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 문학의 향연

내가 글쓰기를 한지도 어언 10년이 돼 간다. 정지용이 태어난 옥천에서 무모할 정도로 되지도 않은 글을 쏟아내는 용기를 가진 이면에는 나를 격려해주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 글을 읽으시는 몇 분은 나를 보면 민망할 정도로 좋은 이야기를 해주신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이보다 기쁘고 보람된 게 뭐가 있을까.
옥천에서 기관장까지 하신 분 중에도 그런 이가 한 분 있다. 나를 만나기만 하면 좋은 얘기를 한다. 그분은 내 글이라면 빠트리지 않고 꼭 읽는단다. 민망스럽기도 하지만 나는 기분이 좋다. 그분 말이 내 글이 쉽게 읽히고 꾸밈이 없단다. 다른 분들의 얘기도 거의 비슷하다. 정말 그런가, 저분이 혹시 나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는 아닐까. 내가 쓰는 글이 다른 분들에게 읽히기는 하는가. 내 글이 읽히는지 어떤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매끄럽게 읽히도록 하면서 꾸미지 않은 글을 쓰도록 노력은 하지만 저분이 그걸 알아주고 인정해 주시니 고맙다. 산문을 수식이 너무 화려하게 억지스레 꾸미다 보면 주름진 얼굴을 화장으로 포장한 것처럼 내용이 빈약한 글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걸 피하며 독자에게 읽는 재미를 더하게 하려면 글쓰기가 어렵다는 걸 항상 느끼게 된다. 이런 내글을 이해해 주고 좋은 이야기까지 하시는 분이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며칠 전에도 정지용문학관 옆 의자에 친구하고 앉아있던 그분은 아주 반가워하며 나에게 나이가 어떻게 됐느냐고 묻는다. 내가 나이를 이야기 하니 놀란다. 그분은 자기가 형님인 줄 알았다고 농담을 한다. 그러면서 젊어 보인다며 예의 글 호의적 얘기에 얹어 젊어 보인다는 얘기까지 겹치니 겹겹 듣기 좋은 이야기다. 자기는 용띠란다. 내가 쥐띠니 그분이 네 살 아래가 된다. 나이 차가 무슨 대수인가. 맘이 통하고 뜻이 통하면 다른 건 절로 통하게 돼 있다.
남을 칭찬한다는 건 의외로 쉬운 일이 아니다. 내 맘이 열려 있어야 남 칭찬도 나온다. 좋은 맘을 가슴에만 담고 있으면 남이 알 리가 없다. 입이 무겁다는 것과 맘이 열려있다는 것은 상충(相衝)한다는 생각이다. 맘이 열리지 않으면 입도 안 열린다. 침묵이 금이라는 말은 진리가 아니다. 수다도 곤란하지만 입을 닫고 있으면 설화(舌禍)는 없을지언정 소통이라는 것과는 배치한다. 마음의 문을 열어놓는 사람들에겐 곁을 가기가 쉽다. 고로 그런 분들은 친구를 잘 사귀며 따르는 사람이 많게 된다.
나도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사람이다. 더구나 글을 쓰는 사람은 혼자이기십상이다. 친구들하고 어울리고 여럿이 같이 있을 때는 글이 안 나온다. 그래서 머릿속에 글의 구상을 하기 위해서도 외톨이로 있을 때가 많다. 친구들하고나 친지들하고도 자칫 소원해지기 쉽다. 그래서 나는 그분 같은 이들이 더욱 고맙다. 쉽게 열지 못하는 문을 가진 나는 그런 분들을 보며 보상을 받는다.
문을 열어야 소통을 한다. 문이 닫혀 있는데 소통이 되겠는가. 문을 열어도, 소통을 해도 나와 맘이 맞고 쉬운 상대만 골라 소통을 한다면 그건 소통이 아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 진정한 소통일 것이다. 정치가 국민을 잘 위하지 못하는 것도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의 소통만 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굳게 닫아놓고 아옹다옹 서로 날 세우기에만 급급한다면 우리의 앞길은 암울할 수밖에 없다. 정치는 원래 그런거라고 치부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날 세우는 데만 열중하고 갈등만 키우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없는 날도 만들어 세우라고 하는 게 정치 아닌가. 가정도 화목해야 번영한다.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란 생각이다.
내 마음의 문도 잘못 여는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게 맞지 않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잘 안 되니 그리 되고 싶어 이런 글도 쓰는 것이다. 노력이라도 해봐야 하는 건 사람이 할 일이다.
나만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올해는 더위가 그리 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열대야가 계속되고 아침에 일어나면 선풍기를 틀어야 하고 에어컨을 돌리기도 했는데. 오늘 아침은 안개로 시야가 흐리긴 해도 정말 시원하다. 일 년이 매일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한데 여름이 쉬이 끝나고 사람들 좋게만 하면 안 좋은 데도 있다. 농작물이다. 농작물에겐 늦더위가 사람을 좀 괴롭힌다. 해야 좋다.
자연은 내가 움직이는 게 아니다. 주시는 대로 받고 살아야 할 밖에.

이흥주, 물의 안부, 『문정문학 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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