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숙 사진작가, 사진 카페 ‘2월’, 올해 2월에 개업
학원강사, 어린이집, 카페, 도시락집 등 다양한 이력
옥천교육도서관 맞은편, 손님 프로필 사진 촬영 이색

사진카페 '2월'의 서상숙씨

사진은 사진관에 가서 찍는다. 커피는 카페에 가서 마신다. 

사진관에서 커피를 마시고 카페에서 사진을 찍는 건 아무래도 어색하다. 그런데 그런 곳이 옥천에 있다면 어떤가. 옥천교육도서관 맞은편 경사진 길 위에 자리한 사진 카페 2월이 바로 그런 곳이다. 올 2월에 개업했다. 커피를 마시며 사진을 구경할 수 있고 프로필 사진도 찍을 수 있다. 붉은색 외벽에 하얀 테두리로 꾸며진 ‘2월’은 무심코 지나치는 이의 발걸음을 멈칫하게 만든다. 살랑이는 흰 커텐 사이로 슬쩍 보이는 내부의 모습은 예쁘게 꾸며놓은 일반 카페 같았다. 내부로 들어서니 벽 한쪽에 은은한 빛을 받는 흑백 사진들이 분위기를 내었다. 오른쪽 구석에는 새까만 암실이 있고 주변에는 사진관에서나 볼 법한 카메라와 여러 소품들이 눈에 띄었다. 더 안쪽으로는 신발을 벗고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신발을 벗고 사람들 여럿이 모여 소담소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작은 방 같은 곳도 있고 그 옆으로 계단을 올라가면 숨겨진 작은 다락방도 있었다. 오래된 주택에 최소한의 리모델링을 하면서 마법같이 있던 공간을 아기자기하게 드러냈다. 마침 흘러나오는 노래가 분위기를 더했다. 차분하게 여유를 가지며 커피를 마시기에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곳이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소소하게 담소를 나누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이 곳은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절실한 공간이기도 하다. 카페 주인 서상숙씨는 ‘마지막 도전’이라는 생각으로 이 가게를 차렸다.

■ 우연한 계기로 사진가의 길을 걸어
옥천 시장 골목에서 태어나 삼양초, 옥천여중, 옥천고등학교까지 나온 옥천 토박이인 서상숙씨(50)는 원래 유아교육에 관심이 있었다. 사진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집에 있던 아버지의 필름 카메라를 발견하고서 만지작거리다 보니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을 사람들이 예쁘다고 칭찬해주면 신나서 더 잘 찍고 싶었다. 칭찬은 서상숙씨의 꿈을 무럭무럭 키워냈다. 

그 이후로 사진을 즐겨 찍으며 옥천여중 앞에 있던 ‘새시대 사진관’에 현상하러 가곤 했는데 그 길이 그렇게 설레었다고 한다. 한참 유아교육과와 저울질을 하던 중 사진을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사진학과에 가기로 결심했다. 

당시 유명했던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을 불렀던 가수 이상우가 좋아 부산 경성대를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침 옥천고 체육교생 실습을 나와 있던 경성대 출신 황선건씨에게 사진학과 학생을 소개받아 공부를 할만큼 열정이 있었다. 여러 정보를 얻어가며 열심히 준비했지만 아쉽게도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를 하게 되었다. 

재수를 하면서 사진을 더 깊이 배웠다. 대학에 가기 위해선 현상과 인화를 직접 할 줄 알고 좋은 사진을 많이 찍어봐야 했기에 대전 한성사진학원을 다녔다. 

1년의 노력 끝에 대구 경일대에서 사진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4년 내내 장학생이었을 만큼 열정을 가지고 사진공부에 임했다. 그러나 유명한 전업 작가가 되지 않는 이상 일상생활을 영위하며 전공을 살리기는 어려운 법. 졸업 후 그녀는 정말 다양한 경로를 거쳐왔다. 

처음에 자신이 재수할 때 다니던 학원에서 강사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일하게 된 대전불교재단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해 딸만 셋을 낳았다. 이후에 그녀는 으뜸어린이집을 8년 동안 운영하고 읍내에서 카푸치노라는 카페를 1년 반 가까이 했다. 

남편의 사무실인 옥유선 공인중개사 옆에서 ‘샘쓰키친’이라는 가게를 차리고 도시락을 팔기도 했다. 중간에 문화예술 교육사 과정을 거친 후 평생교육원으로 사진 강의도 나갔다. 딸 셋을 키우면서도 자신의 적성과 관심사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전공을 살려가며 부지런히 살아온 그녀다. 

“제가 아시는 분한테 그랬어요. 여한이 없다고. 사진도 해보고 강의도 나가고 결혼해서 애도 낳아보고. 지금까지 제 힘이 닿는 데까지 해볼 건 다 해봤던 것 같아요. 이 카페는 정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시작했어요. 흑백사진 작업을 하고 싶었죠. 그래서 남편과 상의한 뒤 지금 이 공간을 마련하게 됐어요.” 지금 이 자리가 그녀가 열심히 일궈온 삶의 결실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 사진은 우선 내가 관심이 있어야 
카메라에 서면 사람들은 예쁜 미소를 짓고 과감한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주목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줘야 나도 피사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듯 사진은 관심을 갖는 자와 관심을 받는 자 혹은 사물과의 소통이다. 서상숙씨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작고 하찮은 것들일지라도 관심을 갖고 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무리 훌륭한 피사체가 있다 해도 내가 그 사물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요. 그러나 어떤 것이든 애정을 갖고 들여다보면 의미 있는 작업으로 이어질 수 있죠. 사진을 찍으려면 우선은 사물이 내 마음에 와닿아야 해요.” 

유리병에 꽂혀진 채 조명빛을 받고 있는 보리싹 몇 가닥이 따뜻하게 보였다. 

카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그녀의 흑백 사진들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싶다. 
“빛과 그림자를 통해 사물이 다르게 보여질 수 있다는 것이 참 흥미로워요. 의자를 가까이 혹은 멀리, 여러 방향에서 찍어도 의자가 의자인 건 바뀌지 않죠. 그러나 그 모습들은 다 달라요. 그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벽에 걸려 있는 사진들 중에는 옥천에서 찍은 사진도 있었다. 하늘빛 아파트에서 찍은 사진에는 어느 오후 그림자를 드리운 102동과 103동 사이에 난 빛이 담겨 있다.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빛길이 쭉 나 있고 그 끝에 영롱하게 빛을 받는 나무 한 그루는 신비롭다. 작품의 제목은 시간의 문이다. 

시간의 문이 열리길 기다렸을 작가의 기다림이 진하게 전해졌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한 사람의 그림자가 흰 벽에 비치고 있다. 자세히 보니 그림자의 심장 부분에 콘센트가 꽂혀 있다. 그걸 보니 이미지가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단순한 사진이어도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하는 사진과 게슈탈트 심리학이 많은 부분 비슷하다고 했다. “게슈탈트 심리학에서는 형상과 배경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요, 사람이 어떤 사물을 볼 때 그 사물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형태를 배경과 분리시켜 본다는 거예요. 저기 저 사진을 보면 우선 사람 그림자가 형상으로 다가오죠. 그럼 그 뒤의 배경과 주변 요소들도 같이 찾아보게 되는 거예요. 심장 쪽에 콘센트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빛, 사람, 생명, 에너지가 다 함축된 이미지인 거죠. 사진에 의미와 내용이 담기는 거에요. 전체 이미지를 그렇게 찾는 거죠.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의미를 단번에 잘 이해하지는 못해요. 보여지지만 보여지지 않는 게 사진이거든요.” 
전시장에 가면 입이 떡 벌어지는 화려한 사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일상에서 쉬이 접할 수 없는 장대한 풍경이나 모델 사진 같은 것들 말이다. 

너무나 분명하고 뚜렷한 이미지들. 보는 순간 감탄을 자아낸다. 반면 어떤 사진들은 참 소소하고 평범하다. 추상화처럼 딱 보면 이해가 안 가기도 한다. 이게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꾸준히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마다 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저마다 느끼는 게 다 다르기에 다양한 해석이 피어날 수 있다. 영화로 비유하자면 열린 결말의 예술 영화와 같은 맥락이다. 

서상숙씨의 사진이 그러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많은 의미를 응축하고 있는 그녀의 사진은 질문을 던진다. 사진에서 무엇이 보이냐고.

카페에서 1만 5000원이면 훌륭한 프로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저는 제가 만족할 때까지 찍어요. 손님과 계속 소통하려고 하지요. 손님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사진이 나왔을 때 정말 기쁘답니다. 손님도 좋아하시고요.” 선정된 사진은 그 자리에서 바로 흑백으로 출력해 땃땃한 상태로 가져갈 수 있다. 나머지 사진들도 그냥 버리는 게 아니다. 잘 나온 사진들은 카카오톡으로 전부 보내준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신의 모습을 흑백으로 간직하고 싶다면 꼭 들려야 할 곳이다. 평일에는 10시 반부터 오후 10시까지, 주말에는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연다. 

봄이 오기 전 에너지를 가득 품은 땅이라는 의미의 ‘2월’안에는 그녀의 넉넉한 온기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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