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옥천 인물발굴 윤중호(12)] 옥천이 꼭 기억해야 할 시인, 윤중호 시인을 기억하십니까. 시인의 스승이자 녹색평론을 발행했고 지난달 작고한 김종철 문학평론가는 시인에 대해 ‘한국 현대시 역사 전체를 놓고 볼 때도 드물게 뛰어난’ 시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지요. 옥천신문은 시인의 가족과 지인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해 지난해 8월 연재를 시작, 올해까지 모두 11편의 기사를 연재해왔습니다. 이 장정을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 시인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 또 옥천에서 어떻게 시인의 정신을 살릴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윤중호 시인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이 이야기를 위해 13일 솔 출판사에서 임우기 문학평론가를 만났습니다.

임우기 평론가는 문학과지성사 편집장을 역임했고 이후 솔 출판사를 차려 박경리 토지를 완간(16권), 충청도 사투리가 구수한 이문구 전집을 펴냈습니다. 최근에는 충청도 금강 유역을 중심으로 16~17세기를 민중사적 시각으로 조망한 역사소설 ‘금강’을 편집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임우기 평론가의 지역에 대한 애정을 눈치 챈 분이 계시겠지요. 임우기 평론가는 충청도 지역에서 활동하며 지역을 ‘중앙에 종속된 어떤 것’이 아닌 ‘독립적이고 평등한 유역(流域·강물이 흐르는 곳  )으로 이해, 유역간 네트워크를 만들어 문학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유역문학론’을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임우기 평론가에게 윤중호 시인은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 등 서양 중심 문학이론에 매몰된 한국문학계에서 자신만의 문학을 일궈낸 얼마 안 되는 시인이기 때문입니다. 시와 소설, 동화(풍성한 지역 사투리와 고향풍경,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등)에서 볼 수 있듯 시인은 그의 뿌리에 대해 절차탁마해 자기 철학을 만들었습니다. 임우기 평론가는 윤 시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윤 시인은) 백석, 김수영, 신동엽, 김구용과 같은 시인들에 비견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 시인들의 공통점은 다른 책이나 이론이 아닌 자기 뿌리 속에서 시를 발견했다는 겁니다. 윤 시인이 좀 더 오래 시를 썼다면 한국문학이 더 풍요로워졌을 겁니다.”

솔 출판사 대표이자 문학평론가인 임우기 평론가

■ 자기 삶에서 진리를 구해낸 시인들.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윤중호 ‘시(詩)’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중략)/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중

임우기 문학평론가는 개인 삶 속에서 자기언어를 만들고 시적 진리를 구한 대표적 시인으로 백석을 꼽는다. 겨울날 가족과 모두 떨어져 갈대자리 깐 세 든 집에 가만히 누워 자기만의 진리를 더듬더듬 찾아가는 화자의 이야기에는 곧 시인 백석의 삶이 깃들어 있다. 자신의 삶을 융해하고 연단해 언어로 다시 써낸 이 말하기 방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지만 그만큼 진실되다. 윤중호 시인의 시 쓰기 방식도 꼭 그러하다. 

“외갓집이 있는 구 장터에서 오 리쯤 떨어진 구어(九美)집 행랑채에서 어린 아우와 접방살이를 하시던 엄니가, 아플 틈도 없이 한 달에 한 켤레씩 신발이 다 해지게 걸어다녔다는 그 막막한 행상길./(중략)/강 안개 뒹구는 이른 봄 새벽부터, 그림자도 길도 얼어버린 겨울 그믐밤까지, 끝없이 내빼는 신작로를, 무슨 신명으로 질수심이 걸어서, 이제는 겨울바람에, 홀로 센 머리를 날리는 우리 엄니의 모진 세월.//덧 없어, 참 덧없어서 눈물겹게 아름다운 지친 행상길.” 윤중호 시 ‘시(詩)’ 중

윤 시인은 어머니의 행상길을 묘사한 이 시의 제목을 ‘시(詩)라고 붙였다.

“수많은 시에 수많은 아름다운 깨달음이 있어요. 그런데 이 시를 읽으면 ‘시’가 ‘보이죠’. 엄동설한 어머니 신발이 다 해지게 걸어다닌 행상길, 그걸 참 덧없다 눈물겹게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도 느껴집니다. 고통과 그 고통의 덧없음, 하지만 연대하는 이 길이 곧 ‘시’라는 겁니다. 머리로 알고 쓰는 인식론적 시가 아니에요. 어머니를 두고 평생에 걸쳐 가슴 아파했던 윤 시인이 보여요. 존재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겁니다.” 

■ 옥천과 영동, 가장 낮은 곳의 사람들과 연대한 시인, 윤중호

“시인의 어머니가 살고 계신 곳이 옥천 이원면이었죠. 윤중호는 이원의 산수를 타고 난 놈이었어요(웃음). 농촌의 가치를 알았고, 농민과 춤추고 어울리고 그 풍경에서 놀고, 그게 자기의 굉장한 자산이라는 것을 알았죠. 같은 시대를 누렸던 7~80년대 시인 대부분은 이걸 잘 모르는데요. 칼 마르크스니 운동권이니(이 사람들을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만). 그런데 시인의 글을 보면 우리 고향이 보이고 그곳 사람들이 보이죠. 옥천과 영동, 우리 농민들이 보인다는 말입니다.”

시인의 언어, 충청도 사투리는 생생하다. “‘외갓집이 있는 구 장터’에서 ‘오 리쯤 떨어진 九美집 행랑채’에서 ‘어린 아우와 접방살이를 하시던’ ‘엄니’”는 시인의 가장 고유한 이야기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가장 개인적이기 때문에 가장 생동감 있는 언어다. 이청준의 ‘서편제’에서 남도 사람들이 나오지만 모두 표준어를 쓴다. 남도 사람이면서 남도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이원면 주민들은 구장터가 어디 있는지, 옛 구미집(현 이원신협 자리)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을 테다. 

“곁방살이의 충청도 말이 접방살이죠. ㄱ이 ㅈ으로 바뀌는 게 충청도 사투리의 특징이에요. 그밖에도 ‘끝없이 내뺀다’는 표현이나 ‘세월이 모질다’는 말도 충청도 특유의 구어체죠.”

시인의 언어는 그가 그의 뿌리를 직면하고 싸워가며 얻어낸 고유의 언어다. 시인의 몸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언어다. 충청도 특유의 기질은 그의 시적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오월의 무기 무등산의 봉기는/총칼의 숲에 뛰어든 맨주먹 벌거숭이의 육탄이었다/불에 달군 대장간의 시뻘건 망치였고 낫이었고/한입의 아우성과 함께 치켜든 만인의 주먹이었다” 김남주 시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중 

한국 대표 노동시인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김남주의 시다. 김남주 시인의 시가 날카롭게 본질로 간다면 윤중호 시인의 시는 느리게, 에둘러 간다. 충청도 기질이 그대로 드러난다. 

“어젯밤에/김씨네 양철 지붕이 날아갔다./삭정이처럼 마른 김씨는/왕년엔, 날리던 상일꾼/노가다, 약장수 야바위꾼으로/여기저기 기웃거리며/고물장수 30년 만에 흘러온 곳이/용두동 산 1번지./(중략)/김씨의 십팔번은/꿈에 본 내 고향//“워째서/못 쓰는 전기밥통만 고물이라고 혀/염생이똥 같은 소갈머리로/양양이 부리는 놈들은 죄다……”/5년째 신는다는/사철구두를 꿰고서는/씨앙 바람을 가르며/기세좋게 산을 내려가는.” 윤중호 시 ‘용두동 김씨는’ 중 

임우기 평론가는 윤 시인을 두고 ‘훌륭한 충청도 소리꾼’이라고 평가했다. 시를 귀 담아 들어보면 충청도식 가락과 사랑법이 보인다. 자기 욕망을 부단히 비우고 사람과 어울리고 연대하며 스스로를 연단하는 시인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윤중호를 만난 게 옥천 대림선원에서였었죠. 혼자 운전해서 절에 찾아갔는데, 그 친구가 밤만 되면 많이 아팠던가봐요. ‘이건 꼼짝도 못하겠다,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게 기억나요. 절에서 나와 옥천 어딘가에서 술을 엄청나게 먹었는데… 그리고 열흘간 죽게 앓았던 게 기억납니다. 좋은 친구가 일찍 죽은 것도 아쉽지만 한국문학계가 출중한 시인을 잃었다는 게 가장 아쉽지요. 문학적으로 훌륭한 본보기가 됐을 시인을 잃었어요. 저희가.”

“곰삭은 흙벽에 매달려/찬바람에 물기 죄다 지우고/배배 말라가면서/그저, 한겨울 따뜻한 죽 한 그릇 될 수 있다면” 윤중호 시 ‘시래기’ 중       

지인 결혼식에 함지기로 노래를 부르는 시인의 모습(가운데)
강에 놀러와 물놀이하는 시인의 모습(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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