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은밀한 매력

영화 [김씨 표류기] 중
영화 [김씨 표류기] 중

 

코로나19는 면역력이 약한 사람부터 공격한다. 에이즈도 마찬가지다. 면역력의 체계를 무너 뜨린다. 면역력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신체의 면역력이 체력이라면 마음의 면역력은 정신력(마음의 힘)이다. 안타깝게도 군대나 전체주의 국가는 정신력은 똑같다는 전제를 두고 사람들을 대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바이러스가 공격하는 바람에 걸리는 감기처럼 마음도 관계를 통해 생기는 마찰로 인해 공격을 받는다. 조현증 (정신분열증)은 면역력에 가장 취약하다. 이들에겐 초기에 면역이 될 만한 환경을 만들어져야하는데 무뚝뚝한 어른들은 눈치를 못챈다. 그래서 결국은 바이러스에 노출 된 이들은  분열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바이러스(관계/책임/업무/성공/경쟁)를 감당할 힘이 없다.  
몸의 면역력이 약한 경우는 운동을 하거나 건강식품을 섭취하는 방식의 처방전을 받으면 되는데 마음의 면역력 강화는 쉽지 않다. 요즘 남발하는 힐링 처방은 면역력을 좋아지게 하지만 자신의 면역력 상태에 맞추지 않으면 힐링 매니아로 전락하게 된다. 수시로 여행을 통해 마음을 정화하고 다짐을 하고 오지만 마음의 상태는 제자리다. 미봉책 처방전이나 다름없다. 마음의 면역력은 나이가 들거나 혹은 다양한 관계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 아저씨나 아줌마가 되면 용감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영화 ‘김씨 표류기’는 면역력이 약한 두 주인공이 모델이다. 증권에 투자했다가 망한 남자는 한강 다리 위에서 생을 마감하려 투신했으나 밤섬에 떠밀려 내려간다. 밤섬 맞은 편의 아파트에 사는 여자는 3년 동안 방 안에서 생활을 하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다. 얼굴에 화상 자국이 있는 그녀는 달 사진을 찍으면서 ‘달에는 아무도 없어서 외롭지 않다’고 주억거린다.​ 그런 그들이 서로를 마주보면서 균열이 생긴다.​ 그리고 슬금슬금 밖으로 나온다. 결국 버스 안에서 마주치는 여자와 남자.​
영화 ‘파이란’도 마음의 감옥에 갇힌 강재(최민식)를 나오게 하는 건 한번 만나지도 못한 파이란(장백지)의 편지와 감사 인사가 전부였다. 영화 후반부 방파제에서 강재가 편지를 읽으면서 오열하는 장면이 있다. 낯선 타국에서 아무도 모르게 존재가 지워진 파이란의 죽음을 애도하는 눈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강재의 존재를 확인하게 만든 감사의 눈물이었을 거다.​ 눈물 이후 그는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려 한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보듬어주는 사랑이야 말로 사람을 구원하는 가장 강력한 면역 주사다.​​

영화 [파이란]
영화 [파이란]

 

엄마 뱃속을 나오면서 유아는 불안을 안고 태어난다. 그래서 엄마 혹은 누군가에게 붙어 있어야 한다. 불안에 노출 되어 있는 유아는 가정과 사회의 보살핌이 전제되어야 불안은 약해지고 주변을 긍정하기 시작한다. 면역력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어린 시절 주변 환경이 갑자기 바뀌거나 가족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친구들은 약한 면역력을 가지게 된다. 혹은 강력한 트라우마는 약한 면역력을 가진 친구를 공격해서 무너뜨린다. 물론 증상은 면역 체계의 역할이 끝날 때 드러나기 시작한다. 증상이 드러나는 시기는 제각각이다. 언제인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자신이 면역체계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전에는 누구도 가늠할 수 없다. 상담사는 면역력의 상태를 가늠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몇 일 전 면역력이 약한 지인과 술 한잔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그는 마음이 힘들어서 갑자기 일을 그만두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어머니가 그의 배경을 차지하고 있었다. 힘든 일이 생길 때면 어머니의 품으로 도망갔다. 그이 나이가 마흔다섯 무렵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였다. 그의 어머니는 면역력이 높아질 기회를 주지 않았다. 강력한 신념의 체계를 가진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면역력이 좋아질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 실패와 실수는 면역력을 높이는 좋은 기회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 지식전달의 기능은 온라인이 가능하다면서 학교의 역할을 축소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미안하지만 학교는 지식을 배우는 학원이 아니라 관계를 배우면서 건강한 공동체를 경험하는 곳이다. 그리고 면역력이 약한 친구들에게는 면역력을 키울 수 있게 도와주는 플랫폼 같은 곳이다. 하지만 그동안 학교는 지식전달과 대학을 준비하는 플랫폼이었다. (지난 번에 언급했던 명문고 육성방식은 학교 본래의 기능을 외면한 전근대적인 퇴행이다.) 가령 명문대를 들어간 친구를 자랑하는 플랭카드를 교문에 걸거나 성적순으로 영재반을 가려 경쟁을 자극한다. 한참 마음의 힘을 키우기 위해 예술과 운동을 만나게 하기도 부족한 시간에 경쟁과 불안을 유도해서 책상에 주저앉게 만든다.​ 면역력을 떨어지게 하는 방식이다.​ 학생 주도 중심의 학교( 학생주도 중심의 사설, 공립형 대안학교나 혁신학교, 조심할 건 명문대학을 보내기 위해 위장한 대안학교에 속지 마시길) 친구들이 부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은 3년 동안 지지고 볶으면서 관계를 배워 나간다.​ 입시위주의 학교를 다녔던 이들보다 마음의 힘이 누구보다 센 까닭이다. 그 마음의 힘은 교사가 부모가 준 게 아니라 그들 스스로 터득한 힘이다.​

오아시스(가화리/상생시네마클럽 시네마큐레이터) piung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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