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문인협회장 김명자시인 21년만에 첫 시집 펴내
99년부터 써온 80편의 시 엮어, 이명식 시인 해설 써

원석을 세공해 보석을 만드는 세공사처럼 시인은 시상을 캐내어 한 편의 시를 만든다. 옥천문인협회장 김명자(64,옥천읍 양수리)씨는 21년간 써온 시들을 꺼내어 미처 지나오지 못한 세월에 수를 놓듯 첫 시집 “뜨락의 풍경”을 펴냈다.

“시? 그저 좋아요. 가만히 있으면 옛날 행복했을 때가 생각나지 않아요. 그런데 단어 하나, 시상 하나 떠올라서 펜을 잡으면 저도 모르게 옛날로 돌아가 있더라고요. 아마도 그때 추억이 생각나서 좋은가 봐요. 내면에 있는 걸 자꾸 끄집어내는 걸 보면 행복했나봐요.” 

얼굴에 번진 온화한 미소는 이 책에 담겨있는 서정이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다.

쉰셋, 그가 시를 쓰기 시작한 나이이다. 우주 만물의 뜻을 다 안다는 지천명의 나이이기 때문일까? 시를 쓰는 일이 운명이었을까? 시를 쓰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문예반에 들었던 그는 수십년 후 자연스럽게 시를 쓰게 되었다.

“선생님께서 저한테 위문장병 편지를 각자 내용이 다르게 10장씩 쓰라고 하셨어요. 그때 자신감이 생겼어요. ‘내가 글을 잘 쓰나보다’. 대회도 나가면 큰 상은 타지 못했지만 간간히 상도 타고 그랬어요. 그때 글을 쓰고싶다는 욕망이 심어졌었나봐요.”

“주부문학회 아세요? 저희가 다 초창기 멤버들이에요. 주부문학회부터 시작한거예요. 안후영씨가 문인협회 만들면서 그쪽으로 들어간거죠” 어느덧 옥천문인협회의 회장을 맡고있는 그는 문인협회의 초창기 멤버이다.

■ 뜨락의 풍경을 펼쳐보면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어요. 특히 우리 세대가 읽으면 통하는 부분이 많을 거예요” 그의 시에는 옛날이야기,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정겨운 시어들이 많다.

[쑥국이나 끓여볼까/ 뜨락에 내려서니/ 간밤에 비가 올렸는지/ 여기도 쑥 저기도 쑥/ 냉이도 질세라/ 파란 촉 틔우고 있다]-뜨락의 풍경

“26살에 대전에서 양수리로 시집왔어요. 시집오기 전에는 옥천에 대해 전혀 몰랐죠. 뜨락의 풍경은 시집와서 뜨락을 보고 쓴 시예요. “뜨락의 풍경”이라는 말이 참 좋아서 제목으로 정했어요.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를거예요. 뜨락은 마당과 마루 사이에 있는 뜰을 말해요.”

[봄볕 지나간 자리/ 반찬은 숨을 죽이고/ 아버지 모르는 척/ 밥 한 귀통이/ 막걸리에 안주 곁들여/ 먼발치 내던지며/ 고수레 –휘-/ 고수레 –휘-]-들밥 먹는 날

고수레는 음식을 먹기 전에 먼저 조금 떼어 ‘고수레’ 하고 허공에 던지는 민간 신앙행위이다. 그의 시에서 잊혀져가는 옛풍경을 볼 수 있었다.
 

“등단시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2003년 출판사 문학공간에서 “나어릴적”으로 등단했어요. 지금 보면 많이 부족한데 그래도 읽으면 저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나요. 시를 쓰다보면 항상 옛날로 가고있어요.”

누구나 과거를 행복하게 기억하며 그리워한다. 김명자씨의 시집에서도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시를 통해 어린시절을 보낸 대전의 산내를 추억한다. 

[초가삼간 정겨운 풍경/ 마른풀 후드득 타들어가는/ 모깃불 옆/ 늦은 저녁 멍석에 누워/ 무지개 꿈 은하수 맞이하던 밤]-나 어릴적

“밥 걱정 없이 살았어요. 지금 남대전 톨게이트가 저희 과수원있던 자리였어요. 복숭아, 포도, 자두...과수원에서 다 키웠었죠. 소도 키웠었죠.”

[가족의 역사는/ 꿈에서 보이고/ 골목 바위에 앉아/ 도깨비 얘기하던/ 춘자가 생각나는 고향]-마음속 고향

“춘자랑은 앞집, 뒷집 살아서 눈뜨면 서로 집에 가서 놀고 동생들도 봐주고 그랬어요. 춘자가 병이 생겨서 한달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났어요.”
100페이지 남짓한 시집에는 시를 쓰기 시작한 것보다 훨씬 이전, 그의 어린시절까지 60년의 세월이 들어있었다.

“시마다 특색이 있더라고요. 사람마다 특성이 다르니까요. 저는 자연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전업 주부니까 매일 정원에 나와 자연을 구경하면서 나무 다듬는 게 일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을 노래하는 시를 참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열에 아홉이 다 자연에 관한 시예요.” 시집을 읽다보면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그의 모습을 어렵게 않게 찾아볼 수 있다.

“32년째 양수리에 있는 법륜사를 다니고 있어요. 부모님이 불교이시고 저도 절에 있으면 맘이 편해서 자연스럽게 젖어들었어요” 그의 시에서는 부처를 모시는 그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맨머리 법륜사 스님/ 보살님들 바라보며/ 늦은 깨달음이라도 좋으니/ 욕심을 버리라고/ 세상이 다 부처인 것을// 부처님께 오체를 바치며/ 오늘만이라도/ 부처가 되리라고/ 기도해본다]-기도를 하다

동료시인 이명식씨가 시집의 마지막장에 '가까이 다가간 시혼'이라는 해설을 덧붙였다. 그가 자신의 시를 잘 아는 사람은 이명식씨 뿐이라며 부탁했다고.

“이명식씨가 몸이 안 좋잖아요. 그분이 꿈이 굉장히 커요. 문학에 대한 욕심이 하늘 같으셔서 ‘내가 회장을 하면 몇가지 이뤄드려야겠다’생각했죠. 작품들 모아서 ‘옥천의 시’ 1권 만들었잖아요? 2권도 만들고 싶어하셨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펴내려고 작품을 다 모집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하고있어요.” 신장투석을 하며 펜을 놓지않고 최근 7집을 펴낸 이명식씨와의 우정이 깊은 듯했다. 그에 대한 존경도 느낄 수 있었다.

■ 시 밖의 이야기

 대전 산내가 고향인 그는 산내초, 대전여중, 대전여상을 나왔다. 26살 옥천으로 시집을 오게되어 연고도 없던 곳에서 뿌리내려 산지도 38년째. 그는 현재 옥천군 국학기공협회의 회장을 맡아 새로운 인연들을 쌓아가고 있다. 회원에게 다정한 그의 매력에 어르신회원들이 푹 빠졌다고. 생활속에서 국학기공을 항상 실천하는 그였다. 매일 아침마다 발끝체조를 하고 마음을 다스리다보니 스스로도 건강함을 느낀다고 한다.

“몸을 열심히 단련시켜도 마음을 내려놓지 않으면 건강할 수 없어요. 운동을 하다 보니까 개미 한 마리, 풀 한 포기, 우주 만물이 다 사랑스러워 보여요”라며 기공의 힘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취재 내내 보였던 그의 밝은 미소와 건강한 내면은 국학기공 덕분인 듯하다.

그는 현재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자식농사가 풍년이다. “아들은 녹십자 본사 연구원이고 딸은 서산에서 고등학교 선생님하고 있어요. 신기하게 며느리도 의사고 사위도 의사예요. 사위는 서산 중앙병원에, 며느리는 서울에 있어요. 손주도 네명이나 되고 걱정할게 없어요. 저만 건강하면 돼요.” 행복해 보이는 그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긴세월, 처음으로 시집을 냈는데 앞으로 2,3권 계속 내봐야죠. 이제야 책을 낸다는게 부끄럽기도 해요. 주부들은 시간내기 힘들죠. 남들 잠들 때 앉아서 시를 썼어요. 마음이 편안해 질 때마다 쓰는 거예요.” 뜨락의 풍경을 시작으로 그의 시를 더 자주 접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문경 출판, 6월15일 출간 1만원.  김명자 시인에게 직접 연락하면 귀한 시집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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