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약찰방역(增若察訪驛)
증약찰방역(增若察訪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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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7.2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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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형 (옥천읍 교동리 주민)
연재기고②

- 위    치 : 군북면 증약리 757번지 (증약성결교회)

- 설치시기 : 고려, 조선시대

옥천과 대전의 접경지인 마달령(馬達峙: 조선시대 영조 때 발간한 여지도서에는 마달티로 기록되어 있음)아래인 옥천군 군북면 증약리에 있던 증약찰방역은 전국 40개 역도 가운데 하나로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시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도 서부에서 청주, 공주, 한양을 연결하는 교통요충지로 조선시대에 주요한 큰 역말이었다.
조선시대 증약역은 10개 속역으로 가화역(嘉和 옥천읍 삼양리), 화인역(化仁 안내면 인포리), 토파역(土坡 이원면 이원리), 옥천 속현인 양산의 순양역(順陽 영동군 양산면 박계리), 보은현 원암역(原巖 삼승면 원남리), 보은현 함림역(含林 보은읍 학림리), 영동현 회동역(會同), 황간현 신흥역(新興 영동), 회덕현 전민역(田玟 대전)을 관할하고 조선 경국대전에는 종6품인 찰방이 다스렸다고한다.
조선 여지도서에 증약찰방역은 역리 355명, 남자노비 28명, 여자노비 22명의 종사원과 대마 3필, 기마 6필, 복마 4필을 두고 종사원의 봉급과 운영비는 군북면 증약리, 이백리, 자모리 일대에 역둔토(驛屯土)를 주어 그 토지에서 나온 수확물로 조달하였다.
증약역 유적으로는 이곳에 부임한 찰방들이 선정비가 마을 입구에 10개가 남아있고 증약성결교회에는 주춧돌 등 부재가 있다.
한편 증약원은 증약역에서 남쪽에 있어 오가는 여행객들이 쉬어 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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