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小滿)
소만(小滿)
  • 옥천닷컴
  • 승인 2020.05.2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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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봉호 (옥천군의회 의원)

24절기 중 여덟 번째 날로 입하(立夏)와 망종(芒種) 사이에 있는 절기. 24절기는 기본적으로 태양의 궤도인 황도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정해지므로 양력 날짜에 연동됩니다. 소만은 태양의 황경이 60°인 날로 대개 5월 20일이나 21일이다. 햇볕이 강해지고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며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날입니다. 농촌에서는 모내기가 시작되고 보리를 거둡니다.

소만이라는 말은 만물이 자라서 세상을 가득 채운다라는 뜻에서 유래했습니다. 중국의 전통의학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의 기록에 따르면 초후에는 씀바귀가 줄기를 키우고, 중후에는 봄나물인 냉이가 말라 죽으며, 말후에는 보리가 익는다고 합니다. 소만 기간에 대한 이런 묘사가 조선 초 이순지(李純之) 등이 펴낸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 등 한국의 여러 문헌에도 인용되고 있는데, 중국 문헌의 절기는 주(周)나라 때 화북(華北) 지방의 기후가 바탕이 된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각 지역 기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소만 무렵 농촌에서는 본격적으로 농사일이 바쁘게 시작됩니다. 논을 갈아 물을 대어 모내기 준비를 하고, 빠른 지역에선 모내기를 하기도 합니다. 보리가 익어 수확을 서둘러야 하며, 밭작물도 모종을 심습니다. 모, 밀, 보리, 채소뿐만 아니라 잡초인 꽃다지, 냉이, 명아주, 뽀리뱅이 등의 풀들이 생장을 해 씨를 맺기 시작하는 시기가 소만입니다. 때문에 소만에 열심히 제초를 해주지 않으면 내내 잡초들에게 기세를 빼앗깁니다. 또한 소만에는 작물 북주기를 해야 합니다. 북주기는 풀매기와 함께 작물을 북돋아주는 효과도 있지만 흙속의 습기가 날아가는 것을 막아주어 가뭄 예방에도 효과가 좋습니다. 가을에 거둔 곡식이 떨어지고 보리 수확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인 이 무렵을 전에는 보릿고개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해 무엇이든 먹어야 했던 옛사람들은 산과 들의 나물을 캤습니다. 소만에 나온다는 쓰디쓴 씀바귀로 끼니를 대신하는 옛사람들의 고달픔을 떠올려야 하는 시기입니다. 비가 내린 후 죽순이 올라오면 고추장이나 양념에 살짝 찍어 먹는가 하면 살짝 데쳐 별미로 먹었으며 향이 좋은 개똥쑥으로 쑥국을 끓여 먹었으며 풋보리를 몰래 베어 그슬려 밤이슬을 맞힌 다음 먹으면 병이 없어진다는 속설이 있었으며, 풋참밀 이삭을 잘라 껍질을 벗긴 다음 알맹이를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어 먹기도 하였습니다. 

소만 무렵 날씨는 변화가 심해 한여름 기온을 보이다가도 삽시간에 비바람이 불고 기온이 내려가기도 해서, "소만 바람에 늙은이가 얼어 죽는다", "소만 추위에 소 대가리 터진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입하와 소만 무렵에 행했던 풍속으로는 봉숭아 물들이기가 있는데 동국세시기에 보면 "계집애들과 어린애들이 봉숭아를 따다가 백반에 섞어 짓찧어서 손톱에 물을 들인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봉숭아꽃이 피면 꽃과 잎을 섞어 찧은 다음 백반과 소금을 넣어 이것을 손톱에 얹고 호박잎, 피마자잎 또는 헝겊으로 감아 붉은 물을 들이지요. 이 풍속은 붉은색이 사악함을 물리친다는 데서 유래하였습니다. 첫눈이 내릴 때까지 손톱에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을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그밖에 풋보리를 몰래 베어 그슬려 밤이슬을 맞힌 다음 먹으면 병이 없어진다고 여겼습니다. 소만에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고 첫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는지요?

보릿고개 어려운 농촌 풍경이 수채화처럼 그려집니다. 소 모는 농부와 어린 아들 앞세워 논둑으로 새참 이고 나가는 아낙, 뒤를 따르는 삽살이 한 마리가 우리의 정서를 자극합니다. 도회지 생활에 잊힌듯하지만 누구나 고향풍경은 손대면 톡 하고 터질 듯한 그런 그립고 아름다운 정경이 아닐는지요. 천지가 푸르러지는 이 무렵 유일하게 대나무는 푸른빛을 잃고 누렇게 변합니다. 이는 새롭게 탄생하는 죽순에 자기의 영양분을 공급해주기 때문이지요. 마치 부모가 어린 자식들을 키우느라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봄의 누런 대나무를 가리켜 죽추(竹秋), 곧 '대나무 가을'이라고 합니다만 늙으신 부모님이 소만에 논배미에서 애쓰시는 고마움을 이날 돌아보는 것도 뜻깊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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