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며시 내민 책 한 권
조숙제 (동이면 세산리, 옥천작가회의 회원)

청소년을 위한 시쓰기 공부 박일환 / 지노

시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나는 20대에 섣불리 시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시는 살아있다 -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을지라도. 시가 가진 마력은 인간의 본성과 연결된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졸업하면 시 동아리는 없어질 것 같았지만, 그건 오만이었다. 동아리는 아직 건재하고 심지어 학생들로 북적댄다. 물론 위기는 있었다. 그러나 그 동아리가 없어졌더라도 새로운 동아리가 생겼을 것 같다. 

시작법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이 책만큼 좋은 교재는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시작법 책은 진지하고 딱딱했다. 그리고 일부 책은 ‘이런 것이 시다’라고 선언하는 것 같아서 불편한 부분도 있었다. 이 책의 최대 미덕은 겸손함과 수용 같다. 모든 것이 시다 – 쓴 사람이 그걸 시라고 한다면. 굉장히 친근하고 부드럽게 시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는 이 책으로 한 학생과 즐겁게 시 공부를 했다. 내가 억지로 가르친 게 아니라, 학생의 열망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 열망이 이 책에 닿았다. 그리고 내게도 좋은 교재였다. 기본을 다시 익히고 어렴풋이 알던 것들을 명확하게 짚어주고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책 제목에 ‘청소년을 위한’이라고 써두긴 했으나, 이 말은 ‘쉽게 쓰려고 노력한’ 정도로 해석하는 게 좋겠다. 즉, 초보자가 보기에 참 좋은 교재다. 저자가 택한 전환적 방식 또한 신선하다. 자기 딸에게 시에 대해 수업하는 방식으로 글을 전개하고 있다. 즉, 구어체로 간접적으로 독자에게 시에 대해 전달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독자는 강의를 참관하는 입장이다 보니, 부드럽게 들린다. 

꼭 시에 관해서만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뭔가 미학 강의 같은 느낌도 든다. 아름다울 미(美) 자의 유래가 양(羊)과 대(大)의 합성, 즉 ‘큰 양’이라는 의미였다고 설명한다. 즉 아름다움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는 걸 보여준다. 이런 식의 잡다하면서도 시 쓰기와 연관된 흥미로운 설명도 참 재미있다.

“감동이란 그런 거야. 예쁜 글씨, 멋진 문구로 된 글이 아니라 글을 쓴 사람의 진실한 마음이 담겨 있는 글이 진짜 감동을 선사해줄 수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돼.” P66

글이나 인간관계에서나 진솔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투박한 글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세련된 아름다움도 좋지만, 거칠고 투박하다고 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잘 설명하고 있다.

“스스로 생각해서 판단하고 싶어 하는 게 보통 사람들의 심리지. 그게 인간의 본성이야. ‘내가 슬프니까 너도 슬퍼해야 한다’ 같은 말은 상대의 감정을 강제하는 거야. 상대방은 그러고 싶지 않거나 그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거든. ‘당연히’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시에서는 섣불리 감정을 드러내려 하지 말고, 때로는 냉정할 정도로 차분하게 접근하는 게 오히려 공감을 이끌어내기 쉽다는 걸 잊으면 안 돼.” P78

유행가와 시의 차이를 감정의 절제로 설명하고 있다. 유행가 가사는 감정의 발산으로 인해 거부감이 들 수 있다. 그 즉각성과 공감의 강요 때문에 오히려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별은 슬프니까 당연히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식의 강요가 불편할 수 있다. 

“그래서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시인은 ‘자발적 곡비’라고 할 수 있을 거야. 누군가 자신의 슬픔이나 아픔을 이해하고 감싸주며 함께 울어준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지극한 슬픔이라도 견디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겠지.” P93

곡비(哭婢)는 양반의 초상에서 주인 대신 우는 역할을 하던 노비다. 양반은 상 중에 계속 울어야 하는데, 그 일을 노비에게 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슬프지 않아도 종이니까 대신 울어야 했다. 시인을 ‘자발적‘ 곡비로 표현한 것은 절묘하다. 

시를 쓰고 싶지만, 거창하거나 심각하게 공부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이 책은 가장 중요한 기본에 충실하다. 기교가 아니라 시의 정신에 집중한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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