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노래하다
삶을 노래하다
  • 옥천닷컴
  • 승인 2020.06.1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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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옥 (시인, 옥천군문화관광해설사)

지난밤 바람이 몹시 불고 비가 온 덕일 터, 미세먼지와 코로나로 뿌연하고 잿빛이었던 우리의 마음과 하늘이 왠지 상쾌하고 맑아진 듯하다. 언제 종식될지 예상 할 수 없는 코로나로 마음은 불안하였지만, 며칠 전 가까이 사는 올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 한 손녀와 인근의 외곽으로 차의 핸들을 잡았다. 요즘 들어 연예인이 되겠다고 트로트에 빠져있는 손녀는 차를 타자마자 미스터트롯 정동원의 노래를 틀어달라며 "할머니는 소원이 뭐예요?" 내게 물었다. "글쎄다?" "아! 울 손녀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을 하자 손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가로 도리질을 하며 "할머니가 가장 갖고 싶은 것을 말을 하라고요"했다. 난 웃으며 "그럼 빌딩이나 하나 가져 볼까나?" 했더니 손녀는 "그럼 할머니! 수아가 노래연습을 열심히 해서 연예인이 되면 돈 많이 벌면 빌딩을 사드릴께요"하며 활짝 웃었다. 

지난 연초부터 방영되었던 미스트롯, 이 프로그램은 TV조선에서 2020년 1월 2일 첫 방송을 시작하여 목요일 밤 10시에 방영했던 작품으로 시청률이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방송이다.  

그 열풍은 대중매체, 핸드폰 등 안방까지 점거했다. 어린아이부터 연세가 든 노년층까지 삶의 스트레스 연속에서 여유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구성지고 애상적임에 여흥을 더한 트로트는 흥건히 빠져들기에 충분 했다. 

최종 10위의 오른 후보는 이찬원, 장민호, 영탁, 임영웅, 김호중, 정동원, 김희재, 신인선, 김경민, 김수찬이었다. 10회 동안 경연을 거치면서 그들은 프로다운 프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지 가히 짐작하고 남음직하리라.   

한동안 그 열기로 삼삼오오 모이면 화재로 밤늦도록 순위를 지켜보며 1억의 주인공이 누가 될지, 관심사 결과 이찬원이라는 가수가 그 주인공이 되었다. 그들 10명의 한 명 한명이 다 어렵고 힘든 시기와 사연 또한 각양각색이었다. 뒤돌아보면 다들 삶의 시간들이 쌓이면서 어느 한 사람도 사연 없는 사람이 있겠느냐마는, 모든 출연진마다 곡절 없는 사람 없고 어두운 그림자를 끌며 힘들게 살아간다. 그들의 녹록치 않았던 구구절절 희노애락의 사연들이 공감으로 다가왔다.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다면 1억이란 거금을 10명에게 순위를 등분하여 고루 나누어 줬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그렇게 지나간 2020년 봄은 여러 가지 곡절의 희비로 지나고 신록은 연두에서 짙은 초록의 물결로 일렁이고 있다. 24절기 중 9번째인 망종, 여름에 들어선 6월은 희망의 달이기를 기대해본다. 

만 13세의 어린소년 정동원의 천진스럽고 여린 모습이 내 모성을 자극하고 애잔하게 다가왔다. 동원이는 과거 '전국노래자랑' SBS '영재발굴단' 등에도 출연했었다. 2018년 KBS '전국노래자랑' 하동군 편에 출연해 색소폰 연주와 노래로 타고난 재능을 선보이며 트로트 신동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작고 어린아이가 진성의 보릿고개를 불렀다. 송해선생님께서 "이구 어린 것이 보릿고개를 어찌 알겠누" 묻자 동원이는 "할아버지께서 진성 선생님처럼 못 먹어서 슬픈 노래라고 알려주셨다"고 미스터트롯에서도 "지금 폐암이라서 많이 아프신데 TV에 나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 나오게 됐다"고 말을 덧붙였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동원이는 3살 때 부모님이 이혼해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동원이가 트로트에 빠지게 된 이유는 젊은 시절 트로트가수가 꿈이었던 할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그는 트로트를 많이 들려줬으며 노래의 가사와 어떤 뜻으로 노래해야 하는지도 다 알려주었다고 한다. 색소폰 역시 그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고, '절대음감'을 타고난 것도 있었겠지만, 동원이 역시 피나는 노력으로 입술에 피가 나도록 불었던 노력의 결과물일 것이다.

분명, 승리는 노력한 자만의 것이다. 최선을 다하여 지금은 영면에 드셨지만, 할아버지의 꿈도 이루고 효성 깊은 손자로서 최고 영예의 자리에 오르진 않았어도, 기대치의 훌륭한 대중가수로서 인정받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누구나 삶을 살면서 향기로운 추억보다 소멸시키고 싶었던 시간이 더 많 지 않았을까. 물론 따뜻하고 보석처럼 영롱한 양지는 당연시하여,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 반면 피부에 닿았던 회색빛 음지의 무게는 가늠할 수 없었으리라. 강물이 방향을 거스르지 않고 흐르듯, 제대로 삶을 노래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지나간 삶을 그리워하며 진실한 삶의 여정이 될 터. 나는 출연자들의 지나온 삶의 무게를 보면서 문득, 가끔 낯설기만 했던 내 시간을 들여다보았다. 아직도 바람이 일고 낯설고 조심스럽기만 하다. 거친 바람과 마주했고, 흔들렸던 세월이 있었지만 거센 바람도 돌아보니 고마운 바람들이었다. 아직도 진행형인 나와 모든 삶이 잔망스러운 바람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든든하게 뿌리내릴 수 있기를, 내가 서 있는 곳을 알아야 갈 길이 보인다고 했다. 내 삶을 차곡차곡 추궁하다 보면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도 길이 있다는 확신을 가져본다. 

열어놓은 창안으로 싱그러운 바람과 초록 물결이 거실 안과 살짝 포개 인다. 창문 넘어 정원에 핀 해묵은 분홍 장미가 언제 피었는지 주먹으로 만개해 있다. 그 향기가 집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작년에 피웠던 꽃은 올해도, 내년에도 피고 지리라.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힘차게 가슴 깊이 숨을 들여 마셨다. 향기로운 바람 따라 은은한 향이 마냥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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