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째 나눔 실천하는 ‘광신수출포장’ 김중운 대표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일하며 어려운 이웃 돕고 살고파

“나는 자랑할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에요” ‘광신수출포장’의 김중운(77) 대표는 겸손하게 말했다.

■ 옥천 구석구석, 온정의 손길을 내밀다

스스로 ‘자랑할 게 없는 사람’이라 말하지만 김중운씨 지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충북지부 옥천지회 이종선 지회장은 “정말 훌륭하신 분”이라며 김중운씨를 칭찬했다. 67년과 69년 두 차례 월남전에 다녀온 참전용사인 김중운씨는 생사를 함께한 전우들이 따뜻한 명절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에 매년 추석이면 성금을 들고 고엽제전우회 사무실을 방문한다고 한다. 지난 9월 2일에도 김중운씨는 고엽제전우회에 성금 200만원을 기탁했다.

김중운씨가 옥천에서 산 세월은 올해로 40년. 옥천에 와서 고생을 많이 해 미운정이 들었다고 말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옥천의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김중운씨는 2007년부터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돕기 시작했다. 그가 내민 온정의 손길은 지역사회 이곳저곳에 닿아있다. 그는 고엽제전우회 뿐 아니라 옥천군노인장애인복지관, 옥천군 장학회 등에 정기적으로 성금을 내고 있다고 한다. 연말이면 불우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군청을 찾아가 기부금을 낸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쉬지 않고 일하며 베푸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 김중운씨. 그의 삶을 좀 더 알아보고자 7일, 매화리에 위치한 그의 공장을 찾았다. 쿰쿰한 톱밥냄새와 쿵쾅거리는 기계소리 사이로 김중운씨가 보였다.

■ 적은 돈이라도 베풀면 더 큰 행복으로 돌아와

그가 운영하는 ‘광신수출포장’은 기계제품을 수출용 규격에 맞게 목재 박스로 포장하는 회사다. 포장하는 제품에 따라 박스의 모양과 크기가 다 다르기 때문에 모든 작업을 수작업으로 해야하는 힘든 일이다. 김중운씨의 아들도 같이 일을 하다가 포기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렇게 힘든 일인데도 직원 하나 없이 김중운씨와 그의 아내 정순애(72)씨 단둘이 하고 있다. 부부는 매일같이 집이 있는 마암리에서 공장으로 나선다. 돈 욕심 때문이 아니다. 그가 일손을 놓지 않는 이유는 베푸는 삶이 주는 기쁨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정도면 먹고 살만큼 벌었는데 쉬지 그러냐’고 말해요. 그런데 저는 돈 벌고 싶어서 일 하는 게 아니에요. 남들은 놀러가서 찍은 사진이나, 좋은 차, 좋은 집을 자랑하는데 저는 자랑할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럴 돈으로 조금이라도 더 벌어서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고 싶어요. 적은 돈이라도 베풀면 더 큰 행복으로 돌아오더라고요”

■ 쉽지 않았던 옥천살이, 끼니 챙기기도 어려웠던 시절

김중운씨의 고향은 충북 음성이다. 하지만 12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형님이 사는 서울로 올라가 학창시절을 보냈다. 이후 경기도 성남과 광주에서 일하며 아내를 만나고 두 아들을 키웠다. 

그가 옥천에 터를 잡은 건 81년. 처음 사업을 시작한 75년도부터 물건을 납품하던 회사가 공장을 옥천으로 옮길 때 함께 내려왔다. 그의 옥천살이가 쉽지만은 않았다. 옥천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 크게 사기를 당해 잠잘 시간도 없이 일을 해도 빚 갚는데 돈이 다 빠져나가 제대로 끼니를 챙길 수도 없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주변의 도움으로 일어섰던 기억이 나눔 실천의 ‘원동력’

그래도 김중운씨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삶에 여유가 생기자 어렵게 생활하는 이웃이 그의 눈에 밟혔다. 그렇게 2007년부터 주변 이웃을 돕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힘들었던 시절의 기억이 지금 나눔을 실천하는 원동력이라고 한다.

“사기를 당해 진 빚을 갚느라 열심히 일을 해도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어요. 참 서럽더라고요. 그래도 여기저기서 도움을 받아 버틸 수 있었어요. 그 때 나를 도와준 사람들이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겁니다. 그 서러움을 알기에, 그리고 조금만 도움을 받으면 이겨낼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지금은 할 수 있는 최대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 아내와 함께하는 나눔, 기쁨도 두 배

아내 정순애씨도 그의 선행에 힘을 보태는 ‘파트너’다. 회사를 다닐 적 중매로 만나 서로 잘 알지도 못하고 결혼했지만 50여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하다보니 아내만큼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그간 고생만 한 아내에게 미안해서 이제 그만 일하고 쉬라고 매일같이 말하지만 정순애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공장에 나와 일손을 보탠다.

“아내 생각하면 참 미안해요. 같이 살면서 고생만 시켰는데... 요즘 몸도 좋지 않은데 쉬라고 해도 쉬질 않아요. 이렇게 같이 일하고, 함께 어려운 사람들 돕는 걸 보면 고맙죠. 아내와 함께하니까 더 행복합니다”

■ 더 많은 이들이 베푸는 삶을 살았으면

김종운씨가 말하는 앞으로의 계획은 딱 한가지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일하며 베푸는 삶을 사는 것’. 도움을 줬던 기억보다 도움을 주지 못해 아쉬운 것들이 더 기억에 남아 옥천 곳곳을 찾아 어려운 이웃을 더 많이 돕고 싶다고 한다. 

그는 끝으로 “베푸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더 밝은 옥천이 되지 않겠냐”며 “더 많은 사람이 ‘나눔의 행복’을 알게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자랑할 게 없는 사람’ 김중운씨야 말로 옥천이 ‘자랑할 만한 인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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