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근, 물의 안부, 『문정문학 5집』

1991년 교통사고를 당했다. 1년 동안 생사를 넘나들다가 5년 만에 퇴원했다. 홀로 8년을 식물인간으로 살다가 일어났다. 음악에 취미가 있어 악기점에서 기타를 샀다. 흥미는 가는데 악보 보려면 힘들었다. 확대경으로 봐야 했다. 감각 둔한 손가락으로 더듬거렸다. 악보대로 되지 않았다. 내 몸이 이렇게 많이 망가졌나 울분이 차올랐다. 한탄하고 성질 나 기타를 내동댕이쳤다. 한참 있다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건 누구의 탓도 아니고 내 탓인데 멀리 봐야지. 손가락 감각과 시력을 한 번에 찾으려면 저절로 되겠나. 아픈 과정을 넘어야 하니 심정을 내려놓고 쳐본다. 그렇게 5년, 7년 지났다. 노래는 다치기 전에는 제법 했으니 되겠지 했다. 목소리는 짐승 울부짖는 소리 나고 정확한 소리가 안 나온다.

내려놨던 성질이 또 울컥거렸다. 남의 탓이 아니고 내 탓이잖아. 자중하고 내 속을 냉정히 들여다보니 “사람 구실은 틀렸구나!” 그렇다고 포기하고 식물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건 자존심이 허락을 안 했다. 팍 죽을 수만 있다면… “그래 죽을 수 있는 용기로 또 도전하는 거야. 시작 때보다는 조금씩 달라지잖아. 더 해보자.” 자다가도 언제든 깨면 잡념으로 방황하던 나를 더듬거리며 기타를 쳤다.

반복되는 세월이 10년 넘자 얼추 되는 것 같다. 손가락 감각도 민첩해져 32분음표의 속도 비슷해졌다. 혼자 할 때는 악보대로 되는 것 같다. 남들 앞에서 했더니 손가락 마비가 된 건지 멍하고 안 된다. 그 자리 있던 분들은 얼마나 흉볼까? 주눅이 들었지만 남을 의식하지 말고 주제 파악부터 해야지. 아마추어도 못 되는 주제에 프로 행세를 하려고 했다. 한심한 꼴불견 놈아 누굴 의식한다는 것부터 잘못된 놈이야.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 결과가 나타나겠지. 그 결과 감각적으로 화음이 구성돼 감동적인 울림이 났다.

음악의 아련한 슬픔, 기쁨, 사랑, 감동을 연습 또 연습했다. 감각적인 느낌으로 안길 수 있도록 연습을 거듭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이젠 기타로 손가락 감각도 예민해져 건강 회복에 흥겹고 보약 같은 나의 동반자가 되었다.

적막하고 암담할 때 기타를 쳤다. 자신의 내면을 보고 추억 되씹어보니 좋다. 화음을 넣는 숲속의 새들과 함께 기타를 쳤다. 자연과 벗하니 활력이 된다. 그 속에서 살다 보니 숲속의 제왕처럼 자연과 더불어 뛰어다녔다. 퇴원 때보다 건강이 많이 달라졌다. 기타를 계속 치니 죽었던 말초시경과 손끝 감각이 완전히 살아났다.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말한다. 인간 승리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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