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은밀한 매력] 모성의 신화는 없다
[영화의 은밀한 매력] 모성의 신화는 없다
  • 옥천닷컴
  • 승인 2020.07.2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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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시네마큐레이터/가화리)piung8@hanmail.net

자유로운 여행가 에바는 스페인 축제에서 만난 케빈의 아빠와 얼떨결에 임신을 하고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들 케빈을 낳았습니다. 케빈은 가족 중에서 유독 엄마 에바에게만 태클을 겁니다. 에바는 이런 케빈을 자폐아로 짐작하고 정신과에 데려가기도 합니다. 미숙한 엄마의 역할을 케빈에게 핑계를 대고 싶어서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케빈은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엄마는 케빈의 마음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이 궁금증은 마지막 장면 엄마와 포옹하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케빈의 대하여/린 램지/2012

<케빈에 대하여>는 모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여성이면 무조건 출산과 양육을 감당해야 하는 걸까? 준비되지 않았는데도 국가의 인구정책에 따라 출산을 고무줄처럼 늘리고 줄여야 하는 걸까? 모성은 단지 여성에게만 주어지는 의무가 아니라는 걸 영화는 말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모성이란 이름으로 여성의 수난을 덮었던 우리 어머니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시몬드 보브아르의 문장은 매우 정확한 표현이었습니다. 동시에 케빈을 괴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괴물도 사회적 결과물이라는 걸 영화는 증명합니다. 원작소설의 홍보 문구가 모성이냐? 괴물이냐?라는 낮 뜨거운 문장 입니다.

마당을 나온 암닭/오성윤/2011

많은 관객을 불러 모았던 <마당을 나온 암탉>의 결말은 충격이었습니다. 납득하기 어려운 장면이라 영화를 본 사람을 만나면 마지막 결말에 대해 물어보곤 했습니다. 심지어 <마당을 나온 암탉>을 권하신 분은 제게 손수건을 준비하라고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눈물보다는 화가 났습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주인공 잎싹이가 ‘날 먹어..니 새끼들이 배고프지 않게..’라며 족제비에게 제물이 되는 마지막 장면 때문이었습니다. ‘잎싹’이가 남성이었다면 오히려 인류애로 포장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남성은 제물이 될만한 개연성이 부족해 보였을 겁니다. 유사모성애가 가능한 암탉을 설정한 건 리얼리티를 보완하려는 시도였겠지만 제겐 얼토당토한 마무리였습니다.  

범죄소년/강이관/2012

그동안 기존의 영화들은 모성의 신화를 강화시켜 왔습니다. 어머니가 소재가 되는 영화들은 손수건 한 장씩 가지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몇천 년 동안 구축 된 젠더의 토양에서 모성은 희생과 포용의 상징으로 각인 되었습니다. 이런 뻔한 영화들 틈에서 가끔씩 모성의 신화에 태클을 거는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아들의 살인을 방어하려고 몸부림치는 어머니의 섬뜩한 얼굴을 보여줍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는 남편의 과거 외도 때문에 오랫동안 복수를 품어 온 어머니를 그리고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가을 소나타>에는 예술가 어머니와 딸과의 설전을 통해 예술에 대한 고민이 먼저였던 이기적인 어머니를 보여줍니다. 신화의 세계에 불편하게 앉아 있던 모성을 인간의 세계로 내려오게 한 고마운 영화들입니다.

‘애 낳으면 철들어’라는 말을 종종 들을 때가 있습니다. 허름한 가정을 버티지 못해 바깥으로 나오는 청소년들을 볼 때 마다 국가나 사회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일부 부모들이 출산의 의무만 수행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철들어 결혼하는 게 아니라 애를 낳아서 철드는 가족의 구조는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학교나 사회에서 도와주지 못하는 자기발견의 과정을 결혼과 가정에 떠맡겨 버리는 지금의 형국입니다. 물론 준비되지 않았지만 갑작스런 출산 때문에 결혼을 하기도 하고 열심히 가정을 꾸려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때론 감당하기 어려울 때는 국가와 사회의 지지가 필요합니다.

애 낳으면 철들기에는 <범죄소년>의 주인공 지구 엄마는 너무 이른 나이였습니다. 자기의 삶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데 새파란 핏덩이까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찹니다. 할아버지한테 어린 지구를 맡기고 가출합니다. 조금 나이가 든 지구는 할아버지를 부양하면서 살지만 현실의 무게는 너무 무거워서 감당을 하지 못해 소년원을 들락날락합니다. 게다가 철없는 엄마가 찾아 옵니다. 지구는 엄마까지 껴안고 가야 합니다. 아기를 가지고 출산하면 당연히 모성이 부록처럼 딸려 올 거 같지만 이 사회가 일방적으로 얹어주는 무게입니다. 지구 엄마는 아직은 엄마 노릇을 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미숙한 지구 엄마나 케빈의 엄마에게 무조건적인 모성애를 강요하면서 이들을 차갑게 밀어내는 사회입니다. 모성이 단순히 개인이 감당할 무게가 아니라 가족 그리고 사회가 따뜻하게 양육을 감당하는 구조를 만들어 준다면 어린 지구를 일찍부터 거리로 나가게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입양을 하든 양육을 하든 한 명의 아기도 소중한 대한민국에서, 아빠 또는 가족이 출산하는 산모와 아기를 보호하지 못한다면 국가가 ‘빅마마/빅대디’로 전방위적 지원을 해줘야 합니다. 병원비가 없어서, 주민등록증이 없어서, 살 곳이 없어서 아기를 유기하고 살해하고 고시원에서 아기를 낳는 상황이 반복되기에는 대한민국 아기 한 명 한 명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김은희 (대구 미혼모 협의회 가족 대표) 

가족이 되기까지(2018)   

프랑스, 벨기에110분/감독 잔 에리 

어느 날 미혼모가 병원에 찾아오고 출산은 해도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자 사회복지센터와 입양기관 담당자들은 어린아이 ‘테오’를 받아줄 가족을 찾아다닌다. 무엇보다 미혼모가 따뜻한 병원에서 출산 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는 장면은 베이비 박스나 화장실에 유기하는 한국의 현실과는 대조되는 장면이다. 자녀를 감당하지 못할 때 미혼모에게 손가락질 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세심하게 포용하는 유럽의 복지 시스템을 잔잔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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