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째 영일이용원 운영하는 진영일씨

영일이용원의 진영일씨
영일이용원의 진영일씨

다시 이발소를 하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옥천읍 가화리가 고향인 옥천토박이 진영일(64, 옥천읍 삼양리)씨는 예전에 반도기물 2층에서 이용원을 크게 차렸었다. 직원도 둘 만큼 크게 했지만, 매일 한 공간에 갇혀 있었던 직업이라 젊은 혈기에 실증이 났더랬다. 그래서 그만두고 집에 있으니 대전에 있던 친구들이 택시나 한번 하는게 어떻겠냐고 권유를 해서 친구따라 그렇게 택시운전사가 됐다. 80년에 운전면허를 이미 땄던 터라 택시운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맨 처음에는 영업택시를 하다가 개인택시까지 16-7년 정도 했는데 나이가 드니까 젊은 취객 상대하기가 여간 곤혹스러운게 아니더라. 못할 짓이란 생각이 들어 다른 일자리를 찾던 찰나 옛날 이발소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16년 넘게 하지 않은 기술이 되살아날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대전 이발소에 취업해 한번 해보니 몸에 익은 기술은 어디 가지 않더라. 잠자고 있던 기술을 다시 끄집어 내고 다시 이발소를 옥천에 차리기로 결심했다. 이름하여 본인 이름을 딴 영일이용원. 시내에는 집세 때문에 변변한 이발관이 없어서 그런 잇점을 활용해 시내 한가운데 2층에 이발소를 차린지 벌써 16년 됐다. 그럭저럭 먹고 살았고 나이들어 다시 시작한 이발은 또 적성에 맞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사태는 직격탄이었다. 한달에 한번 머리를 깎으러 오는 단골손님들이 오는 터울이 길어졌다. 아무래도 외출을 삼가하라고 하다보니 머리깎는 것을 주저했던 것 같다. 대부분 그러하니 당장 매출에 타격이 왔다. 그래도 어쩌랴. 월세는 내야겠고 월세를 건네러 갔더니 왠걸 3개월치를 상당부분을 깎아주더라.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집주인이 세입자의 형편을 생각한다는 것이 요즘 시상에 어찌 쉬운 일이던가. 그 마음 씀씀이가 참 고마웠다. 
“예전에 택시운전할 때 지역 유지들 제가 많이 태우고 대전 나갔다 왔죠. 그 사람들은 저를 모르는데 저는 그 사람들을 알거든요. 그 사람들은 옥천에서 번돈 대전에서 다 쓰면서도 택시는 옥천꺼 탄다고 애향심을 보이기에 코웃음 친 일이 있었지요. 큰 돈은 대전에 가져다 펑펑 쓰면서 작은 돈은 생색을 내더라구요. 그들에 비하면 저는 대전에 택시 운전하면서도 옥천을 떠난 적이 없거든요. 대전에서 번 돈을 옥천에서 썼지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듯 했다. 
 “시장철물 김주식 사장이 집세를 일부 깎아주겠다는 말을 듣자 가뭄에 단비처럼 마음이 촉촉하게 적셔졌어요. 참 고마운 일 아니겠어요.”
이렇게 마음을 써주는 일, 마음 써준 것에 고마움을 표하는 일이 옥천을 더 살맛나는 공동체로 가꾸는 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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