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의 달팽이 여행

캄보디아, 라오스 그리고 베트남 태국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 번 쯤은 들러 본 곳입니다. 삶이 고단할 때 잠시 순백의 영혼들을 마주보고 마음을 달래고 오는 곳. 물론 한국에서 누리지 못하는 호사를 누리기 위해 가기도 합니다. 골프채를 들고 가기도 하고 쇼를 보러 가기도 합니다. 여행은 종교와 닮아 있습니다. 종교 밖에서 온갖 악다구니 하며 인생과 드잡이질 하다가 거룩한 성전에 들어서면 다림질한 얼굴이 되는 것처럼 여행은 종교처럼 정기적으로 마음을 세탁하는 곳입니다.
여행은 우리에게 결핍 되어 있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때가 되면 인간 본연의 모습을 만나기 위해 순례의 행렬이 이어집니다. 정신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인도를 찾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마음의 허기를 메꾸기 위해 떠납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배운 건 우리들이 너무 멀리 가서 찾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현장은 고단한 육신을 눕히기엔 너무 딱딱한 돌침대 같습니다. 시인의 싯구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습니다. 소통의 매개체인 스마트폰은 이런 틈을 메꾸는 게 아니라 더 벌어지게 하는 강화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SNS의 출입횟수는 외로움과 비례합니다.

저두 이번에 남들처럼 캄보디아와  라오스로 갔습니다. 가기 전에 욕심 버리고 그냥 물끄러미 바라만보고 돌아오자고 떠났습니다. 동시에 떠나 온 제 주변을 얼마나 따뜻하게 품고 있었을까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앙코르 와트의 시엠립과 루앙 프라방 두 도시에 머무는 동안 지속가능성이 떠 올랐습니다. 한 도시는 관광객을 상대로 자본을 축적하기에 급급한 모습이라면 한 도시는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호흡을 유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에서 모자를 사러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오후 다섯 시 정도였는데 쇼핑몰은 벌써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이럴 수가 대도시의 큰 쇼핑몰이 문을 닫고 있다니! 관광객이 많은 호텔 근처의 식당도 1-2개만 남고 5시에 문을 닫습니다. 루앙프라방의 작은 마켓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관광객의 호주머니를 노릴 심산이라면 다섯 시 폐점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지요. 라오스 친구들은 바로 환한 미소로 응대하지 않지만 나름 꼿꼿함이 느껴집니다. 자본 때문에 결코 무릎 끓을 수 없다는 라오스 친구들의 단호함이 전해져 옵니다. 하지만 시엠립은 반대의 지점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앙코르 와트의 매력이 다하면 자립을 배우지 못한 시엠립은 슬럼이 되고 말겠지요. 사실 라오스는 대단한 유적과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 아닙니다. 인간이 만든 유적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만들어 내는 잔잔한 향기 때문에 점점 더 사람의 발길을 향하게 하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엠립 앙코르 와트를 보며 인간이 만든 유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월든’을 가지고 왔습니다.  
<피리미드 자체는 전혀 놀라운 유적이 아니다. 어떤 멍청하기 이를 데 없는 야심가의 무덤을 쌓아 올리기 위해 그렇게 많은 인간들의 일생을 허비하게 할 정도로 타락한 사회가 있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랍다> -소로우 
 이번에 처음 가본 자금성에서 그리고 앙코르 와트에서 먼저 다가오는 감정은 슬픔이었습니다. 허름한 식사. 검게 그을린 얼굴. 뜨거운 태양. 십장의 날카로운 눈초리. 저는 유적지를 만날 때마다 떠오르는 그림은 몇백 년 전의 풍경이 먼저 떠오릅니다. 만리장성이나 피라미드, 타지마할 묘당 등 가난한 백성들의 피와 땀의 댓가들입니다. 사실 그들의 피와 땀을 추모하고 와야겠지요. 그래도 다행이라면 후손들이 그 현장에서 천막을 치고 음식을 팔고 호객행위를 하며 사는 게 지혜로운 지배자의 통찰 덕분으로 생각하면 제 까탈스러움을 달랠 수 있을까요? 

오아시스(가화리)/piung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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