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안부/문정문학 5집/한문수

전교인 체육대회가 잇던 날이다. 여러 가지 준비한 게임들과 먹거리로 고등학교 운동장에 활기가 넘쳤다.

청백 단체전 안에서 숨어있던 개인기들이 발휘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단체전 마지막 이어달리기에서 몇 사람을 채 치며 달려 나가는 카리스마 있는 저 멋진 청년은 누구인가!! 평소 생각도 못 한 조용하신 부목사님이셨다. 자루에 두 사람이 들어가 달리는 청백전에서는 안전을 고려하지 않아 넘어져 크게 다쳐 병원까지 가게 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차라리 자루 밑을 잘랐더라면 덜 위험했을 텐데,

오로지 공만 보고 달리는 축구팀 중년 집사님의 파워와 혼신을 쏟는 모습에 놀라기도 했다. 얼마나 강한지 시속 이백 킬로 달려오는 자동차 같았다. 골대 옆에 서 있다 얼마나 놀랐는지, 집사님 발이 급브레이크를 잡았기 망정이지 부딪쳤다면 내 몸이 가루가 될 뻔했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이야기는 마지막 하이라이트였던 OX퀴즈 시간이다. 기다리기라도 한 듯 관중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 모두 운동장에 우르르 몰려 내려왔다. OX 퀴즈는 힘겨루기가 아니니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대상이 된다. 청백전도 아니고 완전 개인전이다.

운동장 바닥에는 흰색으로 큰 직사각형 네모 안 가운데에 금을 가르고 OX로 흰색으로 크게 쓰여 있었다. 흰 금과 상관없이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첫 문제가 주어졌고 사람들은 제각기 OX로 중간 흰 선이 선명하게 보이도록 갈라섰다. 사회자의 입을 바라보며 자기가 선 자리가 정답이기를 기다렸다. 사회자가 O이나 X를 외치면 정답 쪽에 선 사람들은 와~ 기쁨의 소리를 질렀고 정답이 아닌 곳에 선 탈락한 사람들은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 관중석으로 올라갔다. 나도 오로 엑스로 자리를 옮겨가며 살아남았다.

중간쯤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다. “하느님, 그래도 일명 제가 지금 신학생인데 성경 퀴즈는 일등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등하게 도와주세요.” 때론 사람들이 너무 떠들어서 문제를 듣지 못해 문제가 정확히 뭐냐고 물어보다 시간이 흘러 내가 서 있는 곳이 맞기도 했다. 운 좋게 때론 답을 몰라서 찍었는데 맞기도 했다. 사람들이 얼마 남지 않자 어느 순간 내가 가르치던 아이들이 속도 모르고 나만 졸졸 따라다녔다.

어느덧 마지막 문제가 남았다. 모두가 관중석으로 올라갔고 운동장에는 사회자와 O쪽에 살아남아 있는 사람뿐이었다. 상황을 보니 어른은 나 하나였고 나를 따라다니던 아이들 너덧 명이었다. 

주위가 쥐 죽은 듯 고요함 속에 마지막 문제가 사회자의 우렁찬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왔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맞으면O! 틀리면X!

난 움직이지 않고 내가 아이들과 서 있던 O에 그대로 머물렀다. 아이들이 내가 가만히 있으니 고개를 들고 의아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머리를 긁적긁적 긁는 녀석도 있다. 그러더니 내 손을 꼭 잡고 있던 녀석마저도 나를 떠나 슬금슬금 X로 모두 발걸음을 옮겨갔다. 사회자는 거듭거듭 선택할 기회를 주기 위해 문제를 다시 읽어 주기도 하였다. 두구두구두구 뜸을 들이다 사회자가 정답을 외쳤다.

“정답은 오!”였다. 난 녀석들을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하나님이 버젓이 살아있다고 믿는 녀석들이 ‘하나님이 없다’라는 말이 성경에 있을 리가 없다는 원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 녀석들이 “성경에 하나님이 없다”라는 편에선 선생님을 믿을 수가 없었기에 나를 멀리하며 X로 갔던 것이다.

시상으로 받은 하얀 봉투 안에는 상품권 만 원짜리 석 장이 들어있었다.

체육대회가 있던 날 아침이었다. 일어나자마자 식탁에 앉아 기도하고 성경을 펼쳤다. 펼쳐진 곳은 시편 53편이었다. 내용인즉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중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였다, 그 부분을 읽으며 ‘아~하나님이 없다 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구나’ 하며 마음에 새겼었다. 

그러니 하나님은 살아계시지만, 성경에는 하나님이 옶다고 말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말하기 위해 글은 쓰여 있는 것이다. 세상에 이 문제가 나올 줄!! 나도 아침에 셩경을 읽지 않았다면 아이들과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때는 1등에 누이 멀어 기뻐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왠지 아이들에게는 이런 선생님이 어떻게 비쳤을지 배신자 같은 마음이 들어 미안한 맘이 들었다. 그때 그냥 여기 있으라고 붙잡을 걸 그랬나! 그랬다면?

다음에 이런 기회가 또 온다면 그땐 너희들 옷자락 잡고 ‘그냥 여기 있어’라고 말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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