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주민숙원사업으로 계단 낮게, 별도 돌봄공간과 화장실도 마련
‘구읍 내 문화복지시설 부족. 헬스장, 도서관 갖춘 문화센터 만들고파.’
실개천마을학교 이은숙 회장과 아이들을 만나다

원래 가까운 곳은 잘 못 보는 법이다. 구읍은 거리가 애매하다. 차로는 시내와 금방이지만, 아이들 종종걸음으로는 한 시간 남짓 걸어가야 한다. 어른들의 시각으로 ‘거기서 거기고’, ‘거기 다 있는데’(조금만 걸어 시내 나가면 청소년수련관, 도서관 다 있잖아요)라며 방치한 것이 사실 구읍이었다. 식당 외에 문화복지시설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아이들에겐 참 열악한 곳 중 하나이다. 지용문학관에 작은도서관이라도 있다고 한다면 이렇게 갈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통문화체험관에 작은도서관이라고 쓰인 명패가 붙인 공간을 가봤는데 이정도라면 아이들 발걸음 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엄마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알았다. 학교 끝나가 갈 공간도 마땅찮고 보육하려면 ‘학원뺑뺑이’를 돌리는 수밖에 없다고. 그런데 이럴 수는 없지 않나. 우리도 안전하고 재미난 돌봄공간이 있음 안 될까. 프로그램도 하고, 간식도 얻어먹고 이런 공간이 있음 좋겠단 생각에 학부모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학교가 바로 ‘실개천마을학교’이다. 의기투합은 됐지만, 공간이 문제였다. 공간을 물색 중에 죽향2리 이장과 부녀회장이 소개시켜 준 구읍 번영회 건물 2층이 눈에 확 띄었다. ‘두드리면 열리리라’는 격언처럼 구읍의 자생단체인 번영회와 고시산청년회와 여러번 논의 끝에 번영회 건물을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득했고, 또 지역 아이들을 위한 거라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그런데 사실 그 공간은 오래된 마을회관 분위기 그 자체였다. 화장실도 없고 딱히 편하게 놀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바람이 모아지면 힘이 된다고. 관심이 있었던 박형용 도의원이 소규모주민숙원사업비 3천만원을 받을 수 있도록 징검다리가 되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이지만, 이 돈으로 그나마 쌈박하게 리모델링을 했다. 그래서 이 공간이 희번득하게 달라진 것이다. 구읍의 풍경이 달라졌다. 구읍옛우편취급국 사거리를 지날라치면 재잘재잘거리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런 웃음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는데 지금은 근처 어른들을 흐뭇하게 하고 힐링하게 하는 정겨운 웃음소리다. 정적이 감도는 골목이 사람 사는 것처럼 시끄러워졌다. 올라가는 계단이 낮아졌다. 편하게 아이들이 올라갈 수 있도록. 문을 열자 공간이 환하다. 조명과 달라진 책상과 그리고 돌봄을 할 수 있는 온돌바닥 공간은 별도로 만들어졌다. 둥글둥글 엎드려 놀아도 좋다. 그리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 확 달라진 실개천, 주 연령층 고려한 배려있는 보수공사.

처음 실개천이 만들어졌을 때에는 미처 세심하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구읍에서, 아이들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돌봄 센터가 필요했다. 그러나 여러 번의 요청에도 “읍내에 이미 도서관과 청소년수련원 등 여러 시설이 있으니 이용하려면 읍내로 나오라”는 대답은 정말 실망스러웠다. 이에 주민들이 직접 이 아지트의 주인이 되기로 했다. 이름하야 ‘마을 공식 사랑방’을 만들자는 취지인 것이다. 실개천마을학교 이은숙 회장을 비롯하여 뜻을 함께 할 주민들과 죽향초 운동회에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 그리고는 속전속결. 잘 사용하지 않았던 구읍번영회 건물을 빌리고 에어컨, 칠판, 서랍과 책상 등 대부분 기증을 받아 나름대로 구색을 갖췄다. 

그러나 완성된 기쁨도 잠시, 비용 및 시설관리 부분에서 발목을 잡혔다. 분리되지 않은 공간으로 어수선한 느낌을 주었고, 창문에는 커튼이 없어 찌는 햇빛을 막아주지 못했다. 또한 주 이용객이 아이들과 어르신이라는 것에 반해 높은 계단 턱은 자칫 넘어질세라 염려스러웠다. 하다못해 인건비는 물론 공과금, 화재보험비 등의 시설유지비 마저 골칫거리였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몰라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이를 해결해준 것이 바로 각 단체의 회장님과 동료 학부모들이다. 이은숙 씨는 지금 모습은 이들이 없었다면 꿈도 못 꿀 일이라고 말한다. “원래는 계단이 너무 높아 위험하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고시산청년회 염진동 회장님과 유상현 부회장님이 얘기를 듣고는 흔쾌히 공사를 해주셨어요. 문정리 이윤우 이장님은 바닥에 깔 매트 찬조해주셨고, 여기 건물 화재보험도 엄마들이 모아서 내는 거예요. 박형용 도의원님은 사업비 예산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주셨죠. 죽향리 김상배 이장님, 구읍번영회 구문섭 전 회장님žžž 하나하나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도움을 주신 분이 정말 많아요. 이 분들 없었으면 시작도 못 했죠. 정말 감사한 분들이에요”라며 운영에 도움을 준 관계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했다. 

덕분에 지금의 실개천은 사뭇 다른 분위기를 뿜어낸다. 벽에 발린 하얀 페인트는 마치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보여주는 듯 했고, 창문마다 달린 블라인드도 뜨거운 햇살로부터 지켜줄 여력이 충분했다. 한 쪽에는 가벽을 세워 공간을 분리함으로써 보다 효율적인 공간활용이 가능해졌고, 계단 역시 폭을 낮추고, 미끄럼방지 판자를 삽입하여 아이들과 어르신이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리모델링은 공간 뿐 아니라, 이들의 생활마저 바꿨다. 전에는 무릎이 아파 계단을 오르지 못했던 할머니가 이제는 한 걸음 한 걸음 실개천을 향해 내딛고, 어른들 대상 강연이 있는 날에는 건물 내 놀 공간이 마땅치 않았던 아이들도, 가벽 뒤 새로운 아지트가 생겼다. 죽향초등학교 2학년 김진호(9)학생은 “지금은 깔끔해져서 좋아요. 그리고 책상도 많아져서 친구들이랑 그림도 그리고 숙제도 할 수 있어요. 요즘 거의 맨날 와요”라고 말했다. 이 모두가 이루어질 수 있던 것은, 자신의 이익보다도 한 사람 한 사람 주민을 위한 마음이 모였기 때문이었다.

■ 의논 통한 ‘스스로규칙’, 합의점 찾으며 자율적 사고 키워.

이 곳 아이들은 자신들의 규칙을 스스로 정하고 있다. 방 한 켠에 붙은 삐뚤빼뚤한 주간계획표가 눈에 띈다. 그 속에서는 칭찬하기, 물감놀이, 동화구연 등 날짜 별 활동 주제를 고르는 것은 물론, 교내 생활수칙까지 토론하여 이루어진다. 어른의 강제적인 명령은 어디에도 껴있지 않다. “아이들이 알아서 규칙을 정하며 생활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참 기특해요. 저번에는 6명 정도 애들이 ‘함께 있을 때에는 휴대폰을 사용하지 말자’는 의견을 냈는데, 8명 정도 아이들은 ‘어느 정도의 휴대폰 이용은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갈렸죠. 그리고선 얼마 간 상의 끝에 ‘그럼 30분 정도만 휴대폰을 하자’고 절충안을 냈어요.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아이들이 어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가끔 보면 저희가 애들을 너무 과소평가 하는 건 아닌가 싶어요. 이렇게 충분히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데도 괜한 노파심에 이유 없는 제재를 가하곤 하니까요.” 

죽향초등학교 2학년 김강민(9)학생은 “학교 끝나고 매일 와요. 만들기도 하고 간식도 먹고 책도 읽어요. 여기 오면 친구들이 있으니까 좋아요. 싸우지는 않아요. 저희끼리 규칙을 정하고 꼭 지켜야 되는 거예요. 저번에는 곤충아저씨가 와서 곤충이야기도 해주셨어요”라며 한껏 들뜬 표정으로 말한다. 실개천 마을학교에는 징계가 없다. 체벌도 없다. 오직 칭찬과 하하 호호 웃음소리만이 있을 뿐이다. 여느 학교처럼 어른들의 시선에서 일방적으로 정한 딱딱하고 어려운 규칙이 아닌, ‘스스로의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킬 수 있는 규칙을 직접 정하고 의견을 좁혀가는 모습은, 얼핏 어른보다도 나은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이곳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실개천은 단순한 돌봄 센터가 아니라는 데에 확신한다. 센터의 역할을 넘어 이를 발판 삼아 앞으로도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자랄 수 있게 힘을 실어주는, 하나의 길라잡이와 같은 곳이었다.

■ 어르신, 청소년 위한 시설확장 염원. 꿈으로 그치지 않았으면.

초등학생을 주 대상으로 하고는 있지만,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르신을 위한 공간도 있다. 낮에는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장이 되는 사랑방으로, 저녁에는 요일 별로 다양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문화센터로 변신한다. 주로 인근 주민의 재능기부를 받거나, 간혹 외부강사를 초빙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분야 또한 꽤나 다채로운 색깔을 뽐낸다. 요가와 영어회화는 물론, 분기에 따라 색소폰과 같은 악기연주 강연도 접할 수 있다. 어르신들의 요청 중 한글과 노래교실이 개설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적극 수렴할 예정이었지만, 장기화되는 코로나현상으로 인해 현재는 계획을 중단한 상태이다. 이현숙 회장은 “원래 이 동네가 조용했어요. 생기도 없고 무미건조한 느낌 있죠? 그런데 요즘은 지나가던 어르신들이 여기 뭐하는 곳이길래 이렇게 웃음소리가 나냐고 물어보셔요. 이웃이 모이고, 함께 활동을 하면서 활력이 돌기 시작하는 거죠. 앞으로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부담 없이 쉬었다 가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쉽지가 않아서 너무 속상해요. 그래도 특히 애들이랑 어르신은 더 위험하니까 현재는 자제하는 게 최우선이죠”라며 큰 아쉬움을 비쳤다. 

그럼에도 코로나 종식 후 더 활발해질 활동을 위해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내는 중이다. 현재 실개천마을학교는 초등학생과 어르신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미취학 아동이나 청소년은 이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스스로 운영하고, 또 머물 수 있는 ‘청소년 자립카페’를 생각중이다. 천 원 가량의 부담 없는 가격으로 시원한 음료와 휴식을 얻을 수 있는,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안식처 말이다. 이미 웬만한 구상도 해 놓은 상태이다. 마음만 같아서는 헬스장, 동아리 방 등을 갖춘 제대로 된 시설로 키우고 싶지만, 현재로써는 녹록치 않다. 

“구읍은 문화나 복지시설이 많이 부족하고, 차가 없는 아이나 어르신은 이동하기 어렵다는 불편점이 있어요. 아이디어는 이미 작년부터 생각해왔는데, 자금이랑 상황적인 여유만 된다면 당장이라도 진행하고 싶죠. 주민들 의견도 모으고 서명도 받고 하다보면 실행 될 날이 올까요? 상계공원 근처에서 작은도서관, 헬스장, 평생학습공간 등 이런 공간을 만들면 참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해요. 또 여름에 아이들 수영장이랑 그늘막 같은 거 설치해놓으면 너무 좋을 것 같거든요.” 벌써 완성된 마음 속 계획을 하나 둘 꺼내면서 그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구읍이 전통거리잖아요. 그걸 살려서 마당놀이나 줄타기 등 외부사람도 함께할 수 있는 행사를 만들고 싶어요. 마음은 굴뚝같은데 아직 제가 행할 수 있는 영향력은 없다고 봐야죠.(웃음) 그렇게 하려면 인건비도 부담이고… 고시산 청년회랑 회장님 부회장님, 또 우리 엄마들 없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예요. 이 자리를 빌려서 꼭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어요.” 

아직은 불투명한 꿈일 뿐이지만, 지금의 실개천 역시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현재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이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이은숙 회장을 비롯한 주민과 학부모, 그리고 후원자의 따듯한 마음이 다시 모일 수 있다면, 구읍 내 사랑 가득한 또 하나의 아지트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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