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박춘

푸른 바다가 보이는 동해안만 고집했던 관광관이 나이가 들면서 바뀌어간다. 아기자기한 섬들이 이웃처럼 모여 사는 서해안. 그 갯벌에서 생태계를 관찰하고 낙지며 석굴에 소주 한 잔 곁들이는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작년과 달리 올해는 남해안으로 여행을 간다기에 어린아이처럼 기뻤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나라 지도를 보며 파도를 가르는 뱃전에서 남해안을 그려본다. 갈매기가 파도소리 장단 맞추며 춤을 추는 낭만에 젖어 어느새 등대에서 멈춘다.

통영 여수 목포 앞 바다를 살피다가 거제도를 들여다보니 거제대교에 놓여 섬이 아니었다. 바다에 다리를 놓는 대단한 건축기술에 놀라며 10년 전 버스타고 거제도를 다녀온 때가 생각났다. 하얀 파도가 조약돌을 때리는 몽돌해수욕장 밤하늘에 불꽃을 쏘아 대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이번 여행도 그때처럼 배를 타고 가야할 완도를 버스타고 간다니 배를 타지 아쉬움이 남았다. 

옥천의 여장부들이 10여 년간 모임으로 기금이 많아졌다. 작년에 주문진 1박2일 여행에 남편들을 끼워주어 장가를 잘 들었다고 아내자랑 늘어놓던 팔불출들. 비옷을 입고 통일 전망대에서 본 이북 군인들, 전쟁기념관, 펜션 앞 바다, 생선회, 주문진 어판장, 강원도에 폭설이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뒤로하고 옥천을 향하여 달리던 수없이 많은 추억들을 자주 이야기한다. 금년에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남자의 체면을 구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남자들은 아내에게 좋았던 추억을 시도 때도 없이 이야기 한다.

청산 사는 회원이 완도군 청산도가 옥천의 청산면과 자매결연 맺었으니 청산도로 가자고 제안하자 모두 찬성하여 확정하고 작년처럼 남편들로 함께 가기로 했다고 전한다. 소리 내어 웃지도 않고 속으로만 뛸 듯이 기뻐했다.

새벽5시 우리나라 최남단을 향하여 25인 승합차가 안개 속을 질주한다. 해님이 수줍은 듯 고개만 내밀고 배시시 웃는다. 단풍처럼 천지가 붉은 일출을 보면서 아름다움에 취한 버스는 빨리 달릴 수가 없었다. 이리 휴게소에 들려 햇빛이 많이 드는 잔디밭에 앉아 아침을 먹는다. 마치 잔치 집 같은 분위기에서 생일상을 받는 마음으로 찰밥을 먹는다. 오묘한 국맛은 국을 만든 사람이 복순씨라는 사실을 알고 감사의 박수를 쳤다.

드디어 완도에 도착햇다. 섬이 아닌 완도의 랑구에 고기잡이배 들이 활기에 차있다. 완도대교가 놓여 섬이 사라진 아쉬움을 달래려고 청산면과 자매부락을 맺었다는 청산도행 카페리호를 탔다. 잔잔한 무렬을 가르며 화물차며 버스와 자동차 실은 배가 고동소리를 울린다. 옥천의 청산면에서 왔다고 우리를 소개한 청산면 친구 덕에 우리는 3층의 선장실을 직접 들어가 선장의 운항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별도 달도 없는 캄캄한 밤 좌표 하나에 의지하여 섬과 섬 사이를 빠져나가는 카페리호의 모습을 연상하며 선장님께 무언의 존경을 표시 했다. 스크루가 돌아가며 푸른 바다를 가르는 하얀 물보라를 보니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하다. 

갈매기가 보이지 않아 약간 섭섭했다. 서해 바다에서 관광선을 따라오는 갈매기와 이야기 했던 낭만, 부산자갈치 시장 앞바다에서 만난 갈매기와 마주앉아 이야기하던 때가 강렬히 떠오른다. 자갈치 시장에 살고 있는 갈매기와 마주앉아 옛날이야기를 했다. 갈매기에게 “한 소녀를 아버지 산소에 데리고 가서 결혼하자고 프러포즈했던 총각 때 일”을 폭로했다. 갈매기는 초지일관 40여년을 함께한 노부부의 모습이 아름답다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추억을 추억하다보니 어느새 청산도에 도착했다. 굽이굽이 아름다움을 음미하며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 속에 묻혀 40년 전 소녀처럼 사진 찍는 일행들. 영화 서편제 촬영지에서 마치 배우처럼 부부가 손을 꼭 잡고 걷는다. 봄의 왈츠 촬영지 언덕위의 하얀 집 세트장에서 영화의 주인공처럼 포즈를 잡던 너도 나도 사진을 찍는다. 승합차는 천천히 청산를 일주하고 민박집에서 여장을 풀었다. 바다의 별미 생선회를 먹는 시간이다. 집에서 준비한 음식과 생선회가 끝없이 나온다. 알뜰한 부인들에게 장가는 잘 들었다고 아부성 발언을 하는 청성의 한 선생에게 남자 망신 다 시킨다고 집중적으로 소주잔을 권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배가 조금씩 움직인다. 트럭과 버스를 가득 실은 보길도를 간다고 고동을 울린다. 국립해상공원임을 실감하며 푸르고 아기자기한 남해의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가슴이 뻥 뚫리며 머리가 맑아진다. 보길대교를 지나며 섬과 섬 사이를 잇는 건축기술의 발전에 혀를 내둘렀다. 문명은 자연을 파괴한다는 논리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다리를 건너자 윤창하 해설사님이 동승하신다. 

송시열 선생이 제주도 귀향 가다가 머물었다던 윤선도 명승지에 들렸다. 옥천이 고향이고 이원면에 사당이 있는 송시열 선생님의 말이 나오자 일행은 모두 친근감을 느꼈다. 세연정을 지은 건축기술의 우수성을 해설사에게 들으며 “시멘트가 없던 시절 선조들은 수해에 대비하여 바위를 쌓던 과학적인 생각을 4대강 사업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모른가 보다.” 라는 해설사의 혼잣말에 우리는 모두 박수를 보내 주었다.

제주도가 보이는 <망끝>전망대에서 점심을 먹는다. 산해진미 앞에 놓고 술이 빠질 수 없다며 안내면 영희씨가 술을 권한다. 시인이 건배제의를 한다.

하늘에는 별이 있고
땅에는 꽃이 있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정이 있어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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