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회 (옥천작가회의)

윤구병/꽃들은 검은 꿈을 꾼다/보리출판사
윤구병/꽃들은 검은 꿈을 꾼다/보리출판사

서울대를 나온 지식인이 글은 그럴듯하게 잘 써도 글처럼 삶을 실천하기는 어려운데 이분은 한결같은 자세다. 잘난 사람들이 이처럼 산다면 우리 사회가 더 좋아지겠지만 그렇지 못하니까 이런 분들이 별처럼 빛나는 것이리라. 손과 발을 놀려 일을 하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비판만 쏟아내느냐 하면 아니다. 비판에 앞서 자기 자신부터 돌아볼 줄 아는 여린 마음을 지녔다. 거름 냄새 나는 글에서 감출 수 없는 진심이 느껴진다. 모두 5장으로 되어 있는데 편집 때문에 나누었지만 큰 의미는 없다.

1장은 소제목이 '머리와 가슴 안에 가득한 모순'이다. 사회 제도나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 보다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며, 나부터 어떻게 해야겠다는 말씀이다.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가야지 하면서 나도 모르게 저지를 수밖에 없는 환경파괴를 괴로워한다. 자연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 출판사 일로 서울에 있을 때는 노동을 하지 않아 손톱이 자라는 것이 부끄럽다. 농사일이나 노동을 안 하고 먹는 사람은 사회의 기생충이다. 

가난이 삶의 밑천이므로 부끄럽지 않다고 하며, 가난의 힘은 물질문명에 의존하지 않고 생체 에너지에만 기대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죄 없는 삶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시장경제는 공짜로 누리던 것을 더럽히고 망가뜨려 상품으로 바꾼다. 아기 젖 먹이는 것을 예로 들었는데 절묘한 비유다. 있을 것이 없거나 없을 것이 있을 때 나쁘다고 하고, 있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을 때 좋은 거란 말씀. 나쁜 것과 좋은 것을 이처럼 명쾌하게 표현한다.  

2장 '내가 흐느껴 우는 까닭'에서는 좋은 글이 더 많이 나온다. 작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남다르다. 예수나 부처나 공자같은 사람이 어쩌다 한 사람 나타나면 그 사람 팔아서 땀 흘리지 않고 매끄러운 입만 놀리면서 사는 사기꾼 수십, 수백만이 비 온 뒤 죽순 돋듯이 나타나니, 이른바 '인류의 스승'이나 '구세주'가 탄생하는 게 반가운 일일 수만 있겠습니까? 라고 일갈한다. 종교인들이 들으면 기가 막힐 일이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숨은 뜻을 알 수 있다.

3장 '가시버시 손 잡고 가는 길' 은 우리나라 말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에 대해 적었다. 글은 쉬운 말로 쓰면 된다. 소리 내기 힘든 말일수록 그리고 힘센 사람들이 힘센 나라에서 들여온 말일수록 우리가 살아가는데 쓸모없는 말이기 십상이라고 한다. 노벨상에 대한 견해도 다르다. 노벨상은 다이너마이트를 팔아서 번 돈으로 주는 것이다. 노벨은 인류에게 도움을 주기보다는 전쟁과 생태계 파괴로 해로움이 더 많았다고 보고 있다. 그런 돈으로 주는 상에 매달리지 말고, 누구나 주고받을 수 있는 쉬운 말로 글을 써야 한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어려운 글을 읽을 때 말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대충 알아들을 때가 많다. 

4장 '죽어가는 교실의 십자가여' 는 교육의 문제를 꼬집었다. 지금 교육이 잘못되고 있다. 아이들이 놀고 싶어도 놀지 못하는 세상이다. 실제로 세 살 정도만 되어도 무엇이라도 가르치려고 엄마들이 온갖 노력을 다 하지 않는가? 아이들이 놀아야 나라가 산다고 주장한다. 어릴 때부터 행복에 젖어보지 못한 사람은 자라서도 행복을 찾기에 힘겨워 한다. 머리를 탁 치는 말씀이다. 

5장 '한 그루 나무에 일렁이는 마음' 편에서는 적게 먹고 적게 쓰고 알뜰하게 살림을 꾸리는 것이 자연을 보호하는 길이고 우리가 자연에게 보호받는 길이라고 했다. 바람길이 잘 열리면 살길이 열리고 바람길이 막히면 살길도 막힌다. 자연이 둘러싸고 있는 시골은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마지막 삶터이다. 도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의 수렁으로 바뀌어 버렸다. 미련을 버리고 도시를 떠나라. 한 해 동안만이라도 시골에서 제대로 된 물과 불, 바람과 흙의 맛을 본 아이와 어른들은 다시는 도시로 발길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점은 참 순진하다. 지금 시골이라고 물과 바람이 깨끗한가. 냇물은 미끈거리는 이끼로 덮였고, 가축이 많아 냄새나고 농약 공해도 심하다. 이분 희망이 때로는 너무 멀어 보인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런 책을 진지하게 읽을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책을 읽었다 해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도시의 삶이 편하기 때문이다. 도시의 맛을 보지 않았다면 시골 생활이 불편한 줄 모르고 살았을까? 아니다. 도시를 동경하며 도시로 가지 못한 것에 대해 비관했을 것이다. 

너무나 공감하는 내용이고 그렇게만 산다면 좋겠지만 지금 세상은 물질문명의 때가 잔뜩 끼었다. 책을 많이 써서 돈도 많이 벌었을 것 같은데 자꾸 가난하게 살라고 하니 헷갈린다. 변산 공동체 기초를 닦았고, 지금은 그곳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농사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빛을 발할 날이 있으리라. 그 씨앗을 거두기 위하여 지금 열심히 밑거름을 뿌리고 있는데, 건강이 안 좋다고 하니 결실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 것 같아 안타깝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거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만일 식량 공급이 중단된다면 어떻게 살아갈지 알 수 없는 세상이다. 내가 비관이 좀 앞서는 경향이 없지 않지만, 우리의 미래가 결코 밝지 않다고 본다. 몇십 년이 흐른 후에도 지금처럼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덜 먹고 덜 쓰고 몸 움직여 일하며 살아야 하리라. 그러나 생각만 굴뚝같고 실천하기는 쉽지 않으니, 책상에 앉아서 마음만 천리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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