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가화리)/piung8@hanmail.net

초등 친구들과 여행은 기억이 없는 걸 보니 거의 처음인 듯 싶습니다. 가끔씩 초등 친구 몇 명이 잠깐 끼었던 적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초등 친구들과 2박 3일을 보낸 적은 없었습니다.
친구들이 기획한 여행은 첫날은 경복궁과 남산 둘째 날은 에버랜드와 저녁 바비큐 마지막 날은 대전에서 영화보기입니다. 초등 수준에서 나올 수 있는 일정입니다. 그렇다고 친구들의 상상력을 질타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어른 중심의 여행들이 관광회사의 빈곤한 기획을 그대로 답습하고 상상력의 성장판을 닫게 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한번도 여행의 주도권을 쥐어 본 적이 없으니 경복궁과 남산이 나오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기획한 게 아니라 친구들이 스스로 선택한 여행은 식상한 장소의 여행도 다른 느낌을 주는 가 봅니다. 저녁 마무리 모임에 여행일정에 대한 후한 점수가 이를 증명합니다. 저녁마다 모여서 여행 소감을 나눌 때 ‘감사하다’는 표현을 할 때 동행했던 센터장님이 놀라워했습니다. 여러 번 체험학습을 다녔었지만 ‘감사하다’는 반응은 없었다고 합니다. 센터가 차려준 1일 체험학습이 아니라 우리 친구들이 선택한 여행이라 나오는 마음의 화학반응입니다. 무엇보다 이들의 여행을 역동성 있게 한 건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 방식입니다. 하루나 1박 2일짜리 관광버스나 봉고차 여행이 일상이었던 친구들입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뚜벅이 여행을 했습니다. 첫날 서울까지 가는 기차는 예매를 하지 않은 까닭에 입석이었습니다. 그리고 무려 1시간 30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기차에 올라가서는 식당칸에 쭈그리고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서울에 도착하고 경복궁까지 가는 지하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6학년 친구가 길잡이였는데 어른도 어려운 서울 지하철 노선을 찬찬하게 찾아가는 걸 뒤에서 지켜보는데 놀라웠습니다.) 봉고차나 관광버스를 준비했다면 효율성 있는 여행일터인데 30분 거리를 1시간 30분이나 가야하는 비효율적인 여행입니다. 하지만 이 비효율적인 과정이 점차로 친구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목적지까지 편안하게 데려다 주는 여행에 익숙했던 친구들이였습니다. 스스로 길을 찾고 뛰고 걸으면서 풍경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풍경 속에 들어 있습니다. 풍경과 분리되지 않게 길을 찾는 고단함이 이들을 풍경과 잘 섞어 줍니다. 그래서 과정이 생략 된 기존의 여행에서 오로지 결과만이 이들의 여행을 증명했다면 친구들은 고단한 과정을 통해서 여행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과정을 꼼꼼하게 밟아가는 과정은 목적지에 대한 환상에서 해방시켰습니다. 그리고 담담한 시선으로 목적지를 편견 없이 바라보게 했습니다. 그들이 땀 흘려 도착한 곳이기에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 곳이기에 그들이 도착한 장소는 어느 때보다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기다리는 시간과 가는 여정들은 온통 대화로 가득 찹니다. 심지어 기차는 낯선 이들과 말을 섞게 하는 용기까지 줍니다. 그래서 기차는 가장 인격화된 이동수단이기도 합니다.

친구들과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그들을 집으로 데려다 주는데 시속 40km를 넘지 말라고 운전하는 제 뒤에서 귀엽게 협박합니다.
달팽이처럼 천천히 가달라고 합니다.
40km를 넘으면 칭얼 댑니다.

2박 3일동안 
꿉꿉하고
후덥지근하고
주저앉고 싶고
목이 마르고
배고팠을 텐데

속도를 내지 않고 느리게 가고 싶어하는 친구들의 마음은 왜 그럴까요?
 
*2016년 기업의 지원금으로 지역아동센터 초등학생 친구들과 진행했던 여행 프로그램입니다.
 2박 3일 동안 서울 남산과 경복궁 유적지와 에버랜드를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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