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용 (안남 화인산림욕장 대표)

각 나라 마다 인종,종교와 문화가 달라 어려움을 겪지만, 특히 독일을 여행하다 보면 다방면으로 우리와 다른 점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민족성과 문화의 차이에 따른 상충을 감안 하더라도 너무나 다른 이면을 대한 후, 이해에 도달 하기까지에는 시간을 요할 때가 있기도 했다.

1982년 쾰른(Colgne)의 어느 호텔에 머물고 있을 때 필자의 독일인 지인이 프론트에서 전화를 걸어와 점심으로 준비한 빵을 먹다가 그와 함께 그냥 외출해 버렸다.

외출에서 돌아오니 먹던 부위를 예리한 칼로 자른 다음 랩으로 아주 깔끔하게 포장해 두었다. 그리고 빵 옆에다 독일어와 영어로 "이 빵은 오늘 13:00시 이후부터 19:00시 까지는 안심하고 드실 수 있어 버리지 않았습니다"

메모지를 본 순간 뒤통수를 둔기로 얻어 맞은 충격을 받았다. 버려도 될 빵 한조각까지 신경을 써준 메이드(maid=청소 아줌마)에게 감사한 마음에 앞서 그들의 빈틈없는 생활철학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984년 하노바 근교의 호텔에 D가구 일행과 묵고 있을 때였다.

W사장이 필자방으로 전화하여 저녁을 안 먹었으면 내방으로 와서 함께 저녁을 먹자는 제의가 왔다.

룸 서비스(Room service)로 독일음식을 정찬으로 차린줄 알고 기대를 걸고 방으로 가보니 뜻밖에도 촛불을 켜놓고 모두가 둘러앉아 눈만 멀뚱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깜짝놀라 왜 이렇게 올빼미 신세가 되었냐고 묻자 " 김 부장방에서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고 별도로 찌개를 끓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가,박 이사방으로 옮겨도 또 전기가 나가고,정 상무방으로...결국 사장인 내방에서 이렇게 판을 벌였으니 어서 드시지요." 어이가 없어 필자가 전화로 프론트에 따졌더니 "전열기구를 많이 쓰신 것 같습니다. 우리 호텔은 모든 전기기구를 다 작동 시켜도 5%의 여유가 있답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는데 전기 담당이 퇴근 했으므로 내일 출근과 동시에 고쳐 드리겠습니다." 그 당시에는 현지에 가도 한국식당이 없고, 있어도 너무 멀어 궁여지책으로 경비절감을 위해 다량의 쌀과 라면, 김치 등, 식재료를 갖고 다녔던 시절이었다. 대형 전기밥솥과 커다란 김치찌개 냄비가 주범으로 전기용량 초과로 자동으로 차단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모두가 멋적게 서로 마주보며 웃으며 줄인배를 채워야만 했다.

이틑날 조식후 모두가 전시장으로 떠난후 혼자서 방에서 서류정리를 하고 있는데 누가 노크를 했다. 문을 열어보니 청소 아줌마가 방독면을 쓰고 있어 깜쩍 놀랐다.

왜 방독면을 쓰고 청소 하느냐고 묻자. 김치찌개 냄새 때문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견디다못해 방독면을 썼노라고 하여 웃을수도 없고 자초지종을 설명해줄 수도 없어 난감했다.

1986년 폭스바겐(Volkswagen)차로 유명한 볼푸스부르크의 단골 호텔에 첵크인을 하고 있을 때 B가구 일행이 호텔에서 강제 퇴출되고 있었다.

이유인즉 김치냄새와 담배꽁초로 카페트를 손상 시켰다는 것이다. 지배인은 카페트 짜집기 수리비와 세탁비를 청구하고 있었다.

멀쩡한 카페트를 버릴 수 없다고 짜집기 비용만 청구한 그들의 구두쇠정신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후 몇달후에 오스트리아가 가깝고 알프스 자락에 위치한 자그마한 한촌이 너무나 아름다워 민박으로 며칠을 머물 때 였다.

오늘 로젠하임(Rosenheim)에 가는데 같이 가자기에 동승했더니,이미 세 사람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읍내라든지 멀지않은 도시에 갈 떼에는 며칠전에 서로 상의하여 돌아가며 이렇게 품앗이하여 다닌다고 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한 나홀로만으로의 운행은 극히 드물다고 했다.

그러므로 독일에서는 히치하이커(hithhiker=편승객)의 천국이다.

2차대전 패전후 성냥을 아끼기 위해 세사람 이상이 담배를 피울시에만 성냥을 켰다는 일화가 얼른 머리를 스처갔다.

로렐라이언덕 근처 라인강가에 자리한 코블렌츠(Koblenz)에 살고 있는 독일 친구인 스테판 씨 집에 머물 때 였다. 그의 가족과 나들이를 위해 동승하여 주유소에서 오일게이지가 60%를 가르키니까 주유를 멈추었다.

그들에게는 우리처럼 만땅(가득 이라는 일본말)이라는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50~60%를 채울 때가 차의 밸런스(balance=균형)가 최상이며 애써 많이 넣는다고 하여 D/C도 안해주니 구태어 많이 채우면 차체에 부담이 가 연비도 떨어지고 타이어 마모와 모든 부품에 무리가 겹처 손상이 간다는 것이다.

1987년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을 거처 보덴호 동쪽 끝에 위치한 고즈넉한 린다우(Lindau) 근처 B&B(Bed and breakfast=숙박과 아침이 제공되는 민박집)에 머물고 있었다.

집뜰 안팎으로 온갖 꽃이 만개하여 무릉도원 처럼 아름다운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다.

주인장 얘기로 그 비결을 알았지만 이 많은 꽃을 기르려면 수도물로는 감내할 수 없어 지하에 커다란 탱크를 설치하여 빗물을 받아 사용하고 있단다. 수돗물을 사용하면 이웃들이 쓸 기회를 가로채는 셈이고,또한 식물이 잘 자라지 않을 뿐더러 그 요금이 대단하므로 모두가 빗물을 써서 아름다운 꽃을 기르고 싱싱한 채소를 얻고 있다고 했다.

라인(Rhein)강의 기적은 결코 우연이 아니고 독일국민들의 일치된 근검절약정신의 소산임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음식문화는 너무나 버리는 것이 많으며 나홀로 차가 대부분인데다 타인에 대한 배려없이 수돗물을 문자 그대로 물쓰듯 하고,부품 한두개만 갈아도 될 물건들을 통채 버리며 전기의 남용도 도처에서 쉽게 목격할 수가 있다.

목숨을 담보로 한 전쟁터 뿐만아니라 열사의 사막에도 마다 않고 외화벌이에 뛰어들었고, 밤을 낮삼아 오직 잘 살아보자는 일념으로 앞만 보고 일해온 세대를 잊었는가?

그리고 선진국에 가서 온갖 수모를 감수하며 기술을 체득해 와 오늘의 번영을 이룩한 아버지세대를 생각하여,그를 능가하는 도전정신을 신세대 젊은이들에게 기대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도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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