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규, 물의 안부, 『문정문학 5집』

어둠이 가시기 전에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라벤더 농장을 보기 위해 어둠을 헤치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힘겹게 올라가기는 했는데 짓궂게 비가 오는 있는 날씨였다.

우산 들고 보라색을 자랑하는 라벤더 꽃 찍으려고 버스에서 나왔다. 세찬 비바람이 불어오는데 겨우 삼각대를 조망이 괜찮은 곳에 설치하고 카메라를 장착했다. 셔터를 누르니 한참 있다가 찰칵하며 어둠 뚫고 보랏빛 모습을 보여준다. 아하, 바로 이것이다. 비 오는 미명상태에 얻은 보람이었다.

여기 말고 좀 더 좋은 곳이 없나 살피다가 눈에 들어오는 장소로 이동하여 찍는데 아직 버스 안에서 더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는 일행이 안 나와 있어 화원이 조용하고 사람이 없는 깨끗한 작품을 얻게 됐다. 비 맞은 꽃이 함초롬하게 다소곳이 저희들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어서 내 마음도 한결 가볍다. 비록 비는 오지만 마음은 오히려 포근한 정이 깃든다. 시간이 흘러 5시가 되니 이제는 우루루 달려 나와 저마다 찍겠다고 야단법석들이었다.

오던 비도 그치고 이제는 구름이 오겠다는 해님을 가로막아서 궂은 날이 연출되고 있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 기왕에 힘들여 온 것에 보담하려는 생각을 끌어안고 넓은 화원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생각이 담겨지는 것을 맘 놓고 찍었다.

이곳을 오기 위해 어젯밤 10시 반부터 시작해 대전에서 자정에 출발 04시 반에 도착한 것이기에 절실한 마음이 더 드는 게 사실이다. 찾아오는 이들이 하루에도 수천 명이 넘게 온다고 한다. 화원의 주위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왔었기에 바닥이 반질반질 흙으로 만든 콘크리트로 된 마을길 같았다.

먼 동쪽 산 너머에서 살그머니 햇빛이 올 듯 신호를 보냈다. 그래도 빛이 조금이나마 밝혀줘 삼각대는 걷어 배낭 옆구리에 묶어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다니면서 찍었다. 한정된 곳이지만 더 좋은 사진이 될 것 같아서 반복되는 피사체인데도 좋을 것같이 생각이 들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모델이 된다고 연출용 자전거를 탄다며 포즈를 취하였다. 그러지 말고 좀 더 이쪽으로 하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안이 저쪽으로 좀 앞으로 요구 조건도 많기도 하였다. 그래도 적절히 찍어보니 밋밋한 것보다는 괜찮았다.

꽃밭 옆에는 밀을 심어서 한참 고개 숙이고 있는데 많은 이들이 밝고 간곳이 길을 낼 듯 짓밟고 다녀서 주위가 스산하였다. 그래도 이를 앞에 깔고 라벤더와 주위 산천을 배경으로 한 컷 찍었다.

안타까운 건 이곳에 라벤더 키우기 위해 창고를 지어 놓고 것이 쓸모가 없어 방치한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알고 보니 세찬 우박이 지붕을 강타한 것이라고 하는데 흡사 폭탄 세례를 맞은 것같이 보였다. 라벤더 꽃향이 좋아 기름 짠 것을 판매한다고 간이 체험하는 곳도 만들어 놓고 영업하는 곳이 있었다.

하루에도 많은 관광객이 오기 때문에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이 흡사 상업을 하는 시장의 일부인 듯하다. 지금 시간이 오전 8시밖에 안 돼서인지 한산하다. 아침을 하라고 김밥을 가지고 다니다가 이제는 시장기가 들어 쉼터에서 먹고 있는데 나가서 더 찍으라고들 한다.

다시 오기가 어려울 텐데 가지고 하며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하고 나갔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가니 꽃이 좀 더 선명하게 보였다. 일행 중 한명이 모델이 돼 줄 테니 찍어 달라고 해 역광이라 사람의 모습이 선명하지 않아 자세를 틀어보라고 하며 찍었다.

라벤더 꽃이 제일 멋진 곳을 이용해 특별히 데리고 온 모델이 익숙한 행동으로 멋을 부리고 찍으라고 한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카메라들이 너무 많아서 댈 데가 마땅찮아 살짝 옆으로 남들과 차이가 나게 찍었다. 그런대로 멋졌다.

여기는 그만하고 밖에 정원으로 나와 보니 이곳도 괜찮아 몇 장 찍었다. 이제 시간이 9시가 되니 일반 관광객이 밀려들기 시작한다. 물론 자신들만이 모델을 데리고 오는 것이 줄을 잇는다. 확실한 보랏빛을 자랑하는 농원이 사람들을 유혹하는 즐거운 꽃밭인 건 사실이었다.

관계인 말에 의하면 수천 명이 온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높은 산언덕 분지에 농원을 만든 것인데 고성군에서 교통 정리요원들이 여러 명 와 있는걸 보고 대단하다 이곳을 전국 각지에서 구경하러 오는 이들이 많다고 함이 실감났다. 

저작권자 © 옥천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