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노인 상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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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천닷컴
  • 승인 2020.09.2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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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하
옥천읍 삼양리

지난 2013년 치매환자인 친구의 병 문안차, 인생 마지막 정거장인 노인요양병원에 갔습니다. 

거기에는 가정에서 감당하기 어려워 따돌림을 받고, 사회에서도 버림받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절망에 빠져있는 늙고 불우한 환자를 보았습니다.

그 순간 외롭고, 비참한 모습에 현대판 고려장 같은 생각이 들어 불쌍하고, 안쓰러워 바라보고 바라보다가 뒤돌아서서 눈물을 감추었습니다.

이를 보고 난 후, 내가 죽을 때는 정신이 온전할 때 죽어야 되는데, 그러지 않고 우리가족에게 고통을 안겨주면 얼마나 불행하고, 저주할까? 그런 생각에 오래 사는 것도, 죄가 된 것 같았습니다.

나도 어느새 늙어 나이 80넘어 죽을 때가 되었는지? 아침에 일어나면 갈 곳도 없고, 오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 외롭고 쓸쓸합니다. 설령 간다고 한들 어느 누가 반겨주지도 않고, 말벗도 없어 눈치만 보입니다.

집에서나 나가서나 좋은 말, 바른말을 하여도 따라주지 않습니다. 나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왜? 인간관계가 더 어려워지고, 꼬여 가는지 모르겠어요?

가족 친지들과 별일이 아닌 것도, 부딪치고 서운한 마음에 그냥 넘어가지 못합니다. 아마 제가 늙고 죽을 나이가 되어서 고집이 세고, 답답한 꼰대인가 봅니다. 그래서 나의 젊은 시절 어떻게 살아왔나 뒤돌아보았습니다.

지난날, 나는 산전수전 모두 다 겪고 살아와서 그 흔한 감투하나 써보지 못하고, 명예와 공헌도 없고, 업적도 없이 살아왔습니다. 

이에 내가 살아있을 때, 무엇을 남기고 죽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앞으로 몸만 건강하면 늙고 불우한 환자를 돕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탐욕도 벗어놓고, 뜻있고, 보람 있게 살아가려고, 지난 2014년 나이 78세에 옥천 노인 복지관에서 3개월 동안 불우노인 상담 교육을 받았습니다.

불우노인상담가로 봉사하고자, 교육을 받으면서 생각하기를 내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는 늙은이가 주책없고,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닌가?  이것을 배워서 내 생활에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닌데 공부해서 무엇 하나?

그러나 지금까지 나를 잘살게 해준 나라에 고마움과 주변사람들의 보은(報恩)에 감사하여 앞으로 늙고 불우한 환자를 도와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바로 이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교육상담 내용은 그 분들의 건강과 삶의 욕구, 경제사정과 사회와의 관계 등 여러 가지 주고받는 즐거운 이야기입니다.

나는 말 많은 사람보다 하나라도 실천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불우한 환자의 아픔을 함께하지 못해도, 그분들의 아픔을 걱정하고, 칭찬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엔 남이 보면, 늙은이가 그 주제에 무슨 봉사한다고, 흉볼 것 같아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몸은 늙어도 힘과 용기가 있어  늙고 불우한 환자를 찾아갔습니다.

처음 본 낯선 사람으로 초면부지로 만나 입 다물고, 서먹서먹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늙고 불우한 환자에게 삶의 활력을 갖게 넉살좋고 변덕쟁이로 웃기고, 노래도 불러주고, 친절한 말벗이 되어주면 좋아합니다. 이에 제가 오래 살은 보람과 긍지(矜持)를 갖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둔 소외된 늙고 불우한 환자를 보면, 비바람이 불면 낙엽처럼 떨어지고, 구름처럼 사라져 가는 외롭고, 가엾은 환자입니다. 그분들이 기껏 살아 봤자, 앞으로 5년 이쪽저쪽입니다. 

이를 보고 남의일 같지 않고, 앞으로 나에게 닦아올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더 열심히 보살펴주었습니다. 지난날, 다정 했던 친구들은 이미 하늘나라로 떠나갔고, 지금은 어디를 가도 말벗도 없고, 반겨주지 않아도, 늙고 불우한 환자를 찾아가면,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듯이 잔잔한 미소로 따뜻하게 맞아주어 외로운 내 마음을 달래주어 즐겁고, 행복합니다.

그분들과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되어 어느새 친구가 되어 정서적 친밀감에 자주 찾아 갔습니다. 이에 “기쁨을 나누면 배로 늘고, 고통을 나누면 반으로 준다.”는 진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내 나이 85세, 그동안 칙칙폭폭 힘차게 달리던 기차는 녹 슬은 철길에서 멈추었습니다.

이에 아쉬움은 환자의 구석구석을 모두 다 헤아려주지 못하고, 두터운 마음의 벽을 허물기가 어려웠고, 또한 삶의 대한 욕구와 애착을 갖고 있는 그분들에게 물질적 보탬이 되어주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늙은 저보다도 젊은 사람들과 상담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하는 일없이 유유자적 살아갑니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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