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년 (1943년 癸未생 78세)

어르신 댁 마당에 꽃들이 예쁘게 피었다. 
“물은 언제 주셨어요?”
속없는 물음에 
“엊그제 비가 왔잖우. 한 동안 물 안 줘도 시들지 않아요. 내가 물을 한 양동이 쏟아 붓는 것보다 비가 듬뿍 와 주면 식물에게는 더 좋은 거요. 세상 이치도 이와 같아요.
억지로 하려들면 탈이 나요. 순리에 맞게 하는 게 탈이 없어요.“
나는 고개만 끄덕이고 마루에 걸터앉았다.

■ 맨 바닥이던 시절

나는 청성면 화성리 농사짓는 집에서 태어났다. 친정집은 가난하고 논도 밭 뙤기도 없었다.

입에 거미줄 안치고 살면 다행이라 생각하며 살았었다. 그 시절에는 먹고 살만한 집보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초가집 단칸방 아래 주렁주렁한 자식들 데리고 배 골아가며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다들 너나없이 때 꺼리 걱정하며 살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텃밭에 지천인 상추도 그 시절이었다면 이렇게 남아났을 리가 없다. 벌써 뜯어서 식구들 입에 들어가고 보따리에 싸서 청산장에 내다 팔았을 것이다. 스무 살에 시집을 오니 내가 태어나 살던 친정집보다 더해서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그래서 부지런히 농사짓고 날품 팔고, 남의 집 품앗이 하는데도 부지런히 찾아 다녔다.

이 동네에 박씨네 문중 땅도 있었고 면사무소 근처에 가면 들판도 넓었다. 50년 전 청산은 먹고 살만한 거리들이 많았던 곳이다. 따로 청산읍으로 불렸던 곳이라 부지런히 일하면 끼니 걱정은 안했다. 농사도 짓고 만두 공장에도 다니고 다들 열심히 살았다. 남의 일이라고 설렁설렁 하지 않고 꼼꼼히 잘 해 주면 다른 일거리 있을 때도 또 부르게 된다. 그렇게 돈이 되는 일은 찾아다니면서 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살았다. 달리 방법이 없을 때는 미련해 보일지라도 그저 정직하게 성실하게 사는 게 답이다.

영감은 야속하다가도 안쓰럽다. 고생만 하다 10년 전에 먼저 떠났다. 이제는 편할 때도 되었는데 뭣이 그리 급해서 떠났는지. 좋은 세상, 나하고 둘이 오순도순 이야기도 하고, 등도 긁어주면서 살면 얼마나 좋았을까. 힘들었던 기억만 남고 좋은 시간은 나 혼자 보내는 거 같다.

이제 영감님은 기억에서도 가물가물하다. 세월이 흐르니 옛날 생각은 어쩌다 날 뿐이요, 그래도 영감님과 제주도 여행 갔었고, 부산과 거제에도 다녀왔었다. 배 멀미가 심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멀미가 나서 어질어질 하다. 바닷가에서 어장 하는 사람들은 파도 위에서 어찌 사는지 몰라. 그 때를 생각하니 아직도 속이 울렁거린다. 영감 손잡고 다닌 기억보다 배 멀리로 고생한 기억이 더 또렷하다. 

■ 다른 인연들 

적적한 내 곁을 지키는 견공 짜장이가 큰일을 하고 있다. 

마당에서 까불대지만 녀석이 적잖은 위로가 된다. 우리 딸아이 박정숙이가 집에서 키우다가 몸이 아프다고 여기로 데려다주고 갔다. 마지못해 들인 식구가 진짜 식구가 되었다. 내가 일 다녀오면 집에서 반겨주는 이가 강아지 밖에 없다. 밥도 챙겨주고 가끔 목욕도 시켜주면 좋아서 꼬리를 있는 대로 흔들어댄다. 

내가 자식들한테 물려줄 것도 없지만 서로 손 벌리지 않고 각자 살아가는 게 미덕인 세상이되었다. 시골 할미지만 그 정도 눈치는 알아차린다.

용돈보다 손주들 얼굴 보고, 자식들 만나는 재미로 명절 기다리고 내 생일을 바란다. 손주들은 올 때마다 대나무처럼 쑥쑥 자라있고 며느리들도 착하고 온순하니 지들 서방한테 잘 하는거 보면 더 바랄 것도 없다.

복지관에 가서 풀도 매고 청소도 하고 소일을 했다. 건강한 노인들이 모여서 일하는 곳이다. 일이란 게 특별한 건 없다. 모여서 같이 밥 해 먹고, 사는 수다도 떨고 오순도순 벗하여 사는 재미다. 요즘은 코로나19로 일도 못 나가니 보고 싶다. 이웃으로 살며 자주 얼굴보면서 벗이 된 것이다. 이웃사촌이란 말도 있듯이, 자주 대하다보면 정이 들고 친해지는 거다. 거기서 일하면 이십 몇 만원을 통장에 넣어준다. 그 돈으로 핸드폰 요금도 내고, 반찬도 사 먹고, 가끔은 옷도 사 입고 가치 있게 쓰면 그게 큰돈이 된다.

옛날에 비하면 요즘은 세상살이가 나아진 건 맞다.

요즘은 환한 전깃불에 펑펑 쏟아지는 수돗물에 철따라 따신 물에 보일러도 뜨끈하고 살기가 여간 편하지 않다. 이제는 덜 아프면 된다. 나이드니 몸 여기저기서 보내는 신호가 겁나지만 살면서 모진 파도도 넘어가며 여기까지 왔다. 담담하게 맞서는 힘을 세월 속에서 배웠다.

지난여름은 뜨겁고 장마에 홍수로 호되게 지났다. 추석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내 고향 화성리 마을 어귀에 줄 맞춰 섰던 코스모스들, 누렇게 익은 벼이삭들은 내가 살아온 세월동안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나도 온갖 풍상을 겪었지만 작년 이 맘 때처럼 추석을 기다리고 있다. 

예전 같으면 호호할매소리 듣는 나이지만 이제 세상이 달라져 우리 나이가 가을이다. 딱 요즘 같은 때. 꿋꿋하게 살아가야 할 때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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