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은밀한 매력

다큐멘터리 영화 <액트 오브 킬링>

1965년 인도네시아, 쿠데타 당시 군은 ‘반공’을 명분으로 100만 명이 넘는 공산주의자, 지식인들을 비밀리에 살해했다. 40년의 세월이 흐른 후 조슈아 오펜하이머 다큐멘터리 감독은 대학살을 주도한 암살단의 주범이자 국민의 영웅으로 추대받고 있는 ‘안와르 콩고’에게 자신들의 ‘위대한’살인의 업적을 영화로 만들자는 제안을 한다. “당신이 저지른 학살을, 다시 재연해보지 않겠습니까?”안와르 콩고와 그의 친구들은 들뜬 맘으로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기도 하며 자랑스럽게 살인의 재연에 몰두한다. 일종의 역할극을 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촬영이 진행되면서 대학살의 기억은 그들의 건조한 양심을 흔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낯선 공포와 악몽에 시달린다. 2015년에 제작된 다큐 <액트 오브 킬링>이다.
올해가 광주 민주화 운동 40년이다. 광주의 아픔이 제대로 아물었는가? 되돌아보면 아직 답보 상태다. 권력과 반성은 비례한다. 가해자들이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으니 반성을 한다는 건 요원하다. 아직도 뻔뻔하게 무장공비들이 만든 폭동이란 망언이 국회의원 회관에서 현충원 묘지 위에서 떠돈다. (다행히 권력의 지형이 바뀌고 있어서 이제는 여러 특조위들이 제대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어느 날 우연히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바지를 벗긴 친구들 때문에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소년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과 떠난 수학여행이었다. 이날 현장의 선생님은 급하게 수습을 하려고 서둘러 가해자 친구들에게 사과를 명령하고 소년은 억지로 그들의 사과를 받았다. 어느 날 성폭력 강사 질의 응답 시간에 소년이 할 말 있다며 한마디를 했다 ‘사과는 주는 게 아니라 받는 것이다’소년은 아직 친구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밤마다 바지가 벗겨질까봐 바지를 꼭 움켜쥐던 손을 놓을 때가 용서의 끝이라고, 소년이 주억거렸다. 소년의 이야기를 들은 교실엔 싸한 통증이 가해자와 방관자들의 무딘 감수성을 찔러댔다. 소년의 바지가 벗겨 질 때 어떤 친구들은 스마트 폰을 들이댔다. 학교 현장에서 몸 담갔던 나도 부끄러웠다. 학생들끼리 다툼이 생기면 불편한 침묵을 환기하기 위해 사건의 진실과 상관없이 억지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화해를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용서의 주체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였다. 피해자는 집단의 시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진실을 미봉책으로 덮은 채 억지 사과를 해야 했다. 그동안 제주 4.3 사건이 6.25 민간인 학살과 보도연맹 사건과 그리고 최근의 세월호까지, 제대로 진실을 마주하지 못했는데 가해자들은 ‘징허게 우려 먹는다’는 독한 말을 뱉어댔다. 40년이 지났지만 발포 명령자가 나오지 않고 있는 5.18 민주화 운동 그리고 진실을 찾으려 했던 세월호 특조위 활동은 위정자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조직적으로 훼방을 받는 일도 있었다. 피해자가 용서할 때까지 용서는 끝난 게 아니다.

영화 <26년>

<액트 오브 킬링>이 가해자의 동선을 따라가면서 가해자의 풍경을 다뤘다면 2년 뒤 발표한 <침묵의 시선>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정리한 학살의 기록이다. <액트 오브 킬링>의 가해자들이 무용담을 자랑하느라 들떠 있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컷의 속도가 빠르다면 <침묵의 시선>은 답답한 역사인식의 시선을 보여 주는 듯이 컷의 속도는 느리다. 공교롭게도 ‘아디’의 직업이 초점을 잡아주는 안경사다. 안경사 ‘아디’는 1965년 100만 대학살 당시 형 ‘람리’의 죽음을 추적한다. 형 ‘람리’는 비밀리에 사라졌던 100만 명의 사람 중 유일하게 목격당한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했다. 그의 동생 ‘아디’는 50년 만에 형을 죽인 살인자를 찾아가 그때의 이야기를 묻기 시작하고, 가해자들은 누구보다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자신이 저지른 소름 끼치는 살인을 증언한다. 그리고 가해자들을 만날 때마다 반복되는 대사가 끔찍하다. “이미 지나 간 일이야, 과거의 일을 가지고 자꾸 들춰 내지마. 또 그렇게 당할 수 있어”

영화 <침묵의 시선>

 

<액트오브 킬링> 주인공들처럼 5.18의 주범들이 한가하게 골프를 치고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분노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심지어 12,12사태 군사 반란의 주역들은 40주년 기념 식사 모임까지 했다. 그래서 강풀의 만화 <26년>이 나오고 다시 영화로 제작 되었다. 영화 <26년> 마지막 장면은 전두환을 향해 총구를 겨누다가 실랑이 끝에 실패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의 치명적 실수다. 방아쇠를 당겼어야 했다. 팩션 서사극 정도면 시도할 수 있는 구성이다. <26년>의 감독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영화를 한번이라도 봤어야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에서 히틀러와 나치 일당들을 기관총으로 박살 낸다. 가해자들이 뻔뻔하게 활보하는 이 형국에 모두의 분노를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예술매체만이 가능한데, 더구나 상업영화로 만들었다면 과감했어야하는데, 영화 <26년>은 찜찜하게 마무리를 하고 말았다.
오아시스(가화리/상생시네마클럽 시네마큐레이터) piung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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