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키운 닭과 국내산 재료를 가지고 아내 최금숙씨가 맛있게 요리해
오래 전 생긴 1억 원의 빚, 젖먹이 딸의 우윳값도 없었지만, 끝까지 노력해 이뤄낸 성과

죽향리에 있는 ‘토계촌’ 가게 전경.

대청호와 속리산을 잇는 옛 37번 국도변, 봄이면 교동 저수지에서 시작되는 벚꽃을 구경하러 오는 행락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그 길에 31년 의 유서깊은 식당이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떠나온 이들에게 담쟁이 덩굴의 잎이 마치 안녕하고 손을 흔들어주고, 간판 위에 놓여있는 토종닭 모형이 닭 전문점이라는 것을 상기 시켜주는 식당. 그 곳에서 닭 요리와 염소 요리를 한 번이라도 먹어본 이들은 진심이 담긴 음식 맛을 보고 다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황규인 대표(60, 옥천읍 죽향리)가 직접 키운 닭을 가지고 아내 최금숙(57, 군북면 이백리 출신)씨가 주방을 맡아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곳. 국내산 재료를 사용한 구수한 음식 맛에 이끌려 손님들은 반드시 다시 찾아온다. 육계 사업 실패로 시작한 토종닭 사업, 그 닭을 공급할 곳이 없어 간이 천막에서 시작된 요식업. 어느덧 지역의 맛집이 되어 인근 지역 어머니들의 계모임 장소이자, 휴일이면 인근 지역 찾아든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우렁찬 목소리로 찾는 손님을 맞이하는 토계촌 이야기를 들어봤다.

■ 계속 실패했던 사업, 그리고 30여 년 전 1억 원의 빚

황규인 대표는 옥천읍 대천리 대골에서 태어나 삼양초(29회), 옥천중(26회)을 졸업하고, 대신고(5회)를 나와 아내 최금숙씨를 만나 결혼했다. 신혼 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군북면 국원리에서 육계 사업을 시작했다. 육계가 돈이 된다는 소문만 듣고 멋 모르고 뛰어들었기에 여러 문제점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마땅한 거래처도 없는데 매달 들어가는 시설비, 사룟값이 만만치 않았다. 

“육계 5만여 마리를 키웠다가, 일 년 만에 망해서 빚이 1억원이 생겼어요” 대전에 호화스러운 전원주택이 오천 만 원 하던 시기, 젖먹이 딸의 우윳값도 없었다. 가족이 거리로 나앉게 생겨 어떤 일이라도 해야 했다.

육계를 처분하고 재래종 토종닭을 키우기로 했다. 트럭에 닭을 가득 싣고 장계리, 금강유원지에 있는 음식점에 납품했다. “가게마다 10마리씩 내려줬어요. 산에 풀어 키워서 닭이 건강하고 멋있어서 다들 좋아했죠”. 식당 주인들이 닭을 팔아 대금을 지급한다고 하였기에 닭 값을 받아 생활비도 쓰고, 밀린 이자도 내고, 사료를 살 생각에 행복한 일주일을 보냈다. 황대표는 약속했던 일주일이 지난 뒤 수금을 위해 거래처에 방문했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손님은 북적이는데 일주일 동안 닭을 한 마리도 못 팔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며칠 뒤 다시 방문했더니 돈이 없다고 하는 거예요. 닭값을 안 주면 닭을 회수한다고 했더니 식당 주인이 닭을 못 준다고 화를 내더라고요” 밖에서 싸우는 소리를 듣고 손님들이 무슨 일이냐고 식당 밖으로 나왔고, 상황을 설명했더니 손님이 주인 멱살을 잡으며 싸움이 시작되었다. “알고 보니 제가 키운 닭을 잡아 주겠다고 말하고 식당 주인이 닭을 바꿔 제공한 거에요.” 황대표는 손님과 주인이 싸우는 사이에 닭을 싣고 왔다고. 재래종 토종닭 사업은 쉽지 않았다. 3개월 키워 출하하는 일반 토종닭과 달리 황대표의 재래 토종닭은 6개월을 산에 풀어 키웠다. 한 철 장사에 높은 순이익을 원하는 일부 유원지 식당들의 선뜻 구매로 이어지지 않았다.

■ 간이 천막에서 시작한 장사

힘든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생기기 마련. 우연한 기회에 황대표의 31년 요식업 사업이 시작되었다. “군북면에 쓰레기 매립장이 생길 때 주민들이 반대했더니, 군에서 천막을 만들어 멜론 장사를 하게 해 줬어요.” 간이 천막으로 된 15평짜리 식당 자리가 남았다는 소식을 듣고, 손맛 좋기로 소문났던 아내와 식당을 운영해 보기로 했다. 양심적으로 장사하는 게 황 대표의 창업 모토였다. “손님이 고른 닭을 그 자리에서 표시하고 닭을 요리해 줬죠.” 2주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맛있다고 소문이나 손님이 줄을 섰다. 산에 풀어 키웠기에 고기 맛도 좋고, 다른 식당에 비해 백숙 가격도 비싼 편이었지만 장사가 잘되었다. 그렇지만 겨울에는 손님이 없었다. 멜론 장사하는 가게들은 문을 다 닫고, 주변이 썰렁했기 때문. 겨울에는 휴식을 취하고 봄부터 다시 장사할 생각에 문을 닫고 쉬고 있었다. 집에서 쉬고 있는데 누군가 현관문을 두들겼다. 종종 오시던 손님이었다. 그곳에서 황대표 인생의  은인을 만났다. 다짜고짜 손님은 “닭집이 여기만 있는 줄 알고 있냐”고 화내면서 말하며 “성실히 장사하는 모습을 보고 응원해 주려고 오는데, 가게 문을 닫고 있으면 어떤 사람이 다시 식당을 찾겠냐”고 말했다. 그 후 매주 일요일마다 친구, 가족, 친지를 데리고 와 삶에 대한 조언과 방향성을 잡아 줬다고”. 장사하던 중 IMF가 터졌다. 오히려 황대표의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처음 겪는 실직에 퇴직금을 가지고 다들 식사하러 오는 거예요. 그때 빚도 갚고, 지금의 식당 자리도 매입해 건물을 지었죠.” 천막 살이에서 어엿한 건물로 이전하니 매주 조언해 준 은인이 다시 나타나 “자네가 이렇게 자리 잡았으니 이제 그만 올게요.”라고 말하고 떠났다고 한다.

토계촌 메뉴판.
흑염소탕.

■ 식문화 변화에 발맞춰 메뉴 변화

2000년부터 지금의 자리로 이사와 단골을 맞이하고 있다고. 직접 키운 닭을 가지고 손맛 좋은 아내가 국산 재료를 넣고 끓여냈기 때문에 30년째 찾는 단골도 많다. 

식당 한쪽에는 평상이 있어 단체 손님도 구읍의 풍경을 즐기며 식사할 수 있고, 작은 방도 있어 인기가 좋았다. 옻닭은 옻 물에 토종닭을 삶아내 개운하고 칼칼한 맛이 일품이고, 각종 한약재를 넣어 끓여낸 한방백숙, 국산 고춧가루와 마늘을 넣어 매콤하게 익혀낸 닭도리탕이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조류 인플루엔자에 손님이 뚝 끊기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손님의 요청으로 보신탕 판매를 시작했다. 보신탕 잘 끓인다는 사람을 10여 명을 넘게 면접을 봤지만 황대표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끓여내는 사람은 없었다. 냄새에 민감한 그의 입맛을 맞추는 요리사는 없었다. 황 대표와 최금숙 씨가 머리를 맞대 연구하여, 냄새 안 나는 보신탕을 개발해 손님에게 제공했다고.

세월이 흘러가며 식문화 변동이 따르는 법, 보신탕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변화했고, 개고기 식용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다. “보신탕 판매 여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오랜 친구가 키우던 흑염소를 잡아 줄 테니 연구를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전국의 염소탕 맛집을 찾아다니며 맛보러 다녔다. “가서 먹어보니 냄새가 나는 곳도 있었고, 먹을 때는 괜찮았지만 포장하면 맛이 없더라고요. 아내와 식당 영업시간이 끝나면 새벽 3시까지, 일 년 넘게 연구를 해서 지금의 염소 요리가 완성되었죠” 지인들을 불러서 시식회를 하고, 포장해 먹어보라고 했다고. 먹어본 사람들이 냄새도 안 나고 맛도 좋다고 했기에 흑염소 요리 판매를 시작했다.

그렇게 완성시킨 메뉴는 닭 샤브샤브, 옻닭, 한방백숙, 닭도리탕, 누룽지 백숙, 한방오리백숙, 녹두삼계탕, 흑염소탕과 전골. 모든 음식에 자신이 있다. 국산 재료로 만들어낸 반찬도 어엿한 주인공으로 자리 잡았다. 깍두기, 샐러드, 무장아찌, 볶은 김치, 물김치가 기본 반찬으로 나가는데 그중 무 장아찌는 손님의 요청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무장아찌가 반찬으로 안 나가면, 단골들이 화낼 정도에요” 말랑한 무장아찌는 채칼로 썰어 내기 어려워 일일이 손으로 썰어냈다.

손님이 많아 무장아찌를 썰어낼 시간이 부족하여 제공하지 못했는데 항의가 빗발쳐 미안한 마음에 잠을 못 이뤘다고. 한동안 기계를 찾아 돌아다녔고, 딱 맞는 기계를 찾아냈다. 간장에 절여 짭조름한 무를 양념에 맛있게 무쳐내어 1kg에 만 원씩 판매하는데 손님들이 선물용으로 여러 통씩 사 간다고.

해병대 옥천군지회 13대 회장을 지낸 황규인 대표가 지난해 받은 공로패.

■ 해병의 이름을 가지고 정직하게 운영

30여 년간 식당을 하며 아침 5시 30분에 기상하여, 닭 농장에서 닭 사료를 주고, 시장을 보고 9시 10분에 출근하는 삶을 살았다. 분윳값을 걱정하던 큰딸은 회계학과를 졸업해 백화점에서 근무하고 있고, 작은딸은 식당 하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는지 음식 관련 자격증을 9개나 취득해 더본 코리아에 입사했다고. 빚더미 청년에서 어엿한 37번 국도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은 비결은 ‘정직함’이다. 그의 정직함은 ‘허식을 삼가라’는 해병대 정신에서 비롯했다. 그렇기에 때로는 해병대 옷을 입고 손님을 맞이하며 해병의 정신을 되새긴다. 식당을 운영하면서 옥천에 해병대 옥천군지회 제13대 회장을 지내면서 지역 사회에 봉사활동 열심히 했다. 6.25 참전 용사인 문최신 선배의 생일을 챙겨준 기억, 매년 대청호의 쓰레기를 수거하고, 인명 구조를 위해 힘쓴 기억이 떠오른다고 한다. “한날은 영업 준비를 하고 있는데 소방서에서 출동 요청이 들어 왔죠. 방아실에서 배가 침몰했다는 거에요.” 저녁 장사에 쓸 닭도 준비도 못 했지만, 보트를 싣고 출동하여 수색에 참여했다. 수색은 다음 날까지 이어져 손님을 받지 못했다고. “그 이후로도 계속 출동 요청이 들어왔지만, 장사보다 사람 목숨이 우선이라 생각되어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어요.”

황대표는 식당을 지속할 수 있었던 1등 공신으로 아내 최금숙씨를 뽑았다. “아내에게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지요. 식당 일이 참 힘든 일이잖아요”라고 말하며, “앞으로도 정직함을 기반으로 꾸준히 식당을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계촌 가게 내부 모습.
토계촌 가게 내부 모습.
토계촌 가게 내부 모습.
KBS, SBS에 방영된 모습이 담긴 사진 액자가 가게 벽면에 걸려있다.

옥천군 옥천읍 성왕로 1280
043-733-7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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