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며시 내민 책 한 권] 경청; 세상에 너와 나, 단 둘뿐인 것처럼
이덕래 (금산 간디학교 교사)

작년 가을에 '감정코칭 2급' 과정이라는 것을 들었다네. 지인으로부터 대전의 두리가족상담센터라는 곳을 소개받았거든. 작년 말에 상황이 좀 절박했다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지. 전체 10회기, 모두 80시간짜리 과정이니까, 하루에 8시간을 하는 교육인 셈이지. 말이 80시간이지, 생각보다 긴 시간이라네. 어쨌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네. 나는 뭐라도 해서 더 나아져야 했거든.

주말 중 하루를 대전에 가서 대략 열 명 정도의 사람들과 강의도 듣고 워크숍 활동도 하는 거야. 처음부터 듣지 못하고 3회차부터 참여했던 것 같아. 처음엔 잘 적응이 안 되었어. 마음도 황폐하고 이게 무슨 과정인지에 대한 사전 정보도 없었거든. 바쁜 일과를 쪼개 나름대로 열심히 들었어. 보충하느라 대구로도 두 번인가 갔고. 대충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겠더군. 같이 듣는 사람 중에는 교사들이 많았어. 특히 유치원,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유용하겠다 싶었어. 물론 어른에게도 꽤 잘 통하는 것 같아. 우리 마음속에는 아이들이 살고 있으니까. 입소문을 타고 과정에 들어오는 거지. 어떤 계기로 오게 되었냐고 물으니 이렇게 말하더군.

"학교에 동료 교사가 있는데 그 분이랑 얘기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요. 그래서 여쭤보니 감정코칭 과정을 들으셨다고 하더라고요."

작년에 1회차부터 수강 못 해서 지난 주말에 보강 차 오랜만에 다시 워크숍에 갔다네. 똥 싸러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걸 새삼 느꼈어. 당시의 절박함이 지금은 없다는 걸 확인했어. 어쩌면 시간이 지나면서 내 마음이 좀 나아진 거 같네. 결과적으로 보면 감정코칭 과정이 내게 큰 도움이 된 것 같고. 시간이 지나면서 교만해지고 오만해졌다는 것도 느꼈다네. 감정코칭의 원리는 어찌 보면 간단하거든. 논리가 아닌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라는 거거든. 그런데 그게 체화가 되어야 하는 거라서. 연습과 생활화가 필요해. 다시 초심을 상기하는 계기가 되어 유용했다네.

우리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고 믿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이 심리학의 출발점일 거야. 프로이트가 위대한 존재로 추앙받는 이유가 이거겠지. 우리는 수면 아래에 있는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주요 발견이잖아. 그리고 감정코칭은 우리가 감정적인 존재라는 데에 집중하는 것 같아. 

감정코칭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가정교사라네. 아이들은 이미 삐뚤어져서 새로 온 가정교사인 마리아에게 벽을 쌓고 적개심을 품은 상태였어. 그러다가 천둥 번개가 치는 밤, 마리아의 방에 무서워 찾아온 아이, 몰래 데이트하러 나갔다가 비를 맞고 엄한 아빠에게 들켜 혼날까 봐 두려워하는 아이를 대하면서 마리아는 친해질 기회를 포착해. 만일 마리아가 "그깟 천둥 번개에 놀라니? 번개 맞아 죽을 일 없으니 그냥 들어가서 자!"라고 말하거나, "아빠 말 안 들으니 비를 맞아도 싸다. 얼른 씻고 옷 갈아입고 자!"라고 했으면 친해질 수 없었겠지. 마리아는 두려움과 같은 감정을 잘 감싸 안아 줬어. 슬픔과 분노,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하고 수용한 거지. 

 1. 아이의 감정을 포착한다.
 2. 좋은 기회로 여긴다.
 3. 아이의 감정을 들어주고 공감한다.
 4.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
 5. 바람직한 방향으로 선도한다.

감정코칭의 과정은 사실 이게 전부야. 그러나 이것을 체화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 이걸 80시간 동안 배우면서 익히는 것인데, 막상 현실에서는 마리아처럼 하기가 쉽지 않아. 내 감정이 올라오거든. 특히 2번이 어려워. 좋은 기회로 여기기보다는 짜증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거든. 내 감정이 올라오는데, 그건 그 아이나 상대방과의 히스토리가 개입하는 거야. 그러면서 엇나가는 거지. 비난(너 맨날 그러더라)하거나 경멸(네가 뭘 그런 걸 한다고 그래?)하거나 방어(내가 지금 바쁘거든)하거나 담을 쌓게(못 본 척, 들은 척) 되지. 

"감정은 빛보다 빠르다."

지난 수업에서는 이 말이 특히 인상 깊더군. 우리는 쉽게 감정에 휩싸여. 쉽게 울컥하고 화가 나고 별것 아닌 일에 기분이 풀리기도 하는 것 같아. 너무 빨라서 인지하기도 쉽지 않아. 감정에 휩싸이면 우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거야. 말 그대로 인간이 아닌 거지. 우리의 뇌를 뇌간과 소뇌(파충류의 뇌), 대뇌변연계(포유류의 뇌), 대뇌 피질(영장류의 뇌)로 구분하잖아. 감정은 대뇌변연계가 맡고 있기에 감정에 휩싸이면 인간이 아니란 말이 충분히 말이 되는 것 같아. 

"진정한 경청이란 세상에 너와 나, 단 둘뿐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같이 강의 듣는 나이 지긋하신 분이 자기 남편 자랑을 하면서 한 말이야. 남편이 축구를 엄청나게 좋아하신대. 그런데 어느 날 그 좋아하는 축구 중계를 보는 중에 말을 걸었더니 TV를 끄고 자기를 바라보더래. 이분은 너무 감명받아 하고 싶은 말도 까먹었다고 하더군. 남편이 자신에게 이렇게 주의를 기울여주고 있다는 것에 무척 행복하셨다는 거야. 이 사례는 경청이란 무엇인지,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게 어떤 건지를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 같아. 

애들은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많이 풀리곤 하더라고. 우리가 평소 하는 고민도 감정이 격해지면 더 파멸적으로 다가오곤 하잖아. 내가 그 고민을 해결해 주려고 안달하는 순간 오히려 관계가 망가지게 되곤 하더라고. 오랜 직장 생활 등을 통해 효율을 강조하다 보니 문제해결을 빨리해주려는 욕구가 강한 것 같아. 성격이 급한 거지. 결과가 바로 보이지 않으면 하지 않으려 하고 의미 없다고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느긋해져야 할 것 같아. 거리가 필요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도 좋은 것 같고. 

등잔 밑이 어둡듯이, 소중한 건 정작 우리 곁에 있는 것인지도 몰라. 가족, 텃밭, 걷기, 독서, 영화감상 같은 것들 말이야. 자기 심장(감정)에 귀 기울이고. 여력이 되면 다른 사람의 심장에도 주의를 집중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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