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숙제 (동이면 세산리, 옥천작가회의 회원)

사마양저(司馬穰苴)는 춘추시대 말기 제나라의 대부로 재상 안영(晏嬰)의 추천으로 장군에 임명되었다. 제나라 경공(景公)이 진과 연이 황하 부근을 공격 해오자 곤경에 빠졌다. 이에 서출 출신의 미미한 양저를 장군으로 삼아서 전쟁에 출전시켰다. 장고(莊賈)라는 명망 높은 인사도 함께 참전 시켰다. 그런데 장고는 친척들과 측근들이 마련한 송별연에 술을 늦도록 마시느라, 군영에 늦은 시각인 저녁에야 도착했다. 양저는 말했다.” 장수는 명령을 받으면 그날부터 집도 잊고, 자신도 잊어야 한다. 하물며 백성의 목숨이 군장에게 달려 있거늘, 송별회란 말이 가당하단 말인가.” 그리고 군정(군법무관)을 불러 물었다.

“군법에는 약속 시간에 대지 못하면 어떻게 하게 되어 있소?”

군정이 대답했다. “마땅히 배어야 합니다.” 장고는 두려워서 경공에게 사면을 요청했다. 양저는 말했다.

“장수가 군영에 있을 때는 왕의 명령도 받들지 않을 수 있소.”

양저는 경공에게 갔던 사람이 돌아오기 전에, 장고의 목을 베에 전군에 돌리면서 본보기로 삼았다. ‘약속은 생명과도 같기에.’

6.15 남북 공동선언이 20주년을 맞이했다. 6.15 남북 공동선언의 의미는 작지 않은 것이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의 길이, 우리 민족 번영의 길이 어떠해야만, 냉엄한 국제 사회에서 공존할 수 있는가를, 기본적으로 제시한 선언이기에, 결코 망각해서는 아니 될 정신이요, 가치였다. 그런데 이 정신과 약속이 독재자의 광란에 한순간 산산조각이 났다.

6·25전쟁 발발 70주년의 해이다. 이것도 일으켜서는 안 될 민족상쟁의 비극이었다. 왜 우리 민족이 일제 40년의 압정 속에서, 신음과 고통의 나날을 함께 했던 운명공동체가 전쟁을 해야만 했던가. 우리는 일본과 독일 같은 전범국도 아니요, 중국과 같은 내전의 혼란을 자초했던 적도 없다. 그런데 6·25전쟁이란 ‘대리전’을 열강들의 패권 다툼의 희생양이 되어, 150만이 죽고 400만 명이라는 부상자를 속출해 내는 쓰라린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 전쟁을 통해서 구경꾼들은 얼마나 많은 이득과 패권을 쟁취했던가. 일본 놈들은 전범 국가이면서도 교묘하게 한반도를 유린했다. 그들은 임진왜란 때에도 한반도를 초토화하면서,  풍신수길이 죽자 전세가 불리함을 자각하고 명나라에 제안한다. 조선 8도 중 남쪽 4개 도를 일본이 차지하고, 북쪽 4개 도는 명나라가 차지하라는 제안 말이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었다. 9일은 나가사키에 투하된다. 이로써 순식간에 25만 명이 희생된다.

일급 전법, 일본 왕 소화(昭和) 는 1945년 8월 14일 밤 11시25분에  궁내성 내정청사 2층에서 이른바 ‘옥음(玉音) 방송’을 녹음한다. 이를 8월 15일 정오에 무조건 항복한다는 항복문서를 발표한다. 그리고 야비하게 항복했으면서도 공식 항복문서는 9월 2일에 가서야 도쿄만의 미국 군함 미주리호 함상에서 공식 항복문서에 조인한다. 이것도 웃지 못 할 기만행위다. 소련의 전쟁 참여를 기다렸다가, 북한에 소련군이 진주하는 시간을 기다린 것이다. 한반도를 분열하기 위해서. 이렇게 까지 치밀하고 교묘하게 한반도를 유린한 놈들이 일본이다. 그러고도 6·25동란의 전쟁 덕분에 기사회생한 더러운 종족이 일본 놈들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6·25전쟁, 그것은 슬픈 민족의 비극이었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승만 독재정권의 무능의 수치가 적나라하게 보인다. 이승만 정권의 군 수뇌부는 대부분 썩어빠진 일본군과 만군 출신들로 포진돼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국토방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직 뇌물과 승진과 명리가 목에서부터 똥구멍까지 가득 차 있는 놈들이었다. 이런 놈들이 하는 짓거리는 분명하다. 첫째는 위선과 가식이요. 둘째는 아부와 태만이 전부였다. 김일성은 38도선으로 화력을 집중하고 있건만, 이승만 독재정권은 ‘독재와 아집’의 늪에서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다. 육군참모총장 채병덕은  국군장병들에겐 외출과 휴가를 실시했다. 그리고 군 수뇌부는 밤새도록 ‘육군 장교클럽 개관식’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본분을 망각한 채 밤새도록 마신 술에 전쟁의 와중에도 비몽사몽 헤매고 있었다. 대통령에겐 6시간 후에 보고를 했다. 국무회의 석상에도 만취 상태에서 허위보고를 했다. 

이승만 독재정권은 전쟁 초기, 황금 같은 시간을 국민을 기만하고, 도망가는 데 주력했다. 그 와중에도 김구 선생을 저격한 ‘안두희’는 데리고 갔다. 이것이 남한 독재자의 위대한 행적이다. 세월호 사건 당시, 횡설수설하던 어느 대통령의 모습과 흡사 닮은꼴이다. 독재자는 도망가는 와중에도 일본에다가, ‘망명정부’를 세울 것을 미국대사관에 건의했다는, 부분에서는 모골이 오싹하다. 이런 위인이 어떻게 지도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남쪽 ‘독재 정권의 말로’다.

광복 75년 이다. 이제는 우리도 세계 속의 대한민국의 위상을 당당하게 그려 놓았다. 그러나 아직도 하지 못한 일들이 너무도 많다. 첫째가 친일 매국노 청산 작업이다. 둘째는 동족의 외세에 의한 분단이다. 셋째는 썩어빠진 독재정권과 군부 정권의 청산 작업이다. 이 얼마나 비통한 일인가. 그 아류들은 지금, 호의호식하면서 애국이요, 민주주의를 열창하면서, 태극기를 오염시키고 있다. 아니 한술 더 떠서 국립묘지에 독립 운동가들과 자리를 함께 하고 누워 있다. 역사를 능멸하고 있다. 

북한의 독재정권은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경거망동은 죽음으로 가는 첩경이다. 민족의 번영과 자존의 길은 쉽지 않은 길이며, 누구에게도 위탁해서는 안 된다. 어렵고 고된 길일수록 정도의 표준이 된다. 8천만 겨레 앞에서 남북정상 간에 서명한 약속은, 되돌릴 수 없는 먼저 가신 선열들의 준엄한 명령이요, 후손된 자의 당연한 책무다. 이를 거역하는 ‘독재정권의 말로’는 삼척동자도 감지할 것이다·핵을 믿는 놈은 죽음뿐이다. 믿을 것은 ‘칼’이 아니라, ‘생명과도 같은 약속’이다. 그 길이 세계 속에 공존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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