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미영, 물의 안부, 『문정문학 5집』

잘 돈다, 잘 돌아간다,

해미 읍성 산책길 거닐다 딸과 놀아주던 아버지가 풀숲으로 뛰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꽃 치고 홀씨로 된 민들레를 꺾어 튼튼하게 자랄 거라고 하늘 정원에 날린다. 칭얼대는 딸하고 바람개비를 돌린다 아빠하고 결혼할 거야 꼭 까르륵까르륵 한참을 이마에 맺힌 사랑으로 날아간다 후, 그때부터 내 안에 잠든 아버지 불러일으켰는지 몰라 빨랑빨랑 바람개비, 만들고 싶었는지 몰라

잘 살아 보려는 얼굴 위에 달동네를 접어놓고
아버지 잘 돈다
시린 아픔을 압정으로 고정하고 구석구석
잘 돌아간다

잘 돈다 아버지 잘 돌아간다 아버지

혼자 힘으로 돌고 돌았던 아버지
어두운 오르막길로 원 없이 날개를 돌렸다
한없이 떠돌다 떨린 손발로 돌고 돌아온 아버지
바람을 뚫고 외출했다
돌아오면

홀로 방에서 옆으로 돌아누운 아버지
돌아우운 손으로 라디오를 돌렸다
밥 먹으라는 소리를 돌리면
돌아누운 벽을 보고 구겨진 몸 돌리던 아버지
반항 없아 빙그르르 미소 돌린다

같이 놀자고 돌리면 심부름 돌리고 돌리던 아버지
미워서 돌아갔다 돌아가다 보니
다시 미워졌다 한참을 돌아가다 보니
도는 걸 멈춘 아버지가 산 아래 그대로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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