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읍 양수리 뒷길에서 용봉까지 1시간 코스 혼자서
철공소 운영하며 얻은 노하우를 발휘해 등산로 재정비

등산로를 개척 중인 강구봉씨.
등산로를 개척 중인 강구봉씨.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저 하고 싶어서’ 
강구봉씨(62, 옥천읍 양수1리)는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산을 올랐다. 강구봉씨는 양수리에서 나고 자란 양수리 토박이다. 그는 삼양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직업현장으로 뛰어들어 평생을 철과 쇠와 함께 보낸 철공소 장인이다. 
최근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한 쪽 눈을 실명해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으로 옥천읍 양수1리 뒷길에서 시작해 용봉까지 손수 등산로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무려 1시간 남짓한 코스다. 
“몸이 불편하니까 등산로의 불편함이 더 잘 보이더라고요. 코로나19로 일도 많지 않은데 제가 좀 움직여서 여러 사람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3개월 동안 혼자서 1m 50cm폭의 등산로를 재정비
강구봉씨는 옥천읍 양수로에서 ‘신성공업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전에 양수1리 이장을 맡는 등 마을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그는 등산을 하면서도 사람들의 불편함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가지를 뻗은 나무에 긁히고, 단단하고 큰 바위 장애물을 만나면 아득해질 때가 많아 이를 개선하려고 마음먹은 것.  
“용봉은 어릴 때 나무칼을 들고 칼싸움하러 다니던 추억의 장소이지요. 산을 오르려다보니 손에 스치는 것도 많고, 시야도 확보되지 않더라고요. 더 우거지면 야생동물도 안 보이겠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날은 산에 있는 바위도 깨고, 불편한 길은 괭이로 파고, 주변의 나무를 베기도 했지요.”
 어느 날은 새벽 5시20분부터 밤 11시까지 등산로를 정비하는 일에 몰두하기도 했다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꾸준히 그만큼의 길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놀랍다.
“아무래도 철공쟁이라 다른 사람보다 요령이 좀 있지요. 일을 가지 않으면 매일 산에 갔어요. 2월 말에 산이 살짝 얼어있을 때부터 시작해서 5월 중순까지 했어요. 보통 일주일에 두 번이나 세 번 정도 했는데,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더라고요. 새벽 5시에 가면 10명 정도는 만나는 것 같아요. 삼성산 날등까지 오가는 분이 많고, 주말에는 용봉까지 가는 분도 많아요. 양수리 뒤에서 올라가는 등산로를 전부 정비했어요. 일하다가 괭이도 몇 개 부러트렸지만 하다보니 보람이 있더라고요. 어느 날은 톱, 다른 날은 큰 망치를 가져가서 돌을 깨기도 했지요” 무려 3개월에 걸쳐 홀로 등산로를 정비했다.
그는 “코로나 때문에 일도 없고, 일을 가지 않는 한 매일 산에 가요. 시간도 남고 일하던 사람이 가만있기도 좀 그래요”라며 “이제는 고쳐쓰는 시대가 아니라 바꿔 쓰는 시대다보니 대장간처럼 저희 업종도 많이 찾지 않거든요. 아마 저희 세대가 이 일을 하는 마지막 세대라고 생각해요”라고 덧붙였다.

 

■ 고맙다는 말 한마디, 건네주는 생수 한 병이 보람
처음에는 군청에서 나와서 하는 일인줄 알던 등산객들도 강구봉씨의 선행을 알고 감사한 마음을 비치곤 했다. 강구봉씨는 또 그 마음이 매우 고마웠다고. “안 그래도 옥천신문에 제보하신다는 등산객들이 많았는데, 누가 제보했나 모르겠네요. 그냥 보람을 갖고 하는 일일 뿐이에요. 제가 좀 움직여서 여러 사람이 편하겠구나 하고 일하다보니 그게 또 재미가 있어요. 처음에는 군청에서 나와서 일하는 줄 알던 분들이 나중에는 알아보시더라고요. 때때로 등산하시다가 주고가시는 물 한 병, 초콜릿이나 과자 하나가 상당히 고마워요. 혼자 하다보면 몸이 힘들어지곤하는데 그럴 때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생수 한 병이 그렇게 고맙더라고요” 
강구봉씨는 올해 안에 정비되지 않은 세세한 부분을 가다듬는 것이 목표이다. 강구봉씨는 “등산로라는 표지판도 없던 등산로지만 그래도 좀 더 편안하게 다닐 수 있겠지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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