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면 정방리 출신 화가 홍승운, 대청호반에 카페를 열다.
“종아리까지 물이 차 책상 들고 뛰었어요” 대청호에 얽힌 이야기 그득
대청호반 카페거리에 유일한 옥천토박이 주인장 카페, 작품들도 많아

물 속 풍경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 아픔과 슬픔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단지 풍경이 아름다워 자주 찾는 곳이 대청호반이지만, 그 곳에 잠긴 이들의 삶을 아는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사람이 많이 찾고 또 그만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본능적으로 사람들은 안다. 그래서 카페를 짓고 펜션을 짓는다. 홍승운, 최부영 부부의 바람결은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아련하게 그려지는 물속 풍경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옅어질 수 없는 그리움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장계리 진모래 백사장에서 놀던 기억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 때는 호수가 이리도 크지 않았다. 물장구 치고 놀 수 있었던 강가였었는데 동무들과 함께 해질녘까지 놀던 곳이었는데, 그 시절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운 좋게도 그가 문을 열었다. 안내초중학교와 옥천고를 나온 그가 다시 고향에 오면서 그림 작품활동을 하다가 고향 근처에 문을 열었다. 군북면 소정리 대청호반의 바람이 넘실대며 닿는 곳, 카페 ‘바람결’이다. 터에 박혀있던 큼지막한 호두나무 한그루도 그냥 버리지 않았다. 캐내고 다듬어 카페 조명으로 썼다. 뿌리 내린 것에 대한 애정이다.  

여기, 옥천서 나고 자란 ‘토박이’ 옥천 사람이 운영하는 카페가 눈에 띈다.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이곳에 벚꽃 잎이 흐드러지는 4월 즈음 ‘바람결’이라는 이름으로 야심차게 문을 열었다. 카페의 주인장 홍승운(54)씨는 안내면 정방리 출신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미술에 흥미를 가졌지만, 부모님은 이왕이면 미대보다 일반 대학을 가라며 화가로서의 길을 권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며 투시도와 같은 전문적인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여 현재는 민예총(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차저차한 인연으로 존경하고 있는 평거 김선기 선생이 카페명도 지어주시고 직접 글씨도 써주셨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하여 바람결이라 불렀다. 화가라 그런지 가게 내부에서도 그의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그림들이 눈에 띈다. 화가에서 카페사장이 되기까지, 그 여정에는 어떠한 사연이 스며있을까.

■ 호수 밑 잠겨버린 추억, 다시 끄집어내다

 카페에 들어서자 곳곳마다 걸린 그의 그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하나같이 아득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한복을 입고 춤을 추는 여인이 그 중 하나이다. 헌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유독 ‘물고기’와 관한 작품이 주를 이룬다. 혹시 여기에도 또 다른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닐까 문득 궁금해진다.

“저는 어린 시절 개울가에 나가 노는 게 일이었어요. 동네 친구들이랑 물장구도 치고, 다슬기나 물고기도 잡고 그러면서 놀았죠. 예전엔 장계리 다리 건너서 백사장도 있었어요. 거기서 아주 모래 범벅이 돼서 얼마나 장난을 쳐댔는지 몰라요. 안 믿기시죠? 하하. 지금은 아무것도 안 남았으니까요” 그는 그림을 보며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게, 중학교 2학년 때 책걸상을 들고 막 뛰었어요. 마을이 수몰되면서 학교도 물에 잠기는 바람에 새로 지은 학교로 옮겼던 거죠. 조금 늦으면 물이 차다가 종아리 넘어 까지 첨벙댔어요. 그 땐 대청호가 어쩜 그리 밉던지... 그 기억들을 살려서 그림으로 그린 거예요. 어릴 적 개울서 놀던 제 추억들을 승화 한거죠” 생생한 그의 말을 빌려 그 시절 수몰민의 설움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눈 깜짝할 새 가라앉아버린 학창시절 추억을 그림을 통해 회상하는 홍 대표. 그리고 어쩌면 그 덕분에 대청호 인근에 자리 잡은 현재를 번갈아 보자면,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흐른다. 아마 그림 속 물고기를 타며 노는 아이를 보고서 더 와 닿았는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은 사실적이면서, 마치 한 여름 밤 할머니 집에서 꾸는 꿈과 같이 환상적이다. 그는 20대 초 부모님의 조언을 따라 미대진학을 고사하고 한남대 지역개발학과에서 안정된 진로를 찾고자 했다. 그럼에도 꺼지지 않는 그의 열망을 무슨 수로 외면하랴. 고심 끝에 그림과 생계를 다 잡고자 92년도 서울로 올라가 1년간 컴퓨터그래픽을 배웠다. 현실과 타협하여 상업미술로 관심을 돌린 것이다. 그리고 신사동에 있는 게임스쿨에 입사하여 게임개발과 그래픽사업을 병행했다. 그렇게 10년째에 다다를 무렵 IMF가 터지고 말았다. 어떻게든 사업을 살려보고자 했지만, 휘청이는 회사는 일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몇 년간의 시도에도 불구,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한 그는 2004년 모든 사업을 접고 다시 옥천으로 발을 돌렸다. 

그리고 그 때부터 꿈에 그리던 순수미술을 시작했다. 홍 대표는 “그림을 통해 나만의 특색을 찾으려고 해요. 저만 드릴 수 있고, 저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거요. 주로 인물화를 그리고 있는데, 그 속에서 저만의 색을 표현한다는 게 쉽지는 않네요”라며 순수미술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 커피 한 잔과 여유 한 스푼, 이야기 두 조각.

그렇다면 그는 어쩌다 대청호라는 애증의 공간에 오게 되었을까. 홍 대표는 “직장생활은 10년간 해보니 너무 어렵고, 또 그림만 그려서는 생계유지가 되질 않으니 커피사업을 생각하게 됐어요”라고 전했다. “대전에서 한 달, 여기 구읍 미스터 브루쓰에서 4개월 동안 부부가 같이 알바를 했어요. 그러면서 핸드드립부터 기계커피까지 본격적으로 배웠죠. 아내(최부영)는 공주 출생인데, 대전서 살다가 이제 옥천 온 지 20년 됐어요. 이제 옥천사람 다 됐죠 뭐(웃음)”라며 카페를 운영하게 된 배경을 전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원두는 핸드드립 전문점 미스터 브루쓰에서 공수한다. 원두의 질이 보장되는 만큼 단가가 세기 때문에 다른 카페에서는 쉽게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특히나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와 같은 기본메뉴에도 자부심이 있다. 그 간 배운 솜씨를 바탕으로 씨 솔트 카라멜 라떼(소금 카라멜 라떼)와 탄산커피 등 독특한 커피들도 함께 다룬다. 복숭아 스무디는 시중의 인공적인 시럽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청을 담가 만든다. 덕분에 인위적인 색과 향이 모두 빠진 복숭아 자체의 달달함을 맛볼 수 있다.

음료 외 디저트는 주로 치아바타 샌드위치나 스콘(영국 빵의 일종) 등의 메뉴를 판매한다. 호떡과 아이스크림을 접목시켜 색다른 퓨전메뉴를 선보이기도 한다. 다소 높은 가격대에 주춤하지만, 막상 맛을 본다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거기에 눈앞에 펼쳐진 푸르른 산과 호수라니, 말 그대로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여유를 만끽할 때면 어디선가 낯선 시선이 느껴지곤 한다. 이 카페의 실질적인 주인님, 고양이 3마리가 마당에서 이리 폴짝 저리 폴짝 뛰다닌다. 예삐와 쇼콜라, 럭키라는 이름의 고양이들은 간혹 손님의 손끝을 쓱 훑으며 수줍은 애교로 맘을 녹인다. “아내가 고양이를 워낙 좋아해서 여기저기서 데려오다 보니 어느 새 세 마리나 되네요. 애들이 아직은 낯을 가리는데, 고양이가 좋아서 또 오는 손님도 있어요”라는 그에게서 아내와 고양이를 향한 애정이 드러난다.

내부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독특한 조명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1년 전 설계공사를 시작할 때 부지에 있던 호두나무를, 버리기가 아까워 고민하다 조명으로 만들었단다. 그로인해 기계는 흉내 낼 수 없는 재미있고 특별한 조명이 탄생했다. 그 외 전반적인 인테리어도 직접 행했다. 주방과 바닥, 화장실 타일 등 깔끔하고 감각적인 인테리어는 손님의 이목을 끌기에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다. 특히 홀 중앙의 대형거울은 이른 바 ‘포토존’에 견주 할 정도로 아늑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뽐낸다. 보다 탁 트인 전망에서 경치를 감상하고픈 자를 위해 2층에는 부부가 생활하는 원룸과 카페를 분리하여 바(bar)형태의 좌석을 마련했다. 뒤로는 대형 테이블의 단체석이 있어 혼자서도, 단체 여행에도 안성맞춤이다. 아직 준비 중에 있는 옥상도 휴양지 느낌의 테이블과 전구 등으로 꾸며 손님을 맞을 계획이다. 앞ž뒷마당까지 330평에 달하는 카페를 구경하자니, 무엇보다 생기 있는 표정과 카메라가 필수인 듯싶다.

“한번 편하게 놀러오세요. 그럼 제가 옥천 이야기, 수몰 이야기, 그리고 제 작품 이야기도 곁들어 이야기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대청호가 훤히 내다보이거든요. 이층도 있어요. 쉬엄쉬엄 놀러 오세요. 피로를 풀어드리고 여유를 만끽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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