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페소(한화 5,000원)씩 나눠주면 각자 시장으로 찾아가서 식사를 하고 옵니다. 시간이 남는 경우 이발소에 가서 발톱 손질도 하고 매니큐어도 칠합니다. 숙소는 저녁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숙소팀이 알아보고 정합니다. 예약은 없습니다. 식사 메뉴는 고기가 많습니다. 숯불로 기름기를 빼는 꼬치구이가 많아 다행이지만 채식주의자들에겐 조금 곤혹스러운 여행입니다. 꼬치구이와 스프라이트 한 병 혹은 필리핀의 맥주 산미구엘 한병이면 한끼 식사는 거뜬합니다. 사실 필리핀은 오랜 식민지 역사 때문에 음식의 정체성은 모호합니다. 태국과 베트남에 쌀국수가 있지만 필리핀의 주메뉴는 하늘과 바람과 바다입니다.

여행 2일 차 6시 정도 시팔라이 해변에 도착하면서 제 평생의 가장 멋진 일몰을 보고 말았습니다. 비가 잦은 겨울이었지만 여행 내내 저녁마다 수평선에 걸리는 일몰은 하루를 마칠 때마다 받는 자연의 선물이었습니다. 시팔라이 해변은 설탕같은 고운 모래 같다고 해서 슈가비치라고 부릅니다. 일몰이 너무 좋아 우리 일행은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경치는 좋았지만 현장에서 당일 숙소를 예약하는지라 숙소는 열악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웬만하면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는 나도 이날은 전전반측의 밤이었습니다.

2월은 피에스타(축제)의 계절입니다. 2월의 축제를 위해 학생들이 운동장에 나와 축제 연습을 하거나 우리나라의 운동회 같은 행사를 하고 있거나 아님 해안가 도로의 전망 좋은 풍경을 놓치기 싫을 때 오토바이는 잠시 멈춥니다. 셋째 날부터 유독 한분의 오토바이만 말썽을 부립니다. 스타트 모터가 고장 나고 주차하다가 필리핀 주민의 오토바이를 넘어뜨리고 (다행이 400페소로 민원해결) 돌아오는 마지막 날엔 타이어가 펑크가 나고 말았습니다. 처음 여행을 기획할 때 트럭을 한 대 끌고 가려 했지만 나중에 접었습니다. 그냥 현장에서 부딪치면서 해결하자!! 펑크가 난 오토바이를 길가에 세우고 일행 중 한 분이 도로가 옆 필리핀 주민 집에 가서 도움을 요청합니다. 오토바이가 많은 나라라 동네마다 오토바이 수리를 할 수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튜브 교체 때문에 1시간이 걸렸습니다. 수리를 하는 동안 수리 기사를 불러 준 고마운 필리핀 주민 형제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필리피노들은 바로 달려옵니다. 단조로운 생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에겐 댓가를 바라지 않는 친절함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한때는 겸손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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