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일수 적어 전체 모이는 합창제 운영 어려웠지만 그대로 진행
카톡으로 녹음해 보내고, 등교하는 날 점심시간, 쉬는시간 쪼개서 ‘맹연습’
여중 학생, “친구 만들고, 진로 정하는데 도움, 초등학교때부터 기대했던 그대로"

여중합창제를 준비하는데 반마다 주요한 역할을 해둔 친구들을 지난달 10일 옥천여중에서 만나 소감을 들었다.
여중합창제를 준비하는데 반마다 주요한 역할을 해둔 친구들. 지난달 10일 옥천여중에서 만나 소감을 들었다.

지난달 11일 옥천여중에서 ‘시와 세계를 노래하는’ 온라인합창제가 열렸다. 평소라면 예술회관을 빌려 열렸어야 하는 오프라인 합창제지만, 지금은 반별로 미리 찍어둔 영상 모음본을 함께 시청하고 있다. 영상 속 학생들이나, 영상을 보는 학생들이나 눈이 초승달처럼 변해있다. 하얀 마스크 속 숨겨진 함박 웃음을 상상해봄직하다. 영상이 끝나자, 영상을 보는 학생과 교사들 모두 미묘한 감정이 밀려온다. 기쁨을 넘어 몇 주간 맘을 졸여가며 고생했던 시간이 떠올라 눈물이 핑 돌았다는 이도 있다. 사실 온라인 합창제를 결정하기까지 우려가 더 높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평범한 일상을 잠식하고, 학생들이 학교에 와서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했어요. 겨우 학교 쌍방향 수업을 운영하며 교사들이 밤을 새던 시점이었죠. 합창제를 운영하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어요. 그래도 자존감캠프, 축제 등 초등학교때부터 옥천여중 1학년이 되는 날만 기다렸던 학생들의 기대에 찬 눈초리를 외면할 수 없었어요.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죠.” (1학년 김태량 부장)

일단 ‘운영’으로 방향을 정한 교사들은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1학년 중 합창제에 관심을 가지고 중심이 되어 운영해줄 멤버들을 모집했다. 그 학생들과 함께 여중이 활용하는 쌍방향 소통채널인 ‘팀즈’를 활용하고, 학생들은 ‘카카오톡’ 단톡방에 초대했다. 평소라면 교실에 모여서 머리를 맞대야 하는 학생들이 온라인 소통을 시작했다. 채널만 달라졌을 뿐, 운영방식은 똑같았다. 나태주 시인의 시를 부르기 쉬운 노래 가사로 활용했다. 반별로 나뉘어 일본어, 영어로 된 곡도 선정했다.

■ 쉽지 않았던 합창제 초기, 마음이 맞자 진행도 술술

직접 모여도 쉽지 않은 합창제 운영이다. 더군다나 개학을 하고도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다가 조별활동이 많지 않았다. 같은 반이더라도 얼굴과 이름을 연결하기 어려운 친구들도 있었다.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다 보니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교실 안에서라면 금방 갈등을 해소했겠지만, 눈을 보지 못하고 대화하는 온라인 소통상황에서는 갈등 해소도 쉽지 않았다.

“단톡방이 있어도 안 읽는 친구들도 많았어요. 1이 사라지는(카카오톡에선 단톡을 읽고나면 옆에 숫자가 사라진다)데, 답은 아무도 안 하는 거에요. 갑자기 초대했는데 나가는 친구도 있고요. 마음이 많이 힘들었죠.” (조민희 학생)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하는 것도 합창제 운영의 목적 중 하나다. 유난히 갈등이 심했다던 2반은 슬기롭게 갈등을 해결해 나갔다. 비폭력 대화 연수를 받으며 회복적 생활교육에 관심이 높은 담임 교사는 학생들에게 훈계를 하는 대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친구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회복적 생활교육과정을 운영하기도 했다.

“정말 반에서 두 패로 나눠서 싸울 것 같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음악실에 반친구들을 모두 모아내셨어요. 색깔 공을 주시더라고요. 그걸 돌아가면서 잡고 서운한 점, 개선점을 모두 이야기했어요. 평행선을 달리던 친구들끼리 눈물이 터지고 속마음을 말했어요. 다들 서로 잘해보자는 의도였죠. 말하고 나니깐 속도 시원하고요. 그 계기로 정말 더 친해지고 그랬어요.”(박지우 학생)

같이 잘해보자는 마음이 맞자, 합창제 운영에 속도가 붙었다. 등교할 때는 틈틈이 연습하고, 부족하면 하교해서 목소리를 녹음해 친구들과 공유했다. 각종 무대의상과 소품들도 함께 만들었다.

“진짜 마음 맞으니깐 완전 열심히 하더라고요. 급식도 빨리 먹고 점심시간, 쉬는시간마다 모였어요. 학교 안 가는 날에는 카톡으로 녹음해서 보내고요. 소품 만들 때는 정말 가내수공업처럼 앉아서 종례시간까지 만들었어요. 선생님이 공장 그만 돌리라는 소리까지 했다니까요. 완전 재미있었어요.”(김지연 학생)

■ 꿈과 친구가 생긴 온라인 합창제, “의지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우여곡절 끝 술술 풀려간 합창제 촬영이 시작됐다. 무관중이지만,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무슨 상관이 있으랴. 익숙한 음에 시를 넣으니 흥이 난다. 준비해 온 다양한 소품도 눈에 띈다. 손을 씻는 노래가 나오면 비눗방울이 나오고, 레몬 노래가 나오면 레몬 머리띠가 나온다. 곰세마리 노래에는 넥타이를 한 아빠곰돌이, 앞치마를 한 엄마곰돌이, 아기 곰돌이로 분장한 친구들이 나온다. 반짝이로 온 얼굴에 스티커를 붙인 학생들도 있다.

반짝이 의상, 한복, 기모노를 입고 짝을 짓고 뺑글뺑글 도는 친구들도 있다. 막춤 경연대회다. 영상 곳곳에는 웃음 소리도 들어가있다. 깜찍함과 카리스마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특별 출연한 바삭한 딸기칩, 촉촉한 초코칩의 축하공연도 마지막에 녹화된다.

1학년6반 정채영 학생은 밤을 새면서 직접 노래 가사 하나하나를 수어로 번역해 만든 6반의 합창발표를 준비하기도 했다. “어려웠죠. 단어 하나하나 찾으니깐 정말 제대로 맞는지 확인하기도 어렵고요. 그래도 돌이켜보면 정말 합창제 아니었으면 이렇게 행복했을까. 이렇게 웃을수 있었을까 싶어요.”

합창제를 통해 진로를 정하고, 인생친구를 만든 학생도 있다. 그만큼 자고, 학원가고, 숙제하며 지루함이 밀려오는 긴 방학 같은 코로나에 합창제가 얼마나 큰 의미로 학생들에게 다가왔는지 보여주는 지점이다. 학생들은 합창제를 잊지 못할 학창시절의 추억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말한다.

“청성초에서 혼자 여중에 왔거든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는데, 이거 하면서 인생절친을 만들었어요. 너무 좋고, 행복해요.”(신은지 학생)

“제가 뭘 좋아하는지, 어떨 때 행복한지 잘 몰랐거든요. 그런데 이런 기회가 있으니깐 이런 문화기획이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앞으로 이런 길로 가고 싶어요.” (서예하 학생)

옥천여중 김정희 교장은 코로나 시국에도 합창제를 가능하게 만들어준 교사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저는 학생들과 교사들 모두를 봐요. 정말 그 열정에 눈물이 핑 돌았어요. 교사들이 온라인수업도 버거운데 합창제까지 기획한다는 건 쉬운일이 아니거든요. 오롯이 아이들 바라보고 교사들의 열정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옥천여중 연구부장을 비롯한 교사들은 코로나 상황에도 쌍방향 수업 확대, 온라인 조별활동, 온라인 라이브 초청회 등 바뀐 환경에 적응해나가며 기존의 교육활동을 유지해나가는 다양한 시도들을 해나갔고, 앞으로도 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코로나에도 학생들의 시간은 똑같이 흘러요. 학교 현장에서는 기존 교육방식을 유지할 수 없으니, 어려운 점이 많죠. 조별활동하려고 해도 관계형성이 안되면 효과가 떨어지고요. 그러니깐 더 열심히 기존 학교운영 방식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돼요. 맘만 먹으면 코로나로 좀 어려울 뿐이지 못할 게 어디 있을까요. 필요한 건 확인하고 지원해달라고 요청하면 돼요. 어려운 시간, 우리는 멈추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빛나는 시간을 만들어 나갈겁니다.” (안다겸 연구부장 교사)

인생친구와 꿈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은 여중 합창제.
인생친구와 꿈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은 여중 합창제.
옥천여중 합창제 준비장면.
옥천여중 합창제 준비장면.
옥천여중 합창제 준비장면.
옥천여중 합창제 준비장면.
옥천여중 합창제 준비장면.
옥천여중 합창제 준비장면.
옥천여중 합창제 준비장면.
옥천여중 합창제 준비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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