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동원(63), 이경숙(61) 부부
[읍면소식-청성면]
겉보기엔 완벽한 도시인이었다. 회사생활만 36년. 매일을 치열하게 달려왔다. 누구못지 않게 열심히 살았다. 남부럽지 않은 생활도 누렸다. 하지만 물이 잔뜩 오른 수양버들, 흩날리는 꽃잎,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신록을 볼 때면 밀려드는 허전함을 채울 방법이 없었다. 언젠가 귀촌입성의 그 날을 꿈꾸는 방법밖에.
그렇게 최동원(63), 이경숙(61)부부는 남편의 정년퇴직을 남겨놓기 몇 년전 부터 귀촌의 꿈을 구체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귀촌은 늘 저희 부부의 꿈이었어요. 그 마음을 대신하려고 작은 베란다에 온갖 식물들을 가져다 놓고, 집에도 민속품으로 채웠죠. 아들 친구들이 와서 민속촌이냐고 되물을 정도였으니까요(웃음). 하지만 늘 도시생활에 갈증을 느꼈어요. 대문을 활짝 열어두고 이웃과 함께 살고, 아침과 저녁으로 자연의 변화를 시시각각 느끼고 싶었죠."(이경숙씨)
차근차근 터를 알아보던 중, 2017년 청성면 대안리가 부부의 마음에 쏙 들어왔다. 대안리는 남편 최동원씨의 고향인 보은군 원남면과도 그리 멀지 않았고, 탄부면에 먼저 귀농한 이모님댁과도 가까웠다. 산세도 좋았고, 무엇보다 집이 마음에 쏙 들었다. 부부의 집은 전 청성면장의 집이었는데, 돌담과 큰 대문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다고.
부부는 집을 처음 봤을 때 그 감정을 떠올린다.
"저(남편)는 어렸을 때 큰 대문이 있는 집에 살았는데 그게 제 향수였거든요. 부인은 집을 보자마자 돌담이 너무 예쁘다고 했고요."(최동원씨)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하늘과 산세, 대안리 마을풍경이 아름다운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집 내부를 들여다보니 세월의 흔적이 무겁게 내려앉은 집이었다. 곧 허물어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오래된 농가주택이었던 것. 그래서 어느 곳 하나 손보지 않을 데가 없다.
이웃에서는 다 허물고 새로 짓지 하며 혀를 끌끌 찼지만, 부부는 3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집 곳곳을 세월의 흔적을 묻힌 채로 하나씩 고쳐나갔다.
"편리성만 따지면, 싹 밀고 전원주택으로 짓는 게 낫죠. 하지만 저희는 마을에 켜켜이 쌓인 세월, 그 속에 녹아들고 싶었어요. 여기가 면장님 댁이었으니깐 얼마나 많은 주민들의 사랑방이었겠어요. 저희가 이 집에 살게 됐다고 그 세월을 어떻게 지울 수 있겠어요."(이경숙씨)
그런 마음으로 살아나갈 집이다. 담배를 말리던 공간, 옛 툇마루, 큰 대문, 문틀.. 옛 추억을 기릴 수 있는 건 그대로 살려냈다. 언제든 옛 추억을 되새기고 주민들이 와서 쉬었다 갈 수 있도록 '작은 무인카페'도 마련해뒀다. 편히 들어오시라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대문도 열어둔다. 물론 냉장고에는 항상 시원한 음료수와 먹거리가 담겨 있다.
마침 취재 도중 반가운 손님도 찾아온다. 옆집 김형자씨다. 김형자씨는 시집 올 때부터 부부의 옆집에 살고 있다. 50년이 넘게 이 집을 봐왔다. 활발했던 마을에 한 두명씩 사람이 나가기 시작했고, 빈집들이 생겨났다. 남아 있는 이들의 마음도 쓸쓸했다.
"마을 중심에 빈집이 있어서 뭔가 음산했죠. 그러다가 새로운 사람이 온다니깐 좋았죠. 게다가 부부가 있는 집을 그대로 살려서 고친다니깐 마을주민으로 고맙기도 하고. 이제는 형님 아우하고 지내요."(김형자씨)
이웃주민 육동일씨도 부부를 취재한다니, 슬쩍 미담을 건넨다.
"우리 마을에 공터가 크게 있잖아요. 그러니깐 동네도 시원하고, 차도 돌리고. 사실 이게 이 집 땅이에요. 30평 가까운데. 외지인이 들어왔는데도 그냥 그 땅을 마을보고 쓰라고 하는거죠. 정말 고마운 일이지."(육동일씨)
부부는 이웃들의 칭찬에 손사래를 친다.
"저희가 항상 감사하죠. 저희 부부가 이 마을의 역사에 녹아드는 거잖아요. 최선을 다해 마을의 기존 질서에 잘 적응해보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부족한 점도 많겠지만, 관계는 정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내가 하기 나름인 거죠. 조금 다른 경험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끼리 함께 소통하다보면 사람 사는 곳 다 똑같죠. 같은 마음이고요."(이경숙씨)
부부는 청성면 대안리에 만들어 둔 작은 마을무인카페에서 앞으로 이웃들과 함께 소통하며 살아가는 삶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