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 문학의 향연

정년퇴임은 인생에 하나의 큰 획을 긋는 사건이다. 나도 이걸 하면서 정말 이제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걸 실감했다. 다른 분들은 앞으로 살아갈 걱정에 하늘이라도 무너진 듯 낙심을 하며 의기소침했지만 나는 신기하게도 감았던 사슬이 풀린 듯 시원한 해방감에 젖었다. “아! 이제 나는 자유인이다!”이렇게 속으로 부르짖었다. 보통 퇴직들은 하면 다른 직장을 얻어 공백기 없이 바로 그곳으로 달려갔지만 나는 달랐다. 나에게 찾아온 이 황금 같은 귀중한 날들을 어떻게 보낼까 궁리를 했다.
사람이 보통 80대 말, 좀 길게는 90대 말까지 산다고 보아 삼등분해보면 삼십여 년씩이다. 퇴직하고 남은 황금 같은 삼십 년을 잘 보내자는 생각을 하고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우선 체력관리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주변에 차로 왕복 두 시간 정도면 다닐 수 있는 산들을 찾아다니며 산길을 산책하듯 걸었다. 지금의 산들은 거의 다 임도를 개설해 놓아 걷기에 정말 좋다. 꼭 산이 아니라도 보은이나 영동에 처음 가보는 산골 동네 길을 걸으면 정말 너무 좋았다. 숨 가쁘게 험한 길 걷지 않아도 느긋이 숲 속 길이나 골자기 길을 혼자 사색에 젖어 걸으면 이게 바로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숲속의 청량한 공기를 몸속 깊이 빨아들이는 황홀함,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숲 사이로 하늘이 슬쩍슬쩍 닫혔다 열리는 산길에 혼자 있으면 정말 신선이 따로 없다. 숲속의 공기는 공짜로 먹는 보약이다. 아무리 좋은 공기청정기로 거른 공기도 숲속의 그것에는 발밑에 들지도 못한다. 몸속의 노폐물을 다 걷어내자는 마음으로 심호흡을 하여 산속 냄새가 밴 공기를 빨아들이면 몸이 금방 가벼워짐을 느낀다.
누구의 간섭도 없고, 시간에 쫓길 일 없고, 눈치 볼 일도 없는 산행이 1년여 계속됐다. 옥천은 물론 가까운 영동, 보은 산들을 찾아 무조건 산 밑에 차를 세우고 골짝 길을 걷고 임도를 걸었다. 어떤 땐 산돼지라도 만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 두려움에 짜릿한 모험심 같은게 생겨 더욱 산길의 매력에 빠졌다. 깊은 산속 길을 걸으면 금방 산돼지가 길을 파 일구어 헤쳐진 축축한 흙에 소름이 돋는다. 내 기척에 멀리 못 가고 분명 바로 옆에 숨은 산돼지가 있을 것이다. 거기서 돼지를 만나면 속수무책이다. 그런데도 기를 쓰고 산을 찾았으니…….
그러다 어느 날, 전에도 관심이 있었던 글을 한 번 써 보았다. 사실 젊었을 때도 몇 번 글을 써서 잡지사나 신문사 같은 곳에 투고를 해보았다. 현상공모 같은 것은 생각도 못했지만 독자란 같은 곳에 내 글을 올려 보는 게 소원이었다. 그래서 중앙에서 나오는 신문이나 잡지사에 글을 내 보았지만 그때마다 허탕이었다. 우편으로 원고를 보내고 며칠 후 가슴을 두근거리며 내 글을 찾아보아도 어디로 샜는지 글이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몇 번 그러다 좌절하고 글쓰기를 아예 접고 말았다. 삼일천하(?)로 끝나고 만 이루지 못한 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글은 글이 아니었다. 그런데 뒤늦게 쓴 글이 우리 옥천에서 나오는 신문에 턱하니 게재가 돼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나섰다.
혼자 기고만장하다가 옥천군평생학습원까지 오게 되었고 오늘에 이르렀다. 퇴직을 좌절과 절망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는 생각에서 반대방향으로 갔던 내 발길이 내 인생 후반기를 전혀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와 비슷한 길을 걷던 사람들이 지금도 계약직 등으로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고 돈 버는 일에 열중해 있는 걸 지금도 많이 보게 된다. 나는 그들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인생 후반기를 전혀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와 비슷한 길을 걷던 사람들이 지금도 계약직 등으로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고 돈 버는 일에 열중해 있는 걸 지금도 많이 보게 된다. 나는 그들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인생 후반기를 보내고 말 것이냐고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이 내 자유로운 인생을 이해나 하겠느냐고. 여유가 있는데도 그렇게 하는 분들보고 하는 얘기다.
나는 내 정신이 온전하게 붙어있는 날까지, 건강이 이걸 받쳐주는 날까지 글쓰기로 후반기를 풍요롭게 가꿀 것이다. 큰 욕심은 못 내지만 이 길이 순탄하게 이어지기를 기원할 것이다.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풍요를 동시에 누릴 것이다. 한데 여기서 꼭 짚을 게 있다. 내가 이렇게 말년을 여유롭게 구가할 수 있는 이면에는 집사람의 도움이 있었다는 얘기를 뺄 수가 없다. 모자라는 생활비를 벌어다 보탠 집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농사를 조금 짓지만 사실 그건 간신히 적자를 면할 정도다.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남들도 겪는 전환점에서 내 의지를 더해 만든 새길이다.
이흥주, 물의 안부, 『문정문학 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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