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지도사 경력 4년이지만, 베테랑이 된 이명규 청소년지도사
2006년 동이면 마을공부방부터 시작한 이력, 청소년과 함께 한 삶
‘혼 내기’ 보다 고충을 듣고 '품는 훈련'으로 아이들을 키워내다

아이를 키운다고 다 아이들에 관심을 갖는 건 아니다. 더욱이 본인 아이 말고 지역 아이들을, 청소년을 온전히 생각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의지와 재능이 필요한 부분이다. 처음엔 마음이 가는대로 움직였다. 가다보니 공감능력과 재능을 발견하고, 하다보니 곁에 있는 시간도 안을 수 있는 품도 넓어졌다. 이원면 청소년문화의집 이명규(55, 동이면 적하리) 청소년지도사 이야기다. 청소년 지도사가 된 지는 불과 4년이 안 됐지만, 아이들과 함께 한 오랜 경력을 들춰보면 그는 이미 베테랑 지도사임에 틀림없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솔선해서 일을 벌여 왔던 그에게 ‘자격증'이란 큰 의미가 없는지도 몰랐다. 일찌감치 2006년 부터 이명규씨 삼남매가 초등학교 다닐 적에 집에서 여러 아이들을 같이 먹이면서 놀이방과 공부방을 동시에 제공했던 이명규씨는 당시 이를 보고 깜짝 놀랐던 한용택 전 군수의 추천으로 평산리에서 마을공부방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는 발전되고 학교에서도 알려져 동이초 다목적강당 사무실을 빌려 방과후 공부방을 직접 운영했다. 방과후교육이 활성화되기 훨씬 전의 일이다. 봉사 정신은 이미 동이적십자봉사단을 창립하고 사무국장, 회장을 역임하면서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었고 청소년에 대한 관심은 아이를 키우면서 더 커져 갔다. 맨 처음에는 교육 때문에 관심을 갖다가 아이를 다 키우면 식을 줄 알았던 청소년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는 것을 보고 그는 지도사 자격증까지 공부해 원하던 직장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이원청소년문화의집은 처음이 아니다. 정식채용되기 전에도 기간제로 이원청소년문화의집 이층 도서관을 맡아서 훌륭히 운영해왔다. 토,일요일 근무도 마다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주말 휴일을 도서관에 보내면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 어느새 체질이 된 청소년지도사

어쩌면 체질일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틈틈히 공부해 사회복지사, 보육교사, 청소년지도사까지 3개의 자격증을 모조리 취득한다. 맨 처음 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지도사 공고가 떴을 때도 망설였다. '나 말고 젊은 청년들이 하겠지’하는 생각에 응시하지 않다가 자꾸 연장 공고가 나는 것을 보고 나라도 응시해야겠다는 생각에 응시해 덜컬 합격까지 한 것. 

애초부터 그의 자리였는 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까지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낸 터라 준비된 청소년지도사였다. 
청소년들이 어긋난 행동을 하더라도 무조건 다그치지 않았다. 먼저 듣고 이해하려 했고 또 편하게 다가가려 했다. 문화의집에서 내몰기 보다 품어서 같이 변화되기를 희망했다. 

“초심을 잃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해요. 이원 청소년 문화의집은 처음이 아니지만, 생각보다 아이들 교육 환경이 열악했고 기본 학습능력도 떨어진 친구들도 더러 있었어요. 그래서 가르칠 건 가르치고 마음의 상처는 치유하려고 서로 노력했죠. 글도 모르는 아이들도 많았으니까요. 자존감은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었고 그것들은 일탈적 행동으로 도출되기도 했어요.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지요.”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근처에서 담배를 피던 아이들이 줄어들었다. 서로를 길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당장 이를 눈치 챈 것은 동네 어른들이었다. 이명규 청소년지도사가 오더니 아이들이 달라졌다고. 그런 말들이 큰 위안이자 보상이었다. 한 곳에 4년 동안 근무하지 않지만, 이원 주민들이 그를 붙잡았다. 지역 아이들을 위해 더 있어달라고. 

■ '나 칭찬하기 프로젝트'로 자존감을 세워주고

“자존감이 무너진 아이들에게 매일 ‘나 칭찬하기’일기를 쓰라고 했어요. 하루 일과 중 칭찬할만한 행동을 기록하라고 했죠. 자신에 대한 긍정부터 삶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집안 분위기 때문에 성적에 대한 강박관념이 심했던 아이를 도와준 일이 있었다. 아이의 스트레스 지수가 상당히 높아있었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 아이 삶을 망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부모와 아이 사이에 완충지대가 되기로 하고 아이의 적성과 재능을 키워주도록 독려했다. 자폐증까지 앓았던 그 아이는 농사와 자연에 대해 영감과 재능을 얻으면서 보은자연고로 진학했고, 여타 경진대회에서 1위를 하는 등 자존감을 찾았다. 그리고 농업 관련 대학에 진학하려고 준비 중이다. 

한 사람의 삶을 찾아준다는 것, 스스로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 모른다. 

"아이들이 지역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옥천 뚜벅이 여행을 기획하기도 했어요. 금강휴게소까지 묘금폐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프로그램도 인상적이었어요. 요즘엔 코로나19로 아이들이 많이 못 와서 안타깝지만, 청소년 운영위원들과 상의해 집안에서도 할 수 있는 여러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답니다. 온라인으로도 꾸준히 대화해서 아이들의 마음을 좋은 쪽으로 이끌려고 하죠. 제가 이끈다기보다 아이들이 더 잘 알아요. 본인들 운영회비를 기꺼이 마스크 180여 개 만들어 자가 격리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집 안에서 덜 심심하도록 보석십자수도 전달하고 있어요.”

어렵고 힘들 때는 집 인근에서 기르는 50평 남짓한 텃밭에서 작물을 기르면서 위안을 얻는다고. 

“동이면, 이원면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은 저에게 보석같은 거에요. 한 사람의 삶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 그 것 만큼 가치있는 일이 있을까 싶어요. 앞으로도 아이들한테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청소년 지도사로 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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