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서, 물의 안부, 『문정문학 5집』

얼마 전 농림수산 분과 국정감사 장면이 TV에 중계되고 있었다. 경대수 의원이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상대로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아로니아 값 폭락에 따른 책임 추궁과 함께 이에 대한 대책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필자가 몇 해 전부터 우려하던 일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2014년 가을 어느 날 오후로 기억된다. 필자가 군 농정의 책임을 지고 있을 때였다. 아로니아 재배 농가 대여섯 명이 사무실로 몰려왔다. 포도나 복숭아와 같이 아로니아도 옥천군 특화작목으로 집중적으로 육성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필자는 거기서 단호한 입장을 표했다. 머지않아 과잉생산으로 인한 가격 폭락이 우려된다. 그때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현재까지는 농업기술센터에서 사범사업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겠지만, 군에서 지원은 곤란하다는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농민들의 요청이 워낙 강하고 군의원님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불가피하게 유통 분야 일부를 지원하게 되었다. 친환경농업 인한 농가를 대상으로 저온 저장고를 지원하였다. 기 생산된 아로니아 저장시설까지 반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우리 군에서 아로니아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약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묘목을 판매한 곳은 군북면 환평리에 있는 ㅎ농원이다. 필자도 이 농장을 몇 번 방문하였다. 그 당시는 주당 5천 원씩 해도 없어서 못 파는 형편이었다. 그때는 아로니아라고 하지 않고 ‘블랙초크베리’라고 불렀다. 당시 묘목 업자들은 유럽에서 왕들이 즐겨 먹던 ‘왕의 열매’다. 지구상에서 안토시안 성분이 가장 많이 함유되어 있다. 항산화물질이 풍부하고, 각종 암에 좋다며 만병통치약처럼 신전했다. 원산지는 북아메리카지만 토양과 기후 적응성이 높다. 따라서 아무 곳에서나 재배가 쉬울 뿐만 아니라 병충해도 강하여 친환경 농업도 비교적 쉬운 편이다. 기존의 농민들보다는 귀농인이나 은퇴자들 중심으로 재배면적이 급속히 증가되었다.

급기야 초장기에 1kg당 1만 5천 원 이상 하던 것이 지금은 2천 원대로 가격이 폭락하고 말았다. 수확을 포기하는 농가도 속출하고 있다. 옥천군도 130여 농가에서 280t을 생산하다가 지난해는 29ha에서 170t을 생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격 폭락의 이유는 첫째, ‘비교우위 품목사업’ 등으로 지자체에서 지원하였기 때문이다. 묘목을 비롯한 생산기반시설을 지원하여 재배면적이 급속히 늘어났다. 둘째, 폴란드산 분말을 대량으로 수입하였다. 2014년에는 2t을 수입하던 것이 2017년에는 무려 520t을 수입하였다.

이런 가운데 농업기술센터 간부 한 분은 아로니아 유명 강사로 소문나 전년도까지 전국을 돌며 강의를 학 다녔다. 또한 농정과 간부 한 분은 아로니아 묘목을 직접 생산 판매하기도 했다. 오늘의 아로니아 사태에 기여한 공이 적지 않은 분들이다.

평생을 농정에 몸담았던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어떤 특수한 작목으로 소문나면 우선 매스컴에서 먼저 터뜨린다. 그러고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함으로서 과잉생산으로 인한 가격폭락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다함께 망하는 악순환 현장을 수없이 많이 봐왔다. 차라리 그냥 두면 능력있는 선도농가들은 살아남는다. 군북면 이백리 라온뜰농장(대표 이영규)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이런 특수한 새로운 작목은 절대 지원하면 안 된다. 공직자가 국민의 세금으로 농민들을 울리게 하는 것은 큰 죄를 짓는 것이다. 또한 재배농민들에게도 일부 책임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농업에서 특수한 작목으로 한방을 노리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그 지역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작목을 선택해서 거기서 상위권에 들도록 꾸준한 노력을 해야 한다. 또한 생산에 앞서 판매대책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농업과 인생은 절대 지름길이 없다’라는 것이 평생을 농정에 몸담았던 필자의 소신이다. 

지금 각 읍, 면사무소에서는 다음 날 1일까지 ‘아로니아 과원 정비 지원사업’을 신청 받고 있다. 대상자로 선정될 경우 평당 2천 원, 10a(300평)당 6만 원을 지원받게 된다.

오늘의 아로니아 사태를 지켜보면서, 한때 군 농정을 책임졌던 한사람으로서 나름대로 노력은 하였으나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농민들의 강력한 지원 요구에도 혼자 반대하며 외로운 투쟁을 벌이던 그 때가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미세먼지같이 뿌연 필자의 마음과 아로니아 재배 농민들의 뜨거운 눈물이 봄이 온 실개천에 넘쳐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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