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의 달팽이 여행

‘성공이 아니라 사랑이다’제 명함 한 귀퉁이에 그리고 영상 작업할 때마다 첫 프레임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잦은 외침 때문에 허약했던 우리나라의 불안한 사회가 만들어 낸 성공의 프레임은 다양하게 왜곡된 사회 문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특히 가장 자유로워야 할 여행조차도 이 성공의 프레임에서 예외는 아닙니다, 여행은 목적지 중심이 아니라 과정 중심임에도 불구하고 자칫 리더가 길을 잘못 안내하거나 시간을 허비하게 되면 불편한 여행이 시작됩니다. 엉뚱한 길로 안내하는 아버지는 가족의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네비게이션은 구세주와 다름 없습니다, 참! 여행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관광이 맞겠죠. 관광은 풍경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그저 바라볼 뿐입니다. 이런 관광객들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고속도로는 점점 더 잘빠진 도로를 제공해줬고 고속 열차 또한 허접한 도시들은 찬밥 취급하고 주요 도시만 머물렀다 갔습니다. 점점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게 하면 할수록 관광객들은 환호성을 치게 됩니다. 패키지 관광은 가장 군살이 없는 가장 최적화 된 관광 시스템입니다. 어느 관광 패키지가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여러 곳에 가서 사진을 찍고 올 수 있게 하느냐에 따라 관광회사의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대중적인 관심을 끌 수 있는 곳이라면 바로 깃발을 꼿을 수 있는 예리한 관찰력이 관광회사가 갖추어야 할 미덕입니다. 목적지까지 가면서 발생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 혹은 사람과 환경 사이의 화학반응이 생략 된 채 오로지 빨리 가서 빨리 삼겹살을 뒤집고 먹고 조지는 것에 초점이 맞춰 있습니다.

토요문화학교는 관광이 아니라 여행을 선택했습니다. 잘 짜인 지도와 네비게이션의 과잉 친절에 익숙했던 부모들은 버퍼링이 심한 우리 친구들의 서툰 여행 안내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관광 가이드의 매끈한 설명에 비해 다 기어 들어가는 우리 친구들의 목소리가 조금은 답답했을 것입니다, 오지랖 넓은 기차는 시골 역마다 머물렀다 갑니다.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빈자리를 눈치껏 찾아서 앉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거운 배낭을 온종일 짊어 다녀야 했습니다. 한 친구는 자기 몸에 비해 터무니없이 무거운 짐을 들고 오게 된 것도 자가용에 짐을 싣고 다녔던 습관 때문입니다. 여행을 했던 친구들이라면 짐을 늘리는 게 아니라 덜어내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학교에서 여행을 경험한 분들은 바깥을 나가는 게 즐거운 경험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바깥을 나갈수록 금기는 더 강해지고 안전에 대한 부담 때문에 행동반경은 터무니없이 쪼그라듭니다. 그래서 캠프나 수학여행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본 적이 없습니다. 수학여행은 관광여행사가 제공하는 패키지를 따라갔고 캠프는 청소년 지도자의 카리스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소박한 여행을 기획하게 된 건 한번도 자기주도적으로 여행을 기획해보지 않은 친구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우리 친구들도 충분히 기회만 주어진다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감은 맞았습니다.

여수역사에서 젊은 여행객들이 스마트폰에 경배하고 있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친구와 교감하기 위한 여행인데 그들은 스마트폰 너머의 불특정 다수와 접속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번 여행을 통해 비록 좀 더 꼼꼼한 일정이 준비되지 않아 잘못 된 길을 가기도 하지만 함께 고민하며 해결하고 혹여 잘못 된 길을 가더라도 그 풍경을 함께 받아들이는 자세를 배웠습니다. 여행지의 화려한 풍경은 부록일 뿐입니다. 중요한 건 여행을 통해 빚어지는 사람들 간의 화음입니다. 모든 여행은 만남의 구조입니다. 풍경 혹은 사람 그리고 자신의 내면과 일치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만남입니다. 관광은 만남이 아니라 그저 동물원의 사자와 사람 사이를 가로막은 철조망처럼 분리된 개별적인 대상을 훔쳐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가끔씩 값싼 동정심을 발휘해서 관광객을 상대로 䃱달러’를 외치는 앙코르 와트 사원의 소년들에게 돈을 던져 주고 올뿐입니다.

우리 친구들이 계획한 일정은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블로그나 남들이 흔하게 찾는 관광지의 동선을 그대로 따라가는 관광수준의 여행이었지만 공간과 공간 사이를 이어주는 기차가 아쉬음을 메꾸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몇군 데는 수정해주어야지 하는 생각도 잠시 들긴 했지만 그래도 처음 기획한 여행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들이 하는 여행 스타일을 베끼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여행지도를 만드는 걸 배우는 시간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잠시 갔다 왔던 화려한 여행지 터키가 제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된 건 제 땀으로 기획하지 않고 관광회사의 매끈한 기획을 따라갔기 때문일 겁니다. 비록 서투루더라도 우리 친구들이 손수 기획한 여행을 경험하면서 실패를 겪는 과정이 더 가치가 있습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좌석을 마주 보고 앉아 동행한 부모님들과 빙고 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돌 찾기 게임을 할 때는 ‘은방울 자매와 토끼 소녀’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들은 자신이 아는 아이돌 그룹이 나올 때는 비명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10년 전 후로 인도와 동남아시아가 젊은 세대들의 여행지가 된 건 조급하지 않게 자기들만의 보폭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부러워서였을 겁니다. 성공의 프레임에 갇혀 매일 매일 전투 치르듯이 살아가는 우리 내 삶이 버거웠을 겁니다. 비록 느리더라도, 천천히, 자기 삶의 속도대로 살면서 가라는 게 이번 기차 여행이 말해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합니다.

오아시스(가화리)/piung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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