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숙재, 이용윤의 ‘흑진주 포도 농장’ 너구리가 인정한 당도
매년 포도 축제에서 11차례 포도 판매왕 그 비결은 ‘숙성’
캠벨얼리, 샤인머스켓, 흑보석, 자옥 등 다양한 품종 생산

임숙재(58세) 이용윤(56세) 부부와 손녀 박민혜

포도 출하를 앞둔 임숙재(58, 동이면 세산리), 이용윤(56) 부부에게 밤마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 

동이면 세산리 좁다란 농로를 따라 나오는 포도 하우스 안에는 청포도와 보랏빛 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거의 다 익어가고 있는 포도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 정도로 풍성하다. 그런데 웬걸, 달콤하게 익은 포도는 너구리란 놈들이 와서 ‘싹쓸이’를 해버렸다. 남은 잔여물도 하나 없이 포도알을 껍질과 씨까지 다 발라먹고 앙상한 뼈대(가지)만 남겼다. 흑진주 농장이란 포도 ‘금은방’에서 값비싼 ‘진주’를 일부 털어간 것이다. 피의자로 고라니와 너구리를 올려놓았지만, 아무래도 여러 정황상 너구리를 범인으로 확신하고 추적하고 있다. ‘범인은 현장을 언제고 다시 찾는다’는 명제를 인식하고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지만, 언제 또 흑진주를 털어갈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불안하다.

“너구리가 한두 송이만 먹은 게 아니에요. 포도가 달콤해서 다 따먹었어요” 너구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비닐하우스를 비닐과 망으로 둘러싸도 소용이 없다. 지능 높은 너구리는 땅을 파거나, 비닐을 뚫고 들어왔다.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의 목소리 뒤에는 우리 포도가 달콤하고 맛있어서 너구리가 온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검붉게 익어가는 ‘흑보석’ <br>
검붉게 익어가는 ‘흑보석’ 

■ 대를 이어 포도농사 짓는 50년 포도 인생

아내 이용윤씨는 안남면 화학리에서 나고 자랐다. 남편이 잘생겨 따라다니다가 결혼하면서 동이면 세산리에 정착했다. 시부모님에게 포도 농사를 배웠다. 남편 임숙재씨도 직장을 그만두고 포도 농사에 뛰어들었다. 본격적으로 포도 농사를 시작하면서 부모님이 경작하던 포도밭을 매입하기로 했다. 밭에는 부모님의 정성과 노하우가 녹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한 자리에서 2대가 50년째 포도밭을 경작하고 있다.

부부가 한창 농사를 많이 지을 때는 6천 평까지 경작하다 지금은 조금 줄어 3천5백 평을 경작한다. 캠벨얼리 포도로 시작했다. 그러나 캠벨얼리는 한 해는 많이 맺었다가 한해는 적게 맺는 해거리 현상이 일어났다. 1남 2녀의 가정을 돌보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수익이 필요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조금씩 품종을 늘렸다. 이제는 캠벨얼리, 샤인머스켓, 흑보석, 자옥을 키운다. 남편이 일본에 다녀오며 ‘청산’ 종을 가져와 실험하고 있다. 청산 포도는 두 손에 담기 어려울 정도다. 큰 포도라는 샤인머스켓을 압도한다.

청산의 알은 골프공만 하고, 수분이 가득 차 있다. 한입 물면 아삭한 식감과 함께 입안 가득 과즙으로 가득 찬다.

■ 포도 품질은 단골 고객들이 보증해

남편 임숙재씨는 2016년 충북도 우수농업인으로 선정되었다. 매년 열리는 포도축제에서도 포도 품질이 좋아 자타가 공인하는 포도판매왕을 차지했다. 2017년 제24대 포도왕에도 선정되었다. 포도왕 선발 기준은 재배면적, 품종갱신, 생산량, 작황 등을 평가한다. 모든 평가 기준에서 고르게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러한 성과의 비결은 2대째 내려오는 경험 덕분이다. 통상 캠벨얼리의 당도는 13~15브릭스다. 그의 포도는 18브릭스까지 나온다. “검푸른 색이 올라왔을 때 바로 수확하면 신맛이 안 빠져요 색이 오른 뒤 일주일 정도 시간을 줘야 해요” 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는 노하우와 소비자 선호를 읽는 능력 덕분에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부부는 코로나19로 포도 축제가 취소되어 걱정이다. 그래도 작년 축제에서 포도 판매왕을 차지하며 맛있다고 전국에 소문이 났다. 주말이면 전국에서 포도를 사러 온다. 저번 주에는 서울에서 자녀를 동반한 가족이 방문했다. 함께 온 아이들에게 포도를 직접 따는 체험도 무료로 시켜줬다.

달콤하고 아삭한 식감을 가진  ’청산’<br>
달콤하고 아삭한 식감을 가진  ’청산’

■ 변화되는 트렌드에 적응, 샤인머스켓 주력품종으로

올해 캠벨얼리를 키우던 730평 밭을 샤인머스켓으로 바꿨다. 부부는 샤인머스켓 재배 농가가 늘었다고 해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말한다.

“샤인머스켓은 캠벨얼리보다 단단하고 저장성이 좋아요. 저온 창고에 보관할 경우 내년 초까지 맛과 품질이 같은 상태로 보관이 가능해요” 

비교적 캠벨얼리에 비해 높은 가격도 받을 수 있다. 다만 샤인머스켓은 다른 포도에 비해 손이 많이 간다. 씨를 없애는 작업인 지베렐린(Gibberellin·식물 생장을 촉진하는 호르몬)처리를 두 번 해야 한다. 일차 지베렐린은 개화가 막 끝나는 시기에 이뤄진다. 비이커에 담은 약품에 포도송이를 적신다. 포도가 조금 크면 이차 지베렐린을 시작한다. 일차 지베렐린 처리는 송이가 작아 비교적 수월한 편이지만, 이차 지베렐린 처리는 포도송이가 크고, 약품의 용량이 커진다. 수백 평의 포도밭을 작업하면 온몸이 아프다. 고생스러워도 지베렐린 처리를 안 할 수 없다. 소비자가 씨없는 포도를 원하기 때문이다. “저희도 지베렐린 처리 안 하면 편하지만, 그러면 가격이 떨어지니 어쩔 수 없이 해요.” 부부는 개인 농사 뿐 아니라 지역 사회 일에도 팔을 걷어붙인다. 

아내 이용윤 씨는 ‘농가 주부 모임 옥천군 연합회’ 회장으로 올해 초에는 사랑 나눔 떡국 떡을 팔아 다문화 가정 합동결혼식 비용으로 기부했다. 남편 임재숙씨는 한국농업경영인 충청북도 연합회 2019 정책 부회장도 지냈다.

이들 부부는 옥천 포도의 미래에 대해 걱정한다. “예전에 옥천 포도하면 명성이 대단했거든요. 시설 포도의 발상지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포도 폐원을 받는 바람에 포도 재배지가 많이 줄었어요. 이제는 복숭아에 비해 열세거든요. 영동은 포도가공, 와이너리 관광이 연결되어 부가가치를 올려서 부러워요. 옥천군이 포도의 고장 명성을 되찾는데 힘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너구리가 다 먹어버린 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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