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의 달팽이 여행] 필리핀을 다시 만나다. 2
[오아시스의 달팽이 여행] 필리핀을 다시 만나다. 2
  • 오아시스(가화리)
  • 승인 2020.08.26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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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나이 고원은 네그로스 섬 중앙에 위치한 고산 지대입니다. 수십 개의 석회암 동굴이 있어. 2월에는 동굴축제가 열립니다.
마비나이 고원은 네그로스 섬 중앙에 위치한 고산 지대입니다. 수십 개의 석회암 동굴이 있어. 2월에는 동굴축제가 열립니다.

마비나이는 고원지대입니다. 예상보다는 가파르지는 않습니다. 라오스 5시간짜리 고원지대를 생각하면 겸손한 길입니다. 자전거 코스로 생각하고 있는 길이라 꼼꼼히  살펴보며 올라갑니다. 이방인들의 발길이 뜸한 곳인지 가끔씩 길가의 구멍가게에 놀고 있는 어린 친구들 곁으로 가려하면 부끄러워하며 자리를 옮기려 합니다. 속도는 50km를 유지했습니다. 청정한 자연에 불온한 가스를 만드는 주제에 속도를 올리는 건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래도  열대를 달릴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아 선택한 고육지책 입니다.

몇 번을 새옹지마같은 고개를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마비나이 마을을 만났습니다. 피에스타(축제)가 기간입니다. 단조로운 햇볕과 큰 기복이 없는 열대 지방의 일상을 흔들어 주려고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나왔습니다. 어린 시절 장날이 이랬습니다. 터미널 근처 치킨집에서 밥을 먹다가 가게 주인과  인사를 나누는 도중 경북쪽에 원어민 교사를 하고 있는 여동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동네 라디오 방송도 진행을 하고 있는 동네 유지쯤으로 보입니다. 여유가 있으면 덜푸덕 주저 앉았다 가고 싶은 오후입니다.

카방칼란으로 내려 가는 도중 만난 나무로 만든 놀이 기구를 타는 아이들입니다.
열대지방이라 벼를 세번 수확합니다. 한쪽엔 못자리가 있고 다른 쪽에서 벼베기를 하고 있습니다.
소들이 힘들겠지만 풍경은 좋습니다 

마비나이에서 까방칼란으로 가는 길은 완만한 내리막길입니다. 도중에 피에스타를 하는 마을과 다시 마주치는 바람에 우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마을 입구를 막아 놓고 있는데 뾰족한 도리가 없습니다. 태풍이 지나가는 바람에 리조트에 들러 잠을 청했습니다. 으르렁거리는 파도소리와 함께 허술한 참문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에 커텐들이 억지로 바람과 춤을 추는 폭풍우 치는 밤입니다. 아침에도 여전히 하늘은 다혈질입니다. 시팔라이에서 종착지까지 가는 100km는 여러 번 오토바이를 멈추게 합니다. 사람과 풍경이 따로 놀지 않고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잘 어울립니다.

숙제를 다 못했는가 봅니다. 자전거 택시(툭툭)에서 초등학생 친구가 열심히 숙제를 하고 있습니다.

대학시절 거제도에 현대문학 답사를 간 적이 있습니다. 조치원에서 부산까지 기차를 타고 부산에서 배를 타고 거제도로 갔습니다. 친절한 전도사님을 만나 학동 몽돌 해수욕장에 숙소를 정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민박집 주인은 농아 장애인이였습니다. 둥그런 몽돌이  밤새도록 연주하는 자그락거리는 소리에 맞춰 기타를 치면서 밤을 세웠습니다. 5년 전 (15년이 지난 후) 다시 학동 몽돌 해수욕장을 갔더니 넓은 몽돌 해수욕장은 아무렇게나 들어선 팬션들이 바람길을 막아 왜소해졌고 몽돌이 만들어 내는 화음은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거제도를 달리면서 볼 수 있는 바다는 키가 큰 팬션들이 풍경을 독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자본이 풍경을 잠식하고 있는 셈입니다. 탐욕이 사람과 풍경을 갈라 놓았습니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건강한 욕망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요?자칫 이 기록이 네그로스 자연환경에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개발이 풍요를 가져 올 수는 있겠지만 과연 누가 풍요를 독점하는지는 우리들은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데 자연이 그대로 내 몸에 삼투압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필리핀의 속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체게바라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던 남미가 떠올랐습니다. 아마 체게바라도 의사를 포기하고 혁명의 길을 택했던 건 그가 지나쳤던 풍경이 그와 상호작용을 했기 때문입니다.​ 1박 2일 도로의 풍경들이 심상치 않게 제게 다가왔습니다. 15년 전의 몽돌 해수욕장의 화음 또한 제게 속삭였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만들어 낸 거제도의 달라진 풍경은 자본이 담보되어야만 풍경을 독점하는 리조트에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필리핀도 자본이 풍경을 독점하려고 하지만 틈은 있었습니다. 지속가능을 위해서는 그들의 지혜가 필요하고 우리의  여행 또한 이런 지속가능성에 도움이 되는 여행을 구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필리핀의 바람과 하늘과 물소와 그리고 사람들이 기억 속에서 지금거립니다.

 

*2016년 다양한 여행지 답사를 위해 다년 온 9박 10일의 필리핀 여행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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