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숙제 (옥천작가회의 회원, 동이면 세산리)

찔레꽃 흐드러지게 핀 산길을 콧노래 부르며 간다. 아카시아 향기도 빼놓을 수 없는 풍미다. 산 빛은 절로 물빛도 절로 청산녹수를 이루건만, 우리네 살림살이는 오늘도 방황의 연속선이다.

미증유의 '코로나 환란'이 일상을 뒤바꿔놓았다. '인천의 위대한 스승'이신 부처님 오신 날도, 초유의 사태를 맞이해 한 달 연기됐다. 우리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연등을 밝히는 이유는, 세존께서 켜 놓은 '진리의 등불' 앞에 나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함이 아닌가 한다. 그 연등 행사도 올해는 취소되었다. 불교가 희유의 국난을 맞이하여 보여준 의연한 자세는, 의당 종교계의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기도는 법당에서만 가능하다는 좁은 인식의 틀을 허문, 대승적 자비심의 발로다. 기도는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통해, 길어 올리는 '내성의 힘'이다. 공간과 대상의 제한이  존재할 수 없다. 모든 존재의 공간을 넘어서, 하나의 큰 수레에 태워 깨달음에 이르게 해야 할, 진정한 '자기 성찰'의 묵시적 시현이다.

일부 그릇된 종교가 보여준 행태는, 보편적 국민의 눈높이에도 한참 모자라는 저급한 행위다. 지탄받아 마땅하다. 인천의 위대한 스승이신 부처님은 자비를 몸소 실천하셨기에, 죽음 자체를 열반으로 승화시키는 묘법을 역설할 수 있었으며, 삶과 죽음으로부터 '절대적 자유'를 구가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영원할 것 같은 우리네의 삶도 시절 인연이 다하면, 모래알처럼 우리들의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45년간 길에서 고구 정녕히 자비심으로 설하신 부처님! 그 가르침에 귀의하오며 삼가 향을 사르고 불을 밝히는 날이다.

장자(莊子 BC 370-BC 280)도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이다.평생 벼슬 한 번을 해본 적이 없다. 전쟁이 일상이 된 삶 속에서 '죽음' 속에서 '행복'을 추구한 인물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를 평생 주창한 인물이다. 그의 '자연'은 산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이 아니다. 내 시선을 바꾸라는 말이다. 진흙 같은 세상사 속에서, 나의 시선을 바꾸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는 말이다·내가 자리만 옮긴다면 뒷모습 대신 눈부신 앞모습도 볼 수 있기에, 그런 자세로, 세상으로 들어가 투혼을 발휘하라고 일깨우신다. 그가 '우언(寓言)'의 화법으로 혼신을 다해 쓴 『장자』는 책의 서문을 장대하게 포문을 연다. '붕새' 이야기다. 『장자』의 서문이면서 결론이다. 내용은 이렇다.

"북쪽 바다에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있다. 크기는 몇 천 리요, 변해서 물고기가 되면 붕(鵬)이라는 새가 된단다. 그 새의 등덜미는 몇 천 리나 되는데, 한번 기운을 떨쳐 날면 날개가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붕새는 바다 기운이 한번 크게 움질일 때 남쪽 바다로 옮겨 가려고 하는데, 남쪽 바다는 천지다."

이현주 선생님은 이 난해한 문장을 다음과 같이 해독하신다. 북쪽은 우리네 삶의 근원지요, 사바세계다. 남쪽은 모두가 추구하는 지향점이란다. 바다 기운이 한번 크게 요동치면 변신의 꿈을 꾼다. 자신을 털고 일어나라는 말이다. 지금까지 얽혀 있던 삶의 틀을 깨라는 경종이요, 자신을 구속했던 줄을 끊고 자유를 만끽하란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시선을 먼저 바꾸란다. 나라는 물건을 없애버리면, 즉 아상(我相)을 버리면,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자리가 보인단다. 색이 공이요, 공이 색이란다. 내가 사는 자리가 곧 극락이며, 곤이 곧 붕이며, 남명이 북명이란다. 순천자(順天者)는 자신만 살리는 길이 아니요, 하늘도 살리는 법이란다. 예수의 십자가가 아버지를 살리는 길이었듯. 십자가로 인해 아버지도, 아들도  영생을 추구했듯이.

아난이 부처님의 임종이 임박하였음을 알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부처님 곁을 떠나 나뭇가지를 붙들고 통곡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 수행 중에 있는데, 나를 가엾게 여기시는 부처님은 입멸하시려고 한다."고 울부짖었다.

아난이 곁에 없는 것을 아신 부처님은 아난을 데리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말씀 하셨다.

"아난아, 한탄 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누누이 내가 강조했듯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지 않을 수 없는 법. 태어난 모든 것은 반드시 죽는 것이 순리다. 죽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부지런히 수행에 전념하라. 자신을 의지 처로 삼고 법을 의지 처로 삼아야지, 남을 의지 처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인천의 위대한 스승이신 부처님의 말씀은 항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정곡을 찌른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진정한 '대자유'를 구가하기 위해, 온몸을 불태운 치열한 구도 정신은 영원히 인류의 역사 위에 불멸의 금자탑으로 남을 것이다·부처님께서 켜 놓으신 등불이 지금, 총체적 난국인 말세를 맞아 깜박거리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의 시야가 편향돼 있기 때문이다. 물질 지향적 사고가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린 것이다. 고로, 만족의 수치는 풍선처럼 마냥 부풀어 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한다. 그 와중에 어디에도 얽매이지 말라고 하신다. 그것이 난세를 극복하는 길이며, 생존의 활로를 개척하는 길이란다. '하나'를 잡으면 그 하나 속에 만물이 내재돼 있단다. 결국 자기 마음을 항복 받는 작업이란다. 그 길은 내 앞의 모든 만물을 부처님으로 모시는 길이요, 나와 동등하게 생명을 보는 시각이 아닐까. 

소유는 닫힌 삶을 지향 하지만, 보시는 세상과 소통하는 활로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맑은 정신으로 향을 사르며, 적적한 명창 하에 묵묵히 홀로 앉아, '인천의 위대한 스승'이신, 부처님의 가르침 앞에 삼가 귀의 합니다. 그칠 줄 모르고 타는 임을 향한, 나의 약한 등불 세세생생, 꺼트리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말세에 불법을 만난 것이 이생의 더없는 영광이요, 행복입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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