 80, 마암리)

이미 어르신들은 일자리에 젖어들었다. 금요일만 되면 기다리는 일자리, 두 팀으로 나뉘어져 인쇄소에서 가져온 신문을 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만든 비닐 포장지에 착착 넣는 모습은 이미 베테랑이다. 세 명은 신문을 접고 두 명은 접은 신문을 바쁘게 포장하신다. 그 사이에 휴대폰에서 나오는 흥겨운 트롯 가락은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어제 한 드라마 이야기, 옥천에서 벌어진 사건 얘기, 시시콜콜한 이웃 이야기 등이 포장과 동시에 흘러나온다. 그러면 세시간이 어느덧 훌쩍 가버린다. 

“코로나19 때문에 시니어클럽 일자리가 다 중지되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계속 일하니까 얼마나 좋은 지 몰라요. 감사한 일이죠.”(김화숙, 68, 삼양리)

“성당 형제님들이 그래요. 왜 그렇게 힘든 일을 하느냐고. 저는 ‘우리가 지금까지 일할 수 있는 힘이 있고 일자리가 있어서 얼마나 좋은 지 아느냐’고 말하죠. 고맙고 감사해요. 요즘 어디 다니냐고 물으면 옥천신문사 다닌다고 떳떳하게 이야기해요”(박신영, 72, 삼양리)

즐겁게 일을 하시는 옥천시니어클럽 어르신들.

벌써 길게는 3년, 짧게는 6개월 정도 호흡을 맞춰온 어르신들은 옥천신문 직원들이나 다름 없다. 매주 금요일 새벽에 옥천신문의 최종 마무리를 짓는 분들 이들이 계시기에 살포시 포장이 돼서 배달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유일한 청일점인 이창서(76, 응천리)씨는 신문 뭉치를 나르는 무거운 일을 도맡아 한다. 주변에 지역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 제보도 하시고, 신문을 보고 사건 뒷 이야기도 간간히 물어보시면서 신문에 대한 관심이 크다. “저는 옥천 주민들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해요. 옥천신문이 제공하눈 많은 정보들이 옥천 주민들에게 배달되고, 옥천신문이 가려운 곳 긁어주고 잘못된 거 비판도 해주니까. 궁극에는 옥천을 위하는 일 아니겠어요.”

두 팀은 이제 눈빛만 봐도 호흡이 척척 맞는다. 7시30분 쯤 신문 포장작업과 다음주 신문 포장지 라벨작업이 끝나면 동그랗게 둘러앉아 옥천신문에서 제공한 김밥과 어묵국물로 허기진 아침을 때운다. 간단한 캔음료는 덤이다. 혹자는 외주로 돌리는 게 경영상 수익이라고 이야기하고, 기계를 쓰는게 낫지 않겠냐고 이야기하지만, 인간을 위한 일자리, 다소 느리더라도 사람의 손길이 닿은 신문을 생각한다면 쉬이 바꾸는 것을 생각하긴 어렵다. 편집국과 디자인국에서 밤을 새워 애써 작업한 결과물들을 모두가 떠난 후에 새벽에 어르신들이 마무리로 작업 하신다. 새벽이 왁자지껄 화기애애하다. 이것이 또다른 31년 옥천신문의 힘인지도 모른다. 

‘옥천신문 일자리는 일주일 내 용돈창고’

한번도 늦은 적 없는 성실한 청소년 ‘오승현’
‘어르신들과 일하는 것도 재미있어요’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일하는 게 나쁘지 않아요. 일하는 강도도 그리 어렵지 않구요.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이니까 용돈벌이 한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어르신들이 신문 포장하는 작업을 한다면, 두명의 고등학생이 포장된 신문을 묶어 오키밴(옥천신문 화물밴)에 싣는다. 개별 포장된 신문을 묶어서 차곡차곡 쌓아 우체국에 배달해야 모든 공정이 끝이 난다. 

청산청성은 별도로 분류하고, 시외 지역은 또 별도로 분류하는 등 주소지별로 따로 묶어야 한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해야 한다. 두 명 중 한명인 오승현(충북산과고1) 학생은 가장 오래됐다. 

고등학생에겐 3시간 잠깐 일하고 적잖은 돈을 가져갈 수 있고 아침까지 제공되는 꿀 알바지만, 합법적으로 일하려면 적지 않은 서류과정을 거쳐야 했다.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부모님 동의서도 있어야 하고, 새벽6시 이전부터 하는 심야노동에 들어가기 때문에 고용노동부장관의 허가를 득해야 한다. 이 서류과정을 완비해야 청소년 인력을 쓸 수 있었다.

오승현 학생은 아버지(오대성, 공공연대노조 전 지부장)가 노동조합 관련 일을 하기 때문에 노동 관련 상식도 훤히 깨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투쟁하고 하던 것을 잘 봐와서 노동운동에 대해서 길거리에서 어렴풋하게나마 배웠어요.” 승현 친구는 열심히다. 한번도 늦은 적이 없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한다. 늘 할머니들에게 먼저 트롯노래를 틀어주고 음료 대접까지 도맡아 한다. 

“신문은 잘 안 보지만, 포장하는 작업은 재미나요. 그리고 포장을 하고나서 김밥 천냥에 가서 원하는 아침을 먹을 수 있으니까 그것도 좋구요.”

승현 학생의 꿈은 프로게이머이자 게임방송 유튜버이다. 지금도 배틀그라운드는 최상위 몇 %에 들어갈 만큼의 실력자이고 롤도 곧잘 한다고. 트위치에 개인게임방송을 업로드하고 있다. 

“집회나 시위 때마다 옥천신문 기자들을 많이 봐왔어요. 옥천을 위해서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것도 알고 있구요. 일하는 동안은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말을 길게 하진 않았지만, 행동으로 보여주는 묵직함에 신뢰가 갔다. 새벽을 깨우는 청소년이 있기에 또 옥천신문은 그렇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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