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란 중, 생뚱맞게 태어난 지방의회
6.25 전란 중, 생뚱맞게 태어난 지방의회
  • 옥천닷컴
  • 승인 2020.06.04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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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서 (전 옥천군친환경농축산과 과장)

1952년 5월 5일 10시, 청산면사무소 대회의실에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지방의회 개원을 선포하는 의사봉 소리가 무겁게 울려 퍼진다. 옥천군청 내무과장이 방청을 신청한 가운데 13명 의원 모두 참석하였고 연장자인 김석규 의원 사회로 개회를 선언한다. 

임시의장은 박홍근 의원으로 선출하였다. 바로 이어진 의장선출은 무기명 투표에 의하여 9표를 얻은 박홍근 의원이 당선되었다. 부회장에는 이광수 의원이 선출되고 전체 의원들의 의석 순차는 추첨에 의하여 결정하였다. 11시 50분 휴회를 선언한다. 오후 1시 속 회를 선언하고 바로 면장선거에 들어간다. 읍.면장을 지방의원들의 간접선거에 의하여 선출하였다. 개표 결과 박진완 후보가 11표를 얻어 초대 청산면장에 당선된다. 그런데 당선자가 개인 사정을 이유로 면장직을 사양하게 된다. 난상토론 끝에 결론을 내지 못하고 오후 2시 10분 다시 한번 휴회를 선언한다.

다음날 5월 6일 오전 10시 11명이 참석한 가운데 속 회를 선언한다. 당선자 박진완 면장의 승낙서를 받아 낭독하고 면장 선출 건을 마쳤다. 이어서 청산면의회 조례를 원안대로 가결하였다. 상임위원은 전형위원 5명, 내무위원 7명, 산업위원 5명, 징계위원 3명을 선출하였다. 12시 휴회를 선언한다. 1주일이 지난 5월 13일 오전 10시 30분, 개회 전 청산면 출신 전사자 위패 6위가 도착하여 명복을 비는 식전 행사가 엄숙히 거행된다. 이어서 바로 개회를 선언한다. 그런데 또 한 번의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면장 취임을 승낙한 박진완 당선자가 직접 의회에 참석하여 다시 사직서를 제출하는 해프닝을 연출한다. 도저히 자신의 신병으로 중책을 사양하니 이해를 당부하였다. 논란 끝에 재신임 투표를 하였다. 재신임 안이 7표, 다시 선출하는 안이 6표가 나왔다. 이 결과를 서면으로 박진완 면장에게 통지하였다. 서면으로 통지를 받은 박 면장이 직접 의회 입단하여 취임을 수락하여 초대 청산면장으로 정식 취임하게 된다. 이 분은 전, 서울대 교수이자 한글학자인 박갑수 교수의 부친이기도 하다.

오후 1시 30분 속회하여 1952년도 청산면 세입세출예산 보고를 간사가 낭독하고 원안대로 승인한다. 청산시장 사용료에 대하여 좌담식으로 약 20분간 협의를 하고 시급한 청산 대교 수리에 대한 토의가 진지하게 이루어진다. 충북도에서 수리하다 중단된 건으로 3일 전에 새로 선출된 권복인 도의원과 청산면의회 의장, 면장이 함께 충북도에 가서 진정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어서 구호양곡 부족에 대한 건과 파종기 종자 배급 건에 대한 토의가 진행된다. 오후 4시 폐회를 선언하고, 서명 의원을 선정한다. 이로써 대한민국 최초의 지방의회가 개원을 하게 된다. 6.25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52.4.25 기초의원인 시.읍.면의회 의원선거가 생뚱맞게 치러진다. 이 당시에는 서울과 가까운 경기, 강원에서는 피 말리 대 격전이 연일 벌어지고 있고, 지리산 일대의 후방지역도 빨치산이라는 무장공비가 우글대는 상황이었다. 전쟁지역인 경기, 강원, 서울 등 한강 이북과 무장공비 근거지인 지리산 지역을 제외한 곳에 서만 투표가 이루어졌다. 이때 청산면은 13명의 의 원이 선출되었다.

그렇다면 6.25 전란 와중에 지방의회를 급하게 구성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1952.6.8. 제3회 청산면의회 회의록을 보면 그 이유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옥천군 지방의원동지회 지시사항으로 "국회해산 즉시 총선거 결의문 작성 제출 건"을 만장일치로 가결한다.

6.25 전쟁 직전 실시한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이 60%나 당선됨으로써 집권당인 자유당의 연임에 아주 불리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지방의회의 기본취지 보다는 지방의회를 급하게 구성하여 국회를 해산함으로써 자유당과 이승만 정권의 재집권을 위하여 지방의회가 생뚱맞게 태어난 것이다. 한편으론 6.25 전쟁 와중에 정권이 바뀌면 국가 존립 자체가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게 되는 어려움은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의 된서리를 맞고 지방의회 자체가 30년간 고사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그러다가 1991년 3월 26일 기초의원 선거로 옥천군의회가 다시 태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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