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 이하의 청춘들과는 방방곡곡을 누비며 다녔는데 20세 이상의 성인들과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저두 처음에는 순수한 참여자의 자세를 갖추고 시작했지만 여행의 조건은 처음의 의도를 빗겨 나가게 했습니다.

12기 연구과정의 마무리를 하자는 졸업여행은 2016년의 봄에 제가 미끼를 던졌고 우공이산의 믿음을 가진 일부 급진 세력들은 첫약속은 용두사미가 되어버리는 모임의 관행을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설마 ?’를 예상하면서 갈까말까 고민하던 일부 회의주의자들은 자신의 우유부단한 태도를 자책하며 필리핀 비행기에 오르고 말았지만 오히려 여행의 만찬을 포식한 이들이었습니다. 그 만찬의 후기는 그들의 블로그를 며칠 씩 도배하고 있었습니다.

필리핀 여행은 숙소를 예약 하지 않고 리무진 버스도 대절하지 않고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면서 다니는 여행이었습니다. 한때 푹신한 호텔과 리무진 버스 혹은 렌트카를 이용했던 이들에겐 딱딱한 나무의자와 같은 여행이었을 겁니다. 대중교통의 푹신한 좌석과 침대가 담보되지 않았기에 불안은 점점 마음의 시야를 좁게 만들었습니다. 여행이 깊어질수록 감정이 날카로워 지는 몇몇이 이를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필리핀 세부공항에 새벽 2시 정도에 도착했습니다. 버스터미널은 6시 정도 시작이라 우린 공항 대합실도 아닌 복도 근처에 짐을 풀어 놓고 무거운 몸을 부려 놓았습니다. 밤의 무게가 버거운 이들은 매트를 깔고 널부러졌습니다. 필리핀 공항 직원들이 친절한 미소를 보내며 지나갑니다. 이제는 손자도 보신 분들도 있는데 공항에 매트를 깔고 눕는 풍경이 재미 있습니다.

학교가 있는 발렌시아(네그로스섬 읍정도의 행정구역)까지 가는 여정은 녹녹치 않았습니다. 세부 버스 터미널에서 두마게티까지 가는 버스는 7시간이 걸립니다. 거의 막바지 다다르면 배를 타고 건너야하는데 태풍 때문에 배가 끊겼다는 루머가 떠돌았지만 일단은 선착장 근처까지 가자고 했고 그곳에 가니 루머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몇 번의 교통수단을 갈아 타고서야 발렌시아 필리핀 간디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일부러 마중 나와 달라는 부탁을 안했습니다.

우리들의 무(모)한 도전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오토바이 여행이 많이 걱정스러웠을 겁니다. 하지만 안전을 담보해야 한다면 패키지 여행을 시도했을 겁니다. 늘 여행을 떠날 때마다 지인들은 여행지에서 일어나는 무섭고 잔혹한 이야기로 태클을 겁니다. 간혹 위험한 여행지도 있지만 대부분 여행객의 태도 때문에 위험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필리핀에서 우리 교민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합니다. 졸부의 오만함이 화근이 되었을 경우가 많습니다. 

오토바이 여행 전날 2시간 정도 오토바이 주행 연습을 했습니다. 미리 연습을 해달라는 주문을 했지만 공염불에 불과했습니다. 오토바이 연습 중 넘어졌던 한 분만 3박 4일을 뒷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비록 뒷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가장 신나게 달린 이는 그분이었습니다. 

제일 처음 이들을 두렵게 한 건 오토바이와 트라이시클이 뒤엉킨 신호등도 없는 두마게티 시내를 빠져 나갈 때였습니다. 파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빈틈이 없어 보이는 행렬처럼 보였지만 그곳엔 나름의 질서와 배려가 있었다고 나중에 한마디씩 합니다.

속도는 40km였습니다.

*2017년 1월에 간디대학원 12기 졸업생들과 9박 10일의 필리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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