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효숙 작가 (옥천읍 문정리)

며칠째 하늘이 열렸는지 비가 내렸다 그치고 또 내리고 밖에 내놓은 물건의 비닐을 씌웠다 벗겼다

이러길 오늘도 너댓 번은 되었다.

또다시 비가 퍼붓기 시작했고 그 사이 비를 뚫고 나타난 단골손님이 물을 뚝뚝 흘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쫄딱 맞은 비에 몇 가닥 남은 머리카락이 민머리에 달라붙어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가게 개업할 때부터 오신 손님이니 우리 가게에 오신지 3년은 넘은 것 같다.

두 달에 한 번씩 부인 속옷을 선물한다면 사 갔다.

포장을 해드릴라 치면 손을 저으며 누가 보면 큰일 난다고 안 보이는 검정 비닐봉지에 넣어달라고 했다.

자랑스러워하셔도 돼요. 왜 창피해 하세요. 하면 얼굴을 붉히며 웃고는 했다.

어느 날은 화장품도 사 가고 고급스런 블라우스도 사 갔다.

얘를 먹이지 않고 물건을 쉽게 구입해 장사하는 보람과 즐거움을 주는 큰 손님이었다.

아고 홀딱 젖었네. 겸연쩍게 머리를 쓸어내리며 단골손님은

여긴 가게는 못 비우지요? 했다.

왜요?

ㅡ복숭아 농사를 짓는데 요즘 판로가 없어서........... 아주 달고 맛있는데...

아... 그래요? 제가 과일을 엄청 좋아하는데 좀 선물할 때도 있는데 잘 됐네요.

낮엔 못 가고 저녁에 가도 되나요?

ㅡ그럼요.

내일 저녁에 간다 약속을 잡고 불러주는 주소를 메모해 놓고 과일을 좋아하는 제이에게 함께 가자 전화를 했다.

가게를 일찍 접고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고 과수원으로 향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마을회관이었다.

어스름 저녁 기운이 내려앉은 마을 정자에 모여있는 어른께 단골손님의 성함을 말하니 그런 사람은 이 동네에 없을뿐더러 과수원도 없다고 했다.

단골손님께 전화를 하니 제대로 알켜줘는 데 왜 못 찾냐고 언성을 높이며 다시 잘 찾아오라고 했다.

운전하던 나는 제이에게 주소 다시 찍어 봐. 하고 네비가 알려주는 데로 가니 이번에는 외딴 산길이 나왔다.

그러길 수 십 번, 워낙 길치인 나와 통화하던 단골손님의 목소리는 점점 격앙되었고 남들 다 찾아오는 길을 왜 못 찾냐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산길 주변을 삼십 분 정도 뱅뱅 도니 어지러워 토할 것 같았다.

옆에 앉은 제이에게 제대로 찍었냐고 다시 확인 하니 적어준대로 찍었다고 했다

또 과수원 주인에게 전화가 오기에 사장님 , 주소 다시 문자로 좀 넣어주시면 안 될까요.?

ㅡ나는 문자 같은 거 못혀!

그럼 여기 버스 정류장으로 나와주시면 안돼요? 거기서 기다릴게요.

ㅡ차가 없어 못 나가!

차 없으세요?

ㅡ트럭 있는데 아들이 서울 가락시장으로 복숭아 싣고 갔어.

ㅡ그리고 이 빗속에 어딜 나오라는겨!

친절하고 우호적이었던 단골손님과의 관계는 그렇게 서로 목소리를 높히며 불협화음이 일기시작했다.

좁은 산 길에서 후진하며 옆 고랑으로 빠질까 봐 하도 신경을 썼더니 머리도 아파왔다.

ㅡ”아직도 못 찾았어? “다시 전화해서 소리를 지른다.

이미 서로를 향한 존칭어는 사라지고 (?)급기야는 누가 목소리 더 큰가 내기하듯 악을 바락바락 쓰기 시작했다.

제대로 알려줘야 찾아가지요. 나도 빽~소리를 질렀다.

그럼, 사장님 내일 저희 가게로 갔다 주시면 안돼요?

ㅡ못가~!

........

그럼 택배로 붙여주세요.

ㅡ여긴 택배 취급은 안해!!!!!

.............그럼 못찾겠는데 어떡게 해야 해요. 알았어요. 안 살래요.  날은 깜깜해지고 이러다 집도 못 찾아가겠어요. 

그러자 단골 손님은 사지 마~!!! 이까짓 거 열 박스 내 안팔아도 그만여. 오지마아! 소 여물로 주고 말껴.

전화기는 스피커 폰으로 켜 놓았는데 그만 옆자리에 앉았던 제이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나도 말을 하다보니 그만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ㅡ웃어? 남 속터지게 하고 웃어? 그렇게 길도 못찾으면서 장사는 어떡게 해? 응???

생긴 거하고는 영 틀려먹었네. 남들 다 찾아오는데 왜 못찾아오느냐구... 엉?

저쪽에서 들리는 말이다.

그 말에 둘이 허리가 끊어질듯 웃어대고 있었다.

안 팔테니 오지 말라고... !

그리고 전화를 뚝~ ! 끊었다.

시간을 보니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지났다.

경기도 안 좋은 요즘 큰 단골손님 하나 놓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소 적은 메모지 좀 줘 봐.’

불을 켜고 네비를 확인하니 글씨를 휘갈겨써서 잘못 알아 본 제이는 1길을 2길로 찍었네... 이런~~

시골 산길이니 사방이 깜깜 하다.

다시 찍은 주소로 출발하니 과수원이 나왔다.

스무번 정도 전화 통화를 해서 이제 단골손님의 화난 목소리를 다시 들을 생각을 하니 겁이 나기도 하고 민망해서 할 수 가 없었다.

옆자리 앉아있는 제이에게’ 나 못하겠어 한 번 다시 해 봐’, 하고는 전화를 걸고 스피커를 켰다.

전화를 받은 단골 손님은 대뜸 ‘안팔아... 안판다고 ... 천만 원을 줘도 안 팔아... 끊어! ‘

여보세요... 그게 아니고 사장님. 이제 찾았어요... 하는데 그만 전화가 끊겼다.

나도 무서워서 전화 못하겠어. 제이가 전화기를 다시 나한테 준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용기내어 다시 전화를 했다.

굉장히 부드럽고 순하고 공손한 목소리로

사..장... 님이이임. 찾았어요. 과수원 찾았어요. 외딴 집 하나 있는 게 사장님 과수원이지요.?

ㅡ... 그려... 찾았구먼....

...네....찾았네요... 하하하.

좀 나와주시겠어요오오오... 옆에 앉은 제이가 콧소리로 말을 했다.

ㅡ...그려요... 내 손전등 들고 나갈테니 불빛 있는 데로 와요.

아... 다시 예전의 친절한 단골손님 상태로 회복되고있었다.

손전등을 비치던 단골손님을 마주하니 화를 가라앉히느라 애쓴 표정이 역력했다.

... 사장님이 제대로 알려주셨는데 네비도 잘못찍고 그만 동네 어른들이 잘못알려주셔서 헷갈렸네요.

죄송해요. 신경쓰게 해서...

ㅡ요즘 네비 믿을 거 못돼요. 그리고 어느 늠이 그렇게 말한겨, 쫓아가서 그냥 주리를 틀어버리게...

내 가만히 안 둘껴. 사람을 이 고생을 시켜? 어떻게 생겼어요. 내 이늠을 그냥...... 아니에요. 저희가 네비도 잘못찍고 길치라 잘 못찾은 거에요.

아이고... 이 복숭아에요? 세상에 싱싱해라~

ㅡ찾아오느라 고생했는데 먹어 봐요.하고 무심히 복숭아를 건넨다.

...네. 사장님, 아이고...너무 맛있네. 너무 맛있어. 이렇게 맛있는 복숭아 먹으려고 이 고생을 했나베.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복숭아는 생전 첨 먹어보네... 너무 맛있어요. 사장님이임.

너무 맛있어 눈물이 다 나올라고 하네. (진짜 눈물 나왔다. 하~ 찾느라 고생해서..)

붉은 전등이 매달린 움막 아래 좀 전의 목소리를 높이며 공격적이었던 과수원 사장님의 얼굴이 세상 행복한 얼굴로 변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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